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총영사관 개방행사에서 한국문화 체험행사 열려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지자 파독 광부 출신인 함부르크 한인회의 곽용구 회장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함부르크 한인여성회 김선배 회장의 눈가도 어느새 불그스레 변했다. 일부 교민들은 나지막하게 아리랑 선율을 따라 불렀다. 눈가에 이슬이 송글송글 맺혔다.
지난 22일(한국시간) ‘영사관 개방행사(Lange Nacht der Konsulate)’가 열린 주독일 함부르크 대한민국 총영사관(총영사 장시정). 교민 성악가로 구성된 4인조 아카펠라 그룹 ‘슈팀멘스’가 경복궁 타령과 독일 노래(Die Forelle)에 이어 아리랑을 부르자 재독교포 1세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날 행사는 함부르크 주정부에서 주관한 문화행사로, 함부르크 내 25개국 영사관과 6개국의 문화원이 공관을 개방하고 자국의 문화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한국 총영사관엔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약 300명이 방문하여 한때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독일 시민들은 “최고다”, “멋있다” 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방문객들로 늦은 시간까지 활기를 띄었다.
■ IMF 때 금모으기 운동 벌이자 독일인들 찬탄 "'코레아? 어디 있는 나라인데?' 이게 40년 전의 일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1999년 3월에 함부르크에서 총영사관이 철수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거리엔 가로등이 꺼지고,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아시아의 용, 한국이 이제 침몰한다'는 뉴스가 뜨고…. 교민들은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국민들의 금모으기 운동이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 독일인들은 그야말로 찬탄했습니다."
곽용구 회장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지금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입니다. 예전엔 한국 총영사관에 오는 독일인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곽 회장은 "독일인들은 한국을 IMF 위기를 딛고 발전한, 아주 드문 나라로 생각한다"면서 "교민 1세들은 힘든 일을 하면서 고생했지만 2세들은 부모들이 열심히 사는 것을 지켜보면서 바르게 성장하였고, 이제는 노동자가 아니라 독일에서 최고 수준의 인재로 활약하기 시작했다"고 뿌듯해 했다.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함부르크 간호사회에서도 활동하는 김선배 회장은 “예전엔 우리에게 일본사람이냐고 묻는 독일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한 뒤 “하지만 이젠 한국이 전자제품, 자동차, 핸드폰, K팝, 그리고 한식을 앞세워 독일에서 아주 우수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IMF 때 총영사관이 폐쇄된 뒤 매달 한 번씩 베를린대사관에서 영사가 방문을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슬펐습니다. 오늘 총영사관에 독일 분들이 많이 온 것은 우리나라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갔다는 증거일 겁니다.”
■ 전자제품, 자동차, 케이팝 앞세워 국가브랜드 향상
이날 행사에서 한국 총영사관은 △서예 시연과 체험, △한복 입어보기, △전통다과 시식 및 한국음료 시음, △한글 디자인 전시, △아카펠라 공연 등을 마련했다.
방문객들이 가장 먼저 접한 것은 정소미 디자이너의 한글 디자인 전시회. 함부르크 시민들은 알파벳과 다른 모양의 한글을 보면서 신기해 했다. 정 디자이너는 한글의 과학성과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질문에도 상세히 답변하였다. 곽용구 회장도 “한글은 6주만 배워도 읽고 쓸 수 있는 아름다운 글이요, 마음의 글이에요”라면서 열심히 설명했다.
“한국에 관심이 있어서 왔는데, 한글은 글씨체가 정말 귀여워요. 보기에도 참 좋습니다. 한글 발음도 무척 흥미롭네요. 한글을 만든 원리가 과학적인 것 같습니다.”
가족과 함께 방문한 독일고교생 니타 양은 붓글씨로 쓴 자신의 한글 이름을 가슴에 얹고 기념 촬영을 했다. “한글에 관한 정보를 얻어서 기쁘다"면서 "행사를 시작할 때부터 사람들이 많아서 깜작 놀랐다”고 말했다.
■ "한글 글씨체가 정말로 귀엽습니다" 방문객들이 두 번째로 접한 것은 한복 체험. 한인여성회에서 준비한 전통 혼례 예복과 개량 한복을 입고 소형 전통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특히 원색의 강한 색채감으로 화려한 멋을 풍기는 전통 혼례복에 매료되었다. 여성들은 머리에 족두리를 얹고, 드림댕기까지 달면서 우아한 미를 자랑했다. 남성들은 사모로 머리장식까지 하니 제법 기품이 있어 보였다.
