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재난 영화 특유의 감동 공식을 과감하게 깨부순 '터널', 새로운 본보기의 탄생이다.
3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는 영화 '터널'(감독 김성훈/제작 어나더썬데이, 하이스토리, 비에이 엔터테인먼트) 언론시사회가 진행됐다.
'터널'은 집으로 가는 길, 갑자기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한 남자와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장르는 그렇지만, 전개와 메시지는 일반적인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간 관객들에게 익숙했던 거대한 재난, 수많은 희생자, 영웅적 활약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주인공, 뻔한 감동 코드는 '터널'에 없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터널'의 초점이 일반적인 재난물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물량공세가 아닌, 일상적 디테일에 주목한다. 불행의 시발점이 된 주유소부터 시작해 무너진 터널 안에서도 비현실적인 설정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터널'은 러닝타임 126분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는 순수하게 이야기의 힘이다.
이 영화의 초점은 터널 안과 밖으로 나뉜다. 붕괴 사고 후 차 안에서 1분이 1초 같은 시간을 버티는 이정수와, 그를 구조하기 위해 합심한 바깥 사회의 온도차가 전개의 동력이다.
하정우가 퇴근길 갑자기 무너진 터널에 홀로 고립된 남편 정수 역, 배두나가 정수의 아내 세현 역, 오달수가 구조대장 대경을 연기한다.
주인공 정수는 극한 상황에서도 여유와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는다. 그는 터널 안에서도 청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름의 생활을 꾸려간다. 나중에는 그 안을 '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란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반면 터널 밖에서는 여러 이해관계가 펼쳐진다. 이정수의 불행을 단지 특종거리로만 소비하려는 기자와, 전시행정에만 몰두하는 국민안전처 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그를 향했던 세간의 관심은 점차 시간이 지나자 돌아선다.
즉, '터널'은 재난물을 가장한 풍자극이다. 김성훈 감독은 "아무 잘못 없는 평범한 사람이 그가 속한 사회가 저지른 실수로 인해 재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상황 자체로도 보여줄 것들이 많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니 전형적인 공식에 기대는 전개가 없을 수밖에.
물량 공세가 아니기에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극을 이끄는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터널'은 제한된 공간에서도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만들어내는 하정우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1인 재난극 장인'답낟. 그리고 배두나의 눈물은 여운을 남긴다. 자칫하면 신파로 점철될 수 있는 역할이었지만, 배두나는 감정과잉없이 남편을 잃을 위기에 처한 아내의 슬픔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코믹한 역을 벗어나 정의감 넘치는 구조대장을 연기한 오달수의 변신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무엇보다 웃음과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세련된 연출이 돋보인다. 감동코드를 겨냥한 신파로 점철된 영화에 지친 관객들이라면 반길만하다. 재난으로 풀어낸 메시지는 '더 테러 라이브'(2013)가, 전반부 속도감 있는 전개는 김성훈 감독의 전작 '끝까지 간다'(2014)가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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