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강렬한 비트의 락 사운드가 관객을 맞이하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이라는 키워드만 두고 전체적으로 새 옷을 입은 이 작품은 돌연변이 로미오와 인간 줄리엣의 사랑을 그린다.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린다면 터무니 없을 수도 있지만, 변질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올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이하여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 여러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탄생했다. 그 중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극작/연출 성종완)은 동명 작품을 각색한 작품으로, 핵 전쟁 이후 생겨난 돌연변이와 인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핵 전쟁 이후, 인류는 지하철 역에서 살아남는다. 지상은 온통 오염물질로 뒤덮여 여러 종류의 돌연변이를 만들어낸다. 카풀렛 역의 인류와 몽타궤 역의 돌연변이는 생존을 위해 서로를 끊임없이 죽인다. 그러던 어느날, 카풀렛 역의 호기심 많은 소녀 줄리엣은 남몰래 바깥 세상에 나가 돌연변이 소년 로미오를 만나게 된다.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리는 두 사람이지만 "우린 다르지 않다"고 외치기에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장 큰 무기이자 무대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앙상블이다. 몽타궤의 돌연변이들로 분한 앙상블 배우들은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좀비를 연상시키는 살벌한 분장과 그것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거침없이 벗은 상의. 날 것은 조련되지 않은 이미지를 형상화 시키며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심재인 안무감독의 플로어와 행잉 등을 전격 도입한 아크로바틱한 안무는 돌연변이들의 기괴한 움직임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게다가 왠지 마주치면 안될 것 같은 그들의 눈빛은 인간의 형태였다면 보여줄 수 없는 새로움을 선사한다.

원수 집안의 설정을 종족 간의 전쟁으로 변화시켜 집단 싸움 액션 씬이 풍성하다. 이은석 무대 디자이너가 빗어낸 직접 배우들이 움직이는 이색적인 무대 구조는 극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죽음이 한 바탕 휩쓸고 간 것 같은 망가진 지하철 역 안에서 인류와 돌연변이들은 철조망, 꺾여 널부러진 철근 등을 피해가며 2층 정도 높이의 세트에서 뛰어내리고, 지하로 숨어들기도 한다. 경쾌한 락 비트를 타고 넘듯 겁 없이 뛰어다니는 배우들을 보자면 조마조마한 마음도 들지만, 그 스피디한 감각은 새롭게 각색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볼거리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극 전반적인 내용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았지만, 1막 엔딩을 장식한 스타는 단연 머큐쇼였다. 몽타궤 돌연변이들의 리더인 머큐쇼는 인간을 나약한 존재로 여기며 그들을 사냥감으로만 생각한다. 로미오에게도 끊임없이 전쟁에 동참할 것을 권하지만, 결국 그는 친구인 로미오를 위해 몸을 날려 총알을 받아낸다. 머큐쇼는 쓰러친채 절규한다 "세상을 절망에 빠뜨린 건 우리가 아냐. 전쟁도 파괴도 모두 저들이 한 짓"이라고. 음악 없이 온전히 배우의 숨소리와 목소리로 이끌어 나가는 이 장면은 앞으로 헤어져야만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운명을 암시한 동시에 두 종족 간 싸움의 처절함과 비극적 죽음을 애절하게 표현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큰 틀만 두고 새롭게 싹 바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지라도, 아무리 돌연변이 소년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라 할지라도, 두 사람은 연결될 수 없다. 이 작품의 핵심은 결국 이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비극으로 치닿을 이 사랑을 어떻게 끝맺을지에 관객들은 몰입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쓰린 엇갈림을 위해 나타난 것은 자신들을 '신인류'라고 칭하는 돌연변이 집단이다. 로미오는 인간을 하등시여기고, 자신들이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라 외치는 또 다른 돌연변이들을 만난다. 이곳에서 인간이 되는 약을 구한 로미오는 기쁜 마음으로 줄리엣에게 향한다. 같은 시각, 줄리엣은 사제이자 과학자인 로렌스를 협박해 돌연변이로 변하는 약을 구한다. 엇갈린 사랑의 방향은 그들을 끔찍한 결말로 이끈다.

사랑을 위해 자결로 끝난 들끓는 고전적 엔딩을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변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속해 있던 집단의 동료의 공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하는 안타까움은 돌연변이 좀비 떼에 둘러쌓이며 조명이 암전되는 것으로 극에 달한다.

강렬한 락 사운드의 음악, 환상적인 비주얼, 역동적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안무로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 3박자를 모두 갖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이지만 한층 어려진 배우들의 라인업과 돌연변이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다소 트렌디한 주제로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새다. 이제 막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배우 이름보다 가수에서 성공적으로 연기자로 안착했다는 평을 받는 아이돌 멤버의 이름이 캐스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몇몇 배우들에게는 아직 더 터뜨려야 하는 감정선과 고음 처리의 불안함 등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새롭게 각색된 '로미오와 줄리엣' 내용만 놓고 보자면, 과거 아닌 미래에는 이런 로미오와 줄리엣도 터무니 없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올해 아홉개가 넘는 작품을 프로듀싱하며 최고의 웰메이드 창작 공연 큐레이터로 떠오른 김수로 프로듀서가 예술 감독으로, 여기에 세련된 연출력으로 정평이 난 성종완 연출이 각색과 연출을 맡아 판타지 로맨스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낸 창작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많은 역할이 더블 혹은 트리플 캐스팅으로 이루어져 조합별 다른 느낌을 감상할 수 있다. 로미오 역에는 조풍래·동현·고은성, 줄리엣 역에는 양서윤·김다혜·전예지, 티볼트 역에는 김수용·김종구, 머큐쇼 역에는 박한근·이용규, 로렌스 역에는 이훈진·이선근, 소피아 역에는 한서윤, 박재은, 벤 볼리오 역에는 정재혁, 마르코 역에는 윤 담, 단테 역에는 노정현·김현중이 출연한다.

'김수로 프로젝트' 20탄 창작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는 3월 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사진 제공=쇼온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