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립노모어 서울> 8월 21일 공식 개막

충무로 대한극장→‘매키탄 호텔’로 탈바꿈

뉴욕, 상하이 열기 이어받아 서울서 최대 규모로

펀치드렁크, 관객 참여 몰입형 연극 ‘이머시브 장르’ 선봬

캐릭터 따라 달라지는 전개에 입소문···N차관람 이어져

슬립노모어 서울 스틸컷. [미쓰잭슨 제공]
슬립노모어 서울 스틸컷. [미쓰잭슨 제공]

[헤럴드POP=김민지 기자] “우리는 아무도 내일을 모른다”

저녁 7시 충무로역 1번 출구. 길게 줄이 늘어선 이들을 뒤로하고 고개를 젖히면 거대한 7층짜리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 위에 쓰인 다소 등골이 서늘해지는 문구,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이 제목처럼 당신을 ‘잠들지 못하게 할’ 이곳은 현실로부터 단절된, 미스테리한 ‘매키탄 호텔’이다.

“7개의 층, 수많은 방” 잠들지 않는 세계···무언(無言)의 공간 속으로

저녁 7시, 스탭이 ‘입장 도장’을 찍어주면 철통같은 검은색 문이 열린다. 입구로 들어서자 보이는 티켓 부스와 짐 보관소.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휴대폰을 포함한 소지품들을 반납하며 현실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슬립노모어 서울’ 티켓 부스 앞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김민지 기자
‘슬립노모어 서울’ 티켓 부스 앞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김민지 기자

어두컴컴한 실내,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묘한 향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복도 벽을 더듬으며 걷다 보면 다른 시공간이 펼쳐진다. 그렇게 도착한 ‘맨덜리 바(bar)’. 이곳에서 뮤지션들의 라이브 재즈 연주를 들으며 대기하면 관객에게 트럼프 카드가 한장 씩 쥐어진다. 카드에 쓰여 있는 숫자가 불리는 순간, 매키탄 호텔에서의 시간이 시작된다.

7개의 층, 여러 개의 방, 3시간짜리 공연. 배우의 대사도, 정해진 내러티브도 없는 이 독특한 연극에서 주의할 점은 하나다. “모든 관객은 하얀 가면을 쓴다. 오직 배우들만이 가면을 쓰지 않는다. 관객은 말을 할 수 없다.”

‘슬립노모어 서울’ 관객에게 주어지는 가면과 캐스팅 보드. 김민지 기자
‘슬립노모어 서울’ 관객에게 주어지는 가면과 캐스팅 보드. 김민지 기자

주어진 객석도 따로 없이 가면을 쓴 관객들은 배우의 동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마음대로’ 공간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또 때론 세심하게 주변을 살피며 배우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펼쳐지는 극을 감상하게 된다. 즉, 건물의 모든 공간이 무대인 셈.

이렇게 관객이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하는 관객 참여형, 몰입형 공연을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라고 하는데, <슬립노모어>는 해당 장르를 뉴욕 맨하탄에서 탄생시킨 작품으로 등장과 함께 공연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지난 20일 오후에 열린 ‘슬립노모어 서울’ 기자간담회에서 펠릭스 바렛 펀치드렁크(Punchdrunk) 예술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지난 20일 오후에 열린 ‘슬립노모어 서울’ 기자간담회에서 펠릭스 바렛 펀치드렁크(Punchdrunk) 예술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펠릭스 바렛 펀치드렁크(Punchdrunk) 예술감독은 지난 20일 열린 <슬립노모어 서울> 기자간담회에서 “이머시브 시어터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관객들을 이 세상의 한 중심으로 뚝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옳고 그름이 없는 이곳에서 관객들은 원하는 곳으로 모험을 떠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설명했다.

<슬립노모어>의 또 다른 특징은 대사가 없는 무언극, 즉 ‘논버벌’(non-verbal·비언어) 공연이라는 점이다. 독특한 요소들 투성이인 <슬립노모어>가 선택한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맥베스(Macbeth)다.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갈망과 이에 흔들리는 인간 심리를 탐구한 작품으로 운명과 야망 사이 줄다리기를 첨예하게 그려낸다.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가 마녀의 예언을 계기로 권력욕에 눈이 멀어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슬립노모어>에서는 맥베스, 레이디 맥베스, 맥베스를 홀리는 마녀들, 뱅코 등 많은 배우들이 층과 방을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각자가 맡은 역할을 연기한다. 이야기는 하나지만, 사건을 보는 제각각의 ‘시점’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게 이 공연의 포인트.

