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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POP=김종효 기자]WWE의 선택은 로먼 레인즈였다.

WWE 프로레슬러 로먼 레인즈(이하 로먼)는 4월 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AT&T 스타디움서 열린 WWE 최대의 쇼 레슬매니아 32에서 트리플 H를 꺾고 새로운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했다.

현재 WWE 스토리 상 로먼은 절대 선역, 트리플 H는 절대 악역이다. 하지만 팬들은 냉정했다. ‘준비되지 않은’ 챔피언 후보 로먼보다 ‘검증된 독불장군’ 트리플 H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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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팬들은 트리플 H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트리플 H가 선역, 로먼이 악역이라고 착각할 수 있을 만큼 팬들의 반응은 선역과 악역에 대해 정반대였다. 심지어 경기 중간 심판이 한눈을 판 사이 트리플 H가 로먼의 급소를 가격하는 가장 악역다운 모습을 보여줬을 때, 트리플 H에 대한 팬들의 환호는 더 커졌다.

경기는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라는 이름값 답게 반전에 반전을 오가고 큰 기술을 주고받는 등 시원시원하게 진행됐다. 공중기가 난무하는 하이 플라이어들의 경기와는 달리 덩치들의 경기는 묵직한 한 방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이 덩치들이 예상 외의 날렵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팬들에 주는 카타르시스는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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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H는 이미 WWE에서 가장 경기를 잘 운영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런 ‘노련함’의 트리플 H와 ‘패기, 힘’을 콘셉트로 하는 로먼이 만났고, 여기에 ‘레슬매니아’라는 효과, 팬들의 (선악역이 뒤바뀌었지만)열렬한 환호가 더해지자 경기는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버무려졌다. 중간중간 배리케이드를 관통하는 로먼의 스피어, 로먼의 슈퍼맨 펀치를 서브미션으로 반격한 트리플 H의 동작, 로먼의 스피어를 얻어 맞은 스테파니 맥맨 등은 경기를 더 재미있게 관전할 수 있는 적절한 포인트가 됐다.

승리는 로먼의 차지였다. 로먼은 트리플 H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슬레지해머로 공격하기 전에 주 기술인 슈퍼맨 펀치를 연달아 날린 뒤 스피어까지 작렬한 후 커버에 성공, 새로운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됐다.

‘WWE의 가장 큰 무대’ 레슬매니아의 메인 이벤트에서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고 기뻐하는 로먼에게 여전히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아직도 그를 챔피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마니아 팬들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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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먼에 대한 역반응이 나온 것은 꽤 오래 됐다. 로먼이 차세대 챔피언으로 낙점됐다는 거의 확실한 루머가 전달된 후 로먼에 대한 팬들의 환호는 ‘뭘 해도 욕하는’ 역반응으로 바뀌었다. 스토리 상 가장 악랄한 악역을 응징하더라도 야유가 쏟아졌고 좋은 경기를 만들어내면 로먼 상대의 덕, 경기가 재미없으면 로먼의 탓이 됐다. 이를 위해 WWE는 로먼을 챔피언에 등극시켰다가 단시간에 뺏는 스토리도 활용했지만 경기에서 패배하더라도 그건 다음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한 발판이라는 공식이 팬들의 머릿 속에 박혀버렸다.

어떻게 보면 억울할 수도 있었지만 로먼은 사실상 흥행력과 상품성 모두 스스로 증명하진 못한 상태였던 데다가 WWE의 일방적 푸쉬(프로레슬링에서 특정 선수를 띄워주기 위해 주요 비중 등을 맡기거나 연승을 하게 만드는 의도적 각본)를 받았기에 모든 짐을 떠안아야 했다. 팬들이 원하는 만큼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그의 탓도 있지만 브렛 ‘히트맨’ 하트,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더 락’ 드웨인 존슨, 크리스 제리코 등 프로레슬링계의 고참들이 지적했듯 ‘새로운 인물’을 빨리 키워야 한다는 조급함에 빠져 작위적인 각본을 진행한 WWE의 탓도 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바람과는 역으로 가는 WWE의 각본에 불만을 품은 팬들은 경기 도중 경기에 상관없이 이틀전 열린 ‘NXT’를 연호하거나 NXT에서 훌륭한 경기를 펼친 ‘새미 제인’, ‘신스케 나카무라’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WWE 마니아들의 반항 가득한 항의인 셈이다. 그러나 결국 WWE는 원래 계획대로 로먼에게 승리를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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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야 어찌됐든 로먼은 WWE의 향후 1년 계획을 수립하는 WWE 레슬매니아의 대미를 장식하며 공식적으로 자신이 WWE의 얼굴이 된다는 것을 선언했다. 바꿔서 말하면 팬들의 역반응을 무릅쓰고 로먼을 ‘WWE를 이끌어 갈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WWE의 뜻이기도 하다.

혹자는 승패가 정해져 있는 프로레슬링이라는 장르에서 과연 챔피언이 뭐가 중요한가라고 되물을 것이다. 그러나 WWE에서 챔피언의 역할은 WWE 단체의 얼굴, 그 자체다. 헐크 호건이 그랬고,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이 그랬고, 존 시나가 그랬다. 그들을 보면 WWE의 노선을 꿰뚫어 볼 수 있고 WWE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중요시하는 시청자층이 어느 정도인지를 예상할 수 있다. 넓게 보면 프로레슬링 업계를 선도하는 WWE의 얼굴은 곧 프로레슬링 업계의 대표, 방향과 동일시한다 해도 과장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WWE가 팬들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먼을 WWE의 얼굴로 낙점했다는 것은 향후 WWE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WWE의 속은 여전히 알 수 없다. WWE가 그를 챔피언 자리에 앉힌 것은 존 시나처럼 결국엔 팬들의 역반응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아니면 WWE의 무리한 고집일까, 혹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로먼에게 기쁨과 고통을 번갈아 주면서 팬들의 역반응을 서서히 줄이려는 WWE의 계획일까. 로먼이 팬들의 역반응을 이겨내고 존 시나의 후계자가 될지, 결국 과거의 더 미즈와 같은 전철을 밟을 지, 이제 로먼은 묵직한 첫 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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