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대신 감성으로 승부‥틈새시장 파고든 AI 음악
노래 듣고 사연을 꺼내놓는 청자들‥“위로의 장 됐다”
흥행에는 성공했으나‥남은 과제는 저작권
[헤럴드뮤즈=김나율 기자]“이제 음악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느냐보다 ‘얼마나 다시 듣고 싶은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AI 음악의 흥행은 기존 음악 시장의 빈틈과 대중의 감성적 수요를 파고든 결과입니다.”
‘머무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멜론 TOP100 상위권에 오른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를 들어봤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곡을 부른 목소리는 인간 가수가 아닌 AI다. 조선힙합의 ‘마음의 숲’ 역시 멜론 차트에 진입하며 음악 시장에서 AI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제 AI 음악은 단순 호기심을 넘어 대중의 선택을 받는 단계에 들어섰다. 흥미로운 점은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서로 다른 반응이다. 누군가는 AI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위로를 얻지만, 누군가는 AI가 인간 가수와 같은 차트에서 경쟁한다는 사실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AI가 건드린 건 결국 ‘익숙한 추억의 감성’이었다
머무르의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와 조선힙합의 ‘마음의 숲’은 최근 유행하는 SNS 챌린지나 짧은 tt숏폼에 최적화된 음악과는 다르다. 강렬한 후렴이나 반복적인 안무 대신, 감성적인 분위기와 가사, 듣는 이의 경험을 건드리는 정서가 중심이다. 어딘가 익숙하고 보편적인 감성을 담았다는 점에서 기존 발라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그 익숙함이 반가운 선택지가 됐다.
K팝 시장은 아이돌 중심으로 규모를 키우며 챌린지와 바이럴, 짧은 시간 안에 대중의 시선을 붙잡는 음악의 중요성을 높여왔다. 물론 다양한 장르와 음악이 공존하지만, 팬덤 바깥의 청자에게는 편하게 듣고 자신의 감정을 대입할 만한 노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질 여지도 있다. AI 음악의 흥행은 기술 자체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원했던 감성적인 가사와 서사를 이들 음악에서 발견했을 수 있다.
심재걸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러한 현상을 기존 음악 시장의 빈틈을 파고든 결과로 해석했다. “이제는 호기심 단계를 넘어 피로감이 쌓일 정도로 많은 AI 음악이 쏟아지고 있다”며 “그중에는 높은 완성도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곡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중의 반응은 ‘사람인가, AI인가’같은 제작 방식보다 음악 자체에 크게 좌우된다. 얼마나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인지, 멜로디와 가사, 그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는지가 중요하다. 현재 주류 음악 시장의 빈틈과 감성적 수요를 잘 파고든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조선힙합은 직접 가사를 쓰고 생성형 음악 도구 ‘수노’를 활용해 곡을 제작한 사례다. AI가 음악을 만드는 도구가 되면서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가능해졌다.
누군가에겐 위로, 누군가에겐 불쾌감‥AI 음악을 둘러싼 온도 차
두 곡을 둘러싼 반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유튜브 댓글창이다. 수천 개의 댓글에는 각자의 삶이 담겨 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여전히 버거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 투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 아픈 가족을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음악을 단순히 평가하는 공간을 넘어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위로를 주고받는 장이 만들어졌다.
반면 멜론 음원 댓글과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정반대의 반응도 나타난다. AI 음악이 차트에 오래 머무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부터 별도의 AI 음악 차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사람이 시간과 노동을 들여 만든 음악과 AI가 생성한 음악이 같은 기준에서 경쟁하는 것이 공정하냐는 문제의식이다. AI가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는 노래를 만들어 높은 성적을 거두는 현상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카페에 들어갔는데 AI 음악이 흘러나오면 다시 나간다’는 식의 밈이 확산하는 것도 이런 정서를 보여준다. 좋은 음악이면 제작 주체가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입장과, 음악은 인간의 경험과 창작 노동이 담겨야 하는 예술이라는 입장이 맞선다.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주는 노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간 창작자의 자리를 위협하는 게 된다.
심재걸 대중문화평론가는 AI 음악을 둘러싼 반감에는 인간 창작자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와 창작물의 질적 저하에 대한 피로감이 함께 작용한다고 봤다. “AI는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동시에 인간의 업무를 늘리는 모순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이미 전문 창작자 영역에서도 보조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며 “엄청난 생산력으로 인해 질적 저하와 양적 포화에 대한 반감이 생기는 한편, 수준 높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감동을 끌어내지 못하는 창작물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누가 만들었느냐는 논쟁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AI는 이미 창작 영역 깊숙이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저작권 논의는 아직 제자리
AI 음악이 실제 차트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저작권 인정 범위와 수익 배분 구조 마련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AI 활용 음악 제작자들은 음원 제작자로서 인정되는 저작인접권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지만, AI가 생성한 음악 자체에 대한 저작권은 인정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AI 활용 여부만으로 결과물의 권리를 일률적으로 인정하거나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사람이 직접 작사한 가사, AI가 창작한 멜로디, 인간의 손을 거친 편곡 및 후반 작업 등 제작 단계별 기여도를 정밀하게 구별해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AI 음악은 차트 진입을 통해 이미 그 시장성을 입증했다.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지만, 이는 음악 산업이 받아들여야 할 불가피한 현실이다. 이미 AI 음악이 리스너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만큼, 이제 가요계는 AI 음악의 유통과 소비, 그리고 이에 따른 권리 침해와 수익 배분 문제를 제도권 안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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