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것.'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그 시절 이야기는 역사일 뿐이다. 그럼에도 뮤지컬 '아리랑'이 공감을 일으키는 것인 단지 우리 조상님의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호시절오겠제' 노래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것, 마음속 깊이 담아둔 신념을 마치 부러지지도 구부러지지도 않는 단단한 기둥을 심은 듯 지켜나가는 것,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포기를 모르고 맞서 싸우는 것, 이런 뜨거운 감정이 한국인의 얼이 담긴 아리랑과 어우러져 감동을 선사한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제작된 뮤지컬 '아리랑'이 2년 만에 재공연으로 돌아왔다. 안재욱, 서범석, 김성녀, 김우형, 윤공주 등 주·조연 배우 및 앙상블 배우들 대부분이 재공연에 참여했고, 윤형렬, 박지연, 장은아 그리고 소리꾼 이승희 등 실력파 배우들 또한 합류했다.
뮤지컬 '아리랑'은 천만 독자에게 사랑받은 작가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뮤지컬화 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파란의 시대를 살아냈던 민초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투쟁의 역사를 담았다.
초연 당시 4만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성공적인 공연을 펼친 뮤지컬 '아리랑'은 스타일리시한 현대극이 아님에도 20~30대 젊은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리랑'이라는 우리의 문화가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콘텐츠임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이런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2년 만에 돌아온 '아리랑'은 더욱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40년 세월에 걸친 거대한 드라마는 상황과 인물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재해석한 상징적인 이미지를 프로젝터와 리어(후면) 스크린, 홀로 그래픽 스크린을 통해 서정적이면서도 때로는 강렬하게 표현한다. 더불어 환란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아리랑의 다양한 변주를 포함한 50여 곡의 음악은 21인조로 확대 편성된 오케스트라의 선율로 드라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뮤지컬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 그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양반 송수익의 몸종이었던 양치성은 자신의 아버지가 의병에 살해되자 친일파가 되어 우체국장 하야가와의 주선으로 일본 첩보원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다. 송수익은 만주로 가서 독립군을 이끈다. 감골댁의 딸 수국이와 친구 옥비는 일본 앞잡이들의 괴롭힘에 몸을 버린 뒤, 험난한 인생을 살아간다.
일본의 앞잡이가 된 양치성은 송수익의 행방을 추적한다. 감골댁도 양치성의 농간으로 비참하게 죽는다. 그 과정에서 양치성은 평소 연정을 품고 있던 수국이를 협박해 강제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만주에서 일본토벌대의 조선인 살육이 자행된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독립군은 '아리랑'을 부른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무너질 줄 모르고 뒷걸음질 치지 않은 기상(氣像)은 일본군을 결국 무릎 꿇게 한다.
'아리랑'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슬픔, 분노, 깨달음, 긍지 등 다양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휘몰아치는 가운데 이런 감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소가 있다. 바로 판소리다. 뮤지컬 공연 속 판소리는 감각적이다. 그리고 이 판소리는 '아리랑'이 '우리의 이야기'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새겨준다. 한국인의 한이 서린 그 가락과 목소리만으로 공연장의 집중도와 공감대가 높아진다.
각 캐릭터가 가진 스토리 또한 주목할 만하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인물들의 이야기는 탄탄하게 전개되며 극적 감동을 선사한다. 빈틈없는 개연성으로 모든 인물이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인을 나타낸 방법이다. '아리랑'은 강점기 시절 일본군의 잔인함을 드러내면서도 그들의 특색을 코믹하게 표현했다. 특히 마지막에 일본군이 무릎 꿇고 고개 숙이는 자세를 취하게 하거나, 커튼콜 때 일본인 역할을 맡은 앙상블들이 '스미마셍'하고 사과하게 하는 모습은 극을 본 뒤 한구석에 남는 씁쓸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극의 엔딩을 장식하는 상여 타고 아리랑을 흥겹게 부르는 모습은 벅찬 감동을 전한다. 슬픔을 억누르고 표출된 밝은 민족성은 '아리랑'이란 한 단어로 한국인의 피가 끓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아리랑' 속에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기억에 남는 명장면과 명대사가 많다. 그중 일본군을 피해 지하에서 새로운 아리랑을 배우는 장면은 특히 잊혀지지가 않는다. 발소리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우리의 가락, 우리의 것을 배우고 익히는 모습. 고개를 땅에 처박고도 입에서는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던 그 아리랑. 현재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지켜졌는지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작품이 전하는 감동 요소를 꼽자면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송수익 역 서범석은 무게감 있는 연기로 '아리랑'을 더욱 묵직하게 만들었다. 양치성 역 윤형렬은 일본의 손을 잡은 배신자의 입장이었지만 소름 끼치게 밉기보다 필사적인 삶의 모습을 부각해 헛헛한 느낌을 들게 한다. 방수국 역 박지연과 차옥비 역 이소연은 판소리를 선보이며 당시 여성으로서 느껴야 했던 치욕과 역경을 강한 에너지로 표출했다. 감골댁 역 김성녀는 존재감만으로 무대를 채우며 마지막까지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을 표현해 눈물샘을 자극했다.
'아리랑'의 원작자 조정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조선이다' '질 줄 알면서 싸움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가장 진정한 용기다' 이 두 마디가 '아리랑'의 주제"라고 밝혔다. 그가 '아리랑'을 쓴 것은 처절한 굴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민족 전체가 노예로 전락하고, 짓밟히고, 착취당하며 살해당하는 식민지라는 상황. 그 세월 동안 헐벗고 굶주리고 유린당했던 그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결연함이 아리랑에 서려 있다.
뮤지컬 '아리랑'의 고선웅 연출은 "연습하는 내내 아리랑이 계속되어야 하는 제 이유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에 마음이 더 갔다. 누가 아리랑을 딱 만든 게 아니고 저절로 된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픈 욕심이 더 컸다"고 전했다.
우리의 노래이자 삶인 '아리랑.' 매일 발전되고 변화되는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변함없이 지켜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뮤지컬 '아리랑'은 오는 9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 제공=신시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