"아이고~, 이쁘기도 해라. 한국에 시집 장가를 온 독일 며느리와 사위 같아요. 전통 혼례 예복엔 부부의 화합과 장수, 자손번창의 의미가 담겨 있답니다. 같이 사진을 찍을까요."
한복 체험 행사를 맡은 한인여성회 회원들은 연신 싱글벙글했다. "한국사람들 못지않게 서양사람들에게도 한복이 잘 어울린다"면서 "한국 영사관을 찾은 독일 시민들이 정말로 고맙다"고 입을 모았다.
50대로 보이는 미하엘라 쾨니히 씨는 한복을 입어본 뒤 찬사를 보냈다.
“한복 색깔이 정말로 아름답고 화려합니다. 한국에 얼마나 재미있는 문화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곳에 온 보람이 있습니다. 한국은 분단된 국가이고, 남북이 갈등을 겪고 있고, 김치 같은 음식이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복을 입어보니 진짜로 멋있어 보이고, 한국의 문화가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한복 체험' 인기폭발…줄지어 서서 대기 한복 체험 코너는 남녀노소에게 모두 매우 인기가 높아 대기줄이 늘어섰다. 전시된 옷이 일상복인지, 한복의 색깔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등 질문도 쏟아졌다. 입소문을 듣고 마감 직전에 찾아온 방문객들도 있었다. 북독일 공영방송 NDR에서는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전통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한국 총영사관의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을 정도다. 체코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영사관 투어를 즐기던 한 여성은 "한복이 정말 화사하고 아름답다"면서 "내년에도 꼭 오겠다"고 말했다.
서예 전시회도 독일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함양분 서예가가 방문객들의 이름을 써주며 시연을 하고, 이들도 자신의 이름을 직접 써보는 체험을 하게 했다. 시민들이 줄지어 설 정도로 호응도가 높았고, 일찌감치 총영사관을 다녀간 시민들의 손에 든 한지를 본 다른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오기도 했다.
“붓에 먹물을 묻혀 종이에 한글을 쓰는 느낌을 뭘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서예로 한글을 써 보니 마음이 차분하게 정돈됩니다. 서예가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마케팅 매니저로 자신을 소개한 볼프강 뤼텐스 씨는 “한국의 서예 문화에 관심이 많다”면서 “서예의 곡선이 정말로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6개월 전에 재즈 콘서트에서 한국인이 출연한 것으로 보고 한국에 관심을 두었는데 오늘 행사는 아주 성공적인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 "한국은 품격 있고 경제가 발전한 나라" 칭송 서예 전시장을 둘러보던 패션 디자이너인 모니카 지몬 씨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합기도 시범을 본 계기로 한국의 음식과 서예, 의상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서 “오늘 행사에서 한국은 품격이 있고, 경제적으로도 발전한 나라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즉흥적으로 여기에 온 것은 아닙니다.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한국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북한 문화를 접할 수가 없어 아쉽기도 합니다. 북한은 폐쇄적이고 비밀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북한 문화도 알고 싶은데 어쩔 수 없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더 멀어지기 전에 어서 빨리 통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독일도 통일을 이루었거든요.”
지하 발리에 씨는 “한국의 문화 못지않게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도 관심이 많다”면서 "독일처럼 남한과 북한도 하루빨리 통일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식 홍보에도 신경을 썼다. 유밀과, 식혜 등 전통다과와 국내 시판 포도주스 및 배주스를 맛볼 수 있게 하였다. 방문객들은 현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음료와 간식에 관심을 보이며 구입처를 문의하기도 했다.
■ 재무장관과 녹색당 의원도 한국 총영사관 방문 6시부터 10시까지 열린 이날 행사는 함부르크 총영사관을 주축으로 하여 한인회와 한인여성회가 힘을 합해 빈틈없이 준비했다. 한글 디자인으로 입구에 장식을 하고, 한옥 모양의 소형 전통문과 병풍을 설치했으며, 독도와 한국 음식 및 한국 관광을 홍보하는 자료도 비치했다. 장시정 총영사와 이동규 영사, 김남호 영사의 부인도 독일 손님들을 맞이했다.
