[헤럴드POP=글 사진 김종효 기자](인터뷰①에서 계속)

김종왕에게 있어 2005년 11월 5일은 잊을 수 없는 날짜다.

김종왕은 그날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제1체육관(체조경기장)서 열린 ‘히어로스 2005’ 서울 대회에서 ‘야수’ 밥샙과 맞붙었지만 공이 울린 지 불과 8초만에 TKO 패했다. 김종왕은 밥샙의 러시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그대로 무릎 꿇었다.

‘마왕’이라 불리던 김종왕에게 ‘팔(8)종왕’이라는 수치스러운 별명이 붙게 된 경기였다. 김종왕 본인 역시 -어떤 의미든-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밥샙과의 당시 경기를 꼽았다.

프로레슬링과 격투기 양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마왕’ 김종왕은 밥샙과의 경기 당시를 떠올렸다. 물론 김종왕 역시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 3개를 꼽아달라고 했을 때도 “프로레슬링에서는 2009년 홍상진과 함께 WWA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했을 때다. 프로레슬링 복귀 후 가진 시합이었다. 과거처럼 프로레슬링에 팬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격투기에선 미국 킹 오브 더 케이지(KOTC)에서 동양인 최초로 출전해 승리한 것이다. 당시 경기 때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승리해 값지다”고 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경기를 논하기 전에는 잠시 멈칫했다. 쓰린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그 누구라도 힘들다. 김종왕은 “마지막 한 경기는 밥샙과의 경기다. 8초 만에 패배했다”고 입을 열었다. 김종왕은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당시 패배는 내 판단 미스로 인한 것이었다”며 “당시 밥샙은 정말 괴물 같았다. 트럭이 밀고 들어오는 것 같았고 원투 펀치는 벽돌로 얻어맞는 것 같았다. 충격이 굉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종왕은 “내가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밥샙이 나를 깔고 상위 포지션을 점하기 전 도망가는 것 밖에 없었다. 링 밖으로 나가게 되면 개런티가 20% 삭감되는 페널티가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그렇게라도 해서 스탠드업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못 들 정도였다. 사실 너무 무서웠다”며 “니킥을 맞은 것이 아니다. 팔로 막고 옆으로 쓰러져서 링 밖으로 나가서 재정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심판이 경기를 중지시켰다. 완벽한 내 판단 미스였다”고 설명했다.

김종왕은 “사실 경기 준비도 제대로 못했다. 상대가 밥샙이라는 것을 안 것이 약 20일 전이다. 대회 주최 측에서 밥샙의 상대를 못 찾아 결국 나에게 도와달라는 식으로 요청이 들어왔고 이를 수락했다. 당시 체육관을 운영하며 다른 이들 운동 도와주고 내 운동은 못 하고 있었는데 20일 운동한다고 해서 되겠나”라고 털어놨다.

밥샙과의 경기 후 김종왕의 인생 자체가 달라졌다.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것은 물론, 모든 것을 걸었던 체육관마저 문을 닫았다. 11년 전 경기가 아직도 회자되고 조롱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김종왕은 “밥샙에게 패배하고 난 직후 운영하던 체육관 홈페이지가 욕으로 도배되고 서버가 다운됐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북적북적하던 체육관에 관원들이 줄기 시작했다. 그게 하루, 이틀, 일주일 되니까 관원이 90명에서 4명으로 줄어들게 됐다”고 쓰라려했다. 김종왕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았는지 잘 몰랐고 이렇게 큰 후폭풍이 올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져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심지어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다. 나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심경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내 딸이 3살이었다. 딸을 생각하며 그러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다시 잡아 극복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종왕은 “월세도 못 냈던 체육관은 결국 보증금도 못 받은 채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매일 술을 먹고 가족들 몰래 울기도 했었다. 힘든 날들이 많았다”며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이미지도 다 잃었고. 뒷얘기지만 밥샙하고 경기만 잘 했어도 K-1과 계약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얍삽한 방법을 쓰다가 패배한 것이다. 그렇게 쉽게 가려고 한 것이 모두 악재가 돼 돌아온 것 아닌가 생각한다. 11년이 지났지만 잊지는 못한다.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오는 과정도 힘들었다. 김종왕은 “그 이후에 노점상도 해보고 보험설계사도 해보고 열심히 살아보려 여러 가지 일들을 해봤다. 그러는 와중에도 국내 단체는 물론 일본 단체에서도 꽤 제안이 들어왔었다. 한국에서는 ‘팔종왕’이라며 조롱거리가 돼 있어도 격투기 업계나 해외 관계자들은 그 경기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조롱하기보다는 ‘격투기 선수가 질 수도 있지, 괜찮아. 또 하면 돼’라는 반응이었고 밖으로 도망간 뒤 재정비하려는 순간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킨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제안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다”고 밝혔다.

이어 김종왕은 “그런걸 극복하고 링에 다시 서게 될 때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사실 당시 내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언론도 없었고 그냥 혼자 끙끙 앓는 수준이었다. 인터넷에서는 내가 경기 당일에 술을 먹고 패배했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소문도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김종왕은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에게 거는 기대나 관심이 컸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감이 커서 그런 비난도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책임이다. 내가 감내해야할 부분이 맞다”고 해탈한 듯 말했다. (인터뷰③에서 계속)

☆★☆★한국 격투기의 선구자 ‘마왕’ 김종왕 인터뷰★☆★☆

☞‘마왕’ 김종왕 “프로레슬링→격투기, 당연히 무서웠죠”(인터뷰①) ☞김종왕 “‘팔종왕’ 돼버린 밥샙戰 수모, 모든걸 잃었다”(인터뷰②) ☞‘마왕’ 김종왕 작심비판 “韓프로레슬링 문제점은..”(인터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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