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소담 기자]한 남자가 무너진 터널 안에 갇혔다. 정확한 위치 파악도 어렵고, 언제 구조될 지도 모르는 상황. 휴대폰 배터리가 절실한 상황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혹시나 급한 전화인가 싶어 다시 걸어보니, 기자란다. 그리고 구조팀에서 말해주지 않은 현재의 비관적 상황을 전달하며 ‘기분이 어떠신가요?’라고 묻는다. 바로 ‘터널’이 그려낸 언론의 민낯이다.
영화 ‘터널’(감독 김성훈/제작 어나더썬데이, 하이스토리, 비에이 엔터테인먼트)은 집으로 가는 길, 갑자기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한 남자와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하정우가 퇴근길 갑자기 무너진 터널에 홀로 고립된 남편 정수 역, 배두나가 정수의 아내 세현 역, 오달수가 구조대장 대경을 연기한다.
영화 시작과 함께 무너진 터널. 붕괴 이유는 바로 부실공사 때문이었다. 터널 안에 갇힌 정수는 급하게 119에 구조전화를 걸어보지만, 구조대원은 낙석이 떨어졌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정수의 하소연에 느긋하게 터널에 도착한 구조대원들.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상황이 심상찮다. 한쪽 입구는 완전히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고, 다른 한쪽 입구도 붕괴 직전으로 중간이 막혀 있는 상황.
곧바로 구조될 수 있다 믿은 정수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정수는 구조대원인줄 알고 다시 전화를 건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사람은 기자란다. 붕괴 현장에 중계차를 대놓고 무작정 정수와의 전화 통화를 생중계 하겠다고 우기는 취재진. 구조대원 대경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조난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수의 위치를 파악하고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은 휴대전화 통화뿐이기 때문.
배터리를 최대한 아껴 써야 하는 마당에, 쓸데없이 전화를 걸어 고립된 심경을 묻는 취재진을 보며 대경은 분노한다. 당장 차를 빼라고 소리치지만, 소식을 듣고 몰려온 기자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트려대고, 이런 저런 추측 기사를 쏟아낸다. 또한 정치계와 재벌과 합심해 여론몰이를 하기 시작하는 언론의 행태는 허탈감만 안긴다. 기레기(기자+쓰레기 합성어)라 불려도 할말 없는 장면들이 영화 내내 등장하는 것.
여기에 정수의 아내 세현이 쓰러지자 취재라인 밖에서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멀리서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가까이서 본 민낯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리고 취재진은 끝까지 터널 붕괴 현장을 뜨지 않고 열심히 취재경쟁을 벌인다. 특종을 잡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이에 ‘터널’ 김성훈 감독은 헤럴드POP과 인터뷰서 “기자를 얄밉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의 자의식이 들어간 것도, 무의식이 반영된 것도 아니다. 그냥 이건 영화일 뿐이다”며 “기자 역을 맡은 배우 유승목이 워낙 재밌게 연기를 잘 해줬다. VIP시사회 뒤풀이를 하는데, 유승목 선배가 자긴 분명 적게 촬영했는데 굉장히 많이 나온 것 같다고 그러더라. 연기를 잘해줘서 전체 분량이 많진 않았는데 찍은 장면은 다 영화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성훈 감독은 “전형적으로 악당 처럼 단편적인 면만 갖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런 악당은 영화적으로도 재미가 없다”며 “미워할 순 없는데 뭔가 얄미운 그런 캐릭터를 담아내고 싶었다. 그걸 유승목 배우가 잘해냈다. 한겨울 터널 앞에서 플래시 세례가 터지는 장면을 연기해낸 단역 배우들도 굉장히 손이 시렸을 텐데 너무 고맙다. 아마 속으론 감독 욕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지난 2014년 4월16일 벌어진 세월호 참사. 김성훈 감독이 7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 ‘끝까지 간다’는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5월29일 개봉했다. 이후 ‘터널’ 연출을 맡게 된 김성훈 감독. ‘터널’은 정부의 재난 대응 과정부터 언론의 모습까지 세월호 참사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하지만 김성훈 감독은 “난 그렇게 대범한 사람이 아니다. 겁 많고, 귀신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조선시대에도 그렇고 풍자를 하는 건 어느 나라든, 사회든 있다고 생각한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함께 웃고, 함께 나아갈 발향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김성훈 감독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세월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재난 트라우마 안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 과연 언론은 무슨 일을 했을까? ‘터널’이 보여준 언론의 민낯이 참으로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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