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이 작품, 그저 평범한 섹시함이 아니다. 치명적인 아찔함,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있다.

지난 7월 25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개막한 연극 '비너스 인 퍼(Venus in Fur)'가 오는 8월 27일 마지막 공연을 펼친다. 연극 ‘비너스 인 퍼’는 ‘마조히즘’이라는 말을 탄생하게 만든 자허마조흐(L.R.von Sacher-Masoch)의 가장 유명한 동명 소설 '비너스 인 퍼'(1870)를 극작가 David Ives가 연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권력이 갖는 힘을 에로틱하면서도 코믹하게 풀어낸 2인극인 '비너스 인 퍼'는 극 중 연출가가 가진 권력과 연기하는 여배우의 권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한정된 장소, 오디션장에서 각자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상대방을 지배하는 모습을 세련되고 섹시하며, 코믹하지만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풀어낸다.

새디스틱한 연출가 토마스는 자신이 각색한 연극 '비너스 인 퍼' 여배우 선발을 위해 오디션을 개최한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배우를 찾지 못한 그는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겠다"고 투덜거리며 자신을 기다리는 여자친구에게 갈 준비를 한다. 오디션이 이미 종료된 그때, 지각생 벤다가 시끌벅적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이 늦은 이유에 대해 시끄럽게 설명하던 벤다에게 잠시 기세를 밀렸던 토마스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당신은 오디션 리스트에도 없다"면서 오디션을 거절한다.

하지만 당돌한 벤다는 막무가내로 준비해 온 의상을 입고 대본을 든 채 두나예브를 연기한다. 토마스는 벤다의 준비성에 놀라면서도 완전판 대본을 어디서 손에 넣었느냐며 추궁한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벤다는 이내 토마스에게 상대 역할인 쿠셈스키 부분을 맡아주길 강요하며 일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다.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되는 '비너스 인 퍼'의 매력은 그 경계의 모호함이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오가며 권력과 젠더, 이성과 본성의 문제를 치밀하고도 통쾌하고 파고들기에 이 작품은 더욱 아찔해진다. 극이 진행될수록 가속되는 흐름과 두 사람의 돌고 도는 역할은 한 치도 놓치고 싶지 않은 관객들의 집중력을 더욱 높인다.

관능적 매력이 부각되는 작품이긴 하지만 '비너스 인 퍼'를 단지 '섹시한 극'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표현력이 모자라다. 공감가는 풍자와 날카로운 비판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벤다는 오디션장의 최고 권력자인 연출 토마스에게 "네가 쓴 글은 SM 포르노"라며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많은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또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여성의 모습에 대해 통쾌하게 지적한다.

현실의 토마스와 벤다가 연기하는 대본 속 쿠셈스키와 두나예브, 거기에 신화 속 인물 비너스를 절묘하게 뒤섞으며 권력의 힘에 따라 변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에로틱하게 표현한 '비너스 인 퍼'의 무대는 양면을 객석으로 배치한 구조 덕분에 인물 자체와 갈등 구조가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났다. 더불어 런웨이 형식의 긴 무대는 시각적 거리감을 부여함으로써 인물 간의 심리 표현을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냈다.

눈에 띄는 소품 대신 선택한 무대 양 끝에 배치된 거울은 신비감을 부여하며 두 사람의 모습을 더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게 만들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에 빛과 어둠의 대비가 강조된 조명은 극에 넘쳐나는 긴장감을 더하며 흥미진진함을 선사했다.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비너스 인 퍼'는 이번에 국내 초연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난 2010년 오프 브로드웨이 초연에서 단번에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폭발적인 반응으로 연장 공연을 펼쳤고, 이듬해인 2011년 브로드웨이에 당당히 입성 '가장 섹시하고 재미있고 칭찬받는 새로운 연극'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연출가 토마스 역에는 지현준·이도엽, 여배우 벤다 역에는 이경미·방진의가 출연한다. 연극 '비너스 인 퍼'는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8월 27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제공=달 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