이날 참석자는 약 300명으로 10대부터 60대까지 각 분야의 인사들이 다녀갔다. 함부르크 주정부의 첸처 재무장관 내외(Dr. Peter Tschentscher, Eva Maria Tschentscher)와 녹색당의 무라트 괴차이(Murat Gozay) 의원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도 찾아왔다. 첸처 장관은 "주정부 장관들은 방문 예정 영사관을 미리 선택해야 하는데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한민국을 택하였다"면서 "함양분 서예가의 지도로 써본 나의 한글 이름을 사무실에 걸어두겠다"고 말했다.
교민들은 이날 행사에서도 확인한 한국의 높아진 위상에 뿌듯해 하면서도 일부 안타까운 속내를 내비쳤다. 세월호 침몰사고와 땅콩회항 사건 때 독일인들의 반응이 어땠냐고 질문하자 "이런 사건이 보도되면서 나라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었다"고 밝혔다.
■ 세월호와 땅콩회항 사건은 독일인들 이해 못해 "사실 이 질문엔 무엇이라고 답변하기가 어렵습니다. 당시에 정말 창피했습니다. 한국은 모든 일을 철저하게 사전점검하는 일을 소홀히 여기는가 봅니다. 세월호와 땅콩회항 사건 때 독일인들은 도저히 이해를 못했습니다. 최근의 사건만 보아도 아직도 부정부패가 많고, 정치인들은 만날 싸우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일부 한국 사람들은 너무 방만하게 호화생활을 합니다. 독일인들은 집안 수리도 가급적 직접하고 결혼식도 분수를 넘지 않게 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친구들과 아이 옷을 서로 바꾸어 가며 입힙니다. 자라는 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낡아서 못 입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독일에서는 무척 검소하게 삽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자 나라 국민이면서도 알뜰하게 사는 독일인들이지만 기부를 하는 데서는 세계 1위를 합니다. 예를 들어 지진이나 전쟁이 난 지역을 돕는 데 앞장섭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여행길에 빵을 싸들고 떠납니다. 음식점에서 먹는 게 아까워서 그러는 겁니다. 이런 점을 한국의 젊은이들이 배워야 합니다."
■ 너무 낭비하지 말고 검소한 독일인들 본받아야 교민들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취업이 안 된다고 걱정만 하지 말고 독일에 관심 두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곽용구 회장은 "독일 사람들은 '사람다운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나라가 선진국'이고 '그런 나라가 바로 독일'이라고 자부합니다"라고 말했다.
"독일은 세계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여 개방정책을 표방하고, 세계인들에게 '독일이 믿을 수 있는 나라고, 살기 좋은 나라'라고 홍보합니다. 또 해외의 훌륭한 인재들에게 독일에 와서 같이 살자고 손짓을 합니다. 한국의 유능한 젊은 인재들이 이주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나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독일은 인구 감소로 어차피 해외에서 인력이 들어와야 사회가 지탱이 됩니다."
곽용구 한인회장은 "독일에 오려면 영어나 독일어는 필수로 공부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인성을 갖춰야 한다"면서 "순수 학문보다는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들이 오면 더 많이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문화가 흥미롭다” “한국문화를 알 수 있는 멋있는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행사에 초대 받아 감사드린다.”
영사관 개방 행사장 로비의 방명록에는 독일 시민들의 서명이 있었다.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위치한 알스터 호수 주변은 어느덧 어둠이 깔렸다.
■ 한복과 서예 등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 대성공
이동규 영사는 “카이스트 진학 정보를 요청하거나 한국 기업에서의 인턴십을 하고 싶다며 문의할 정도로, 기대 이상으로 독일인들이 한국에 관심이 많다.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한국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시정 총영사는 "요즈음 외교활동은 상대방 정부사람들만 상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반사람들에게도 다가가는 공공외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특히 독일 같은 나라는 여론이 정부를 움직인다고 본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외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단순히 보는 행사를 탈피하고 직접 체험해 본다는 데 착안하여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재무장관도 자신이 직접 써본 한글에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을 하더군요. 한복 입어보는 코너에서도 함부르크 시민들이 줄을 선 것을 보면 이런 접근이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함부르크 총영사관은 함부르크, 브레멘, 니더작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등 독일 북부 4개 주를 영사 관할지역으로 하고, 교민을 위한 영사 서비스 제공뿐만 아니라 관할 지역과의 경제 및 문화 교류협력 강화를 담당한다. [함부르크(독일)=신향식 프리랜서 기자]
sport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