결국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인물을 관람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가 달라지는데, 개인의 ‘선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

정신없이 본인이 선택한 인물을 쫓아다니다 보면 처음에는 스산했던 호텔이 덥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오로지 ‘몸짓’으로 내용을 전하는 배우들을 정신없이 따라다니다 보면 숨까지 차게 된다. 따라서 운동화와 편한 복장은 필수. 게다가 거뜬한 체력까지 가지고 있다면 더욱 연극을 몰입도 높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장과 객석의 구분이 없기에 관객 코앞에 배우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때 배우에게 선택을 받으면무대 한편에서 나만을 위한 연기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도. 그 자리에서 무언극의 틀을 깨고 유일하게 ‘대사’를 읊는 배우를 보기 위해 재차 방문하는 관객도 존재한다는 후문이다.

60분씩 총 3번의 일어나는 공연의 루프에서 그 마지막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공연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흩어져 있던 모든 배우들이 모이는 ‘최후의 만찬’ 장면이 펼쳐진다.

바렛 감독은 “깨어 있는 건가 잠든 건가, 이것이 꿈인 건가 하는 경계에 있는 그 모호하면서도 스릴 넘치고 마법적인 느낌을 <슬립노모어>를 통해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생도 예측 불가” 불친절해서 묘하게 현실적이다

‘슬립노모어 서울’ 공연이 열리는 서울 매키탄 호텔 전경. 김민지 기자
‘슬립노모어 서울’ 공연이 열리는 서울 매키탄 호텔 전경. 김민지 기자

“잠은 다 잤다.”

매키탄 호텔에서의 3시간을 보내고 나와 다시 충무로역 1번 출구 앞에 선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가 얼떨떨하다.

소름 돋게 몰입되는 연출과 연기가 가득한 공연을 보고 나오면 관객들은 다시 맨덜리 바에 도착해 현실 세계로 나갈 채비를 한다. 3시간 만에 입을 연 관객들은 감상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다리 아프다”는 곡소리와 “대박”이라는 감탄이 뒤섞여 나오기도.

여기서 중요한 건 관객이 경험한 이야기가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누군가는 맥베스 부인의 연기를 경험했고, 누군가는 발길이 닿지도 않은 정신병동에서 기이한 풍경을 목격하기도 했을 터.

그렇다 보니 이해를 위해 주연 캐릭터를 쫓는 관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과정에서 까치발을 들거나 급한 마음에 관객끼리 부딪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이에 바렛 감독은 “한 장면에 사람이 너무 많다 싶으면 바로 그 순간,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비밀을 찾을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하며 “어디를 보더라도 찾을 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슬립노모어 서울’ 스틸컷. [미쓰잭슨 제공]
‘슬립노모어 서울’ 스틸컷. [미쓰잭슨 제공]
펀치드렁크 크리에이티브팀 단체 사진. [미쓰잭슨 제공]
펀치드렁크 크리에이티브팀 단체 사진. [미쓰잭슨 제공]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몰입형 공연 전문 창작 집단인 펀치드렁크는 예술 감독 펠릭스 바렛을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 설립됐으며 고전 텍스트를 바탕으로 배우의 움직임, 과감한 이미지 연출, 설치 미술을 결합해 관객이 직접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이머시브 시어터(몰입형 연극)’ 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바렛 감독은 국내 관객들을 향해 “행운은 모험심을 가진 대담한 자들을 선호한다”며 “대담하게 모험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는 똑같은 공연이 아닌 나만의 공연을 경험하시기를 권고드린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역사상 가장 큰 스케일” 참여형 연극의 전설, 서울 택한 이유

‘슬립노모어 서울’ 공식 포스터. [미쓰잭슨 제공]
‘슬립노모어 서울’ 공식 포스터. [미쓰잭슨 제공]

한편 뉴욕과 상하이에 이어 선보이는 서울 공연은 <슬립노모어> 시리즈 사상 가장 큰 규모로 제작됐다.

<슬립노모어>는 앞서 2003년 영국 런던, 2009년 미국 보스턴에서 공개된 이후, 이머시브 공연으로 반향을 일으킨 후 2011년 뉴욕으로 무대를 옮겨 10년 이상의 장기 흥행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지난 1월, 14년간의 뉴욕 공연을 마무리한 후 현재는 중국 상하이에서 2016년부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미 해외 공연을 통해 강한 인상을 받은 관객들이 재방문한 경우도 많았다.

뉴욕에서 접한 <슬립노모어>를 인생 연극으로 꼽은 30대 김 모 씨는 “프로 무용수인 배우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힘들기도 했지만, 못 본 장면을 보는 건 이 연극만의 묘미”라고 말했다.

상하이 관람 경험이 있는 유수빈(29세)씨는 “상하이에서는 건물과 시설이 다소 연식 있는 느낌에 좁았던 반면 서울은 확실히 넓고 깨끗했다”고 전했다.

옛 충무로 대한극장 모습. [연합]
옛 충무로 대한극장 모습. [연합]

서울의 매키탄 호텔은 충무로의 상징 ‘옛 대한극장’을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국내 옛 극장의 특징을 살리며 뉴욕·상하이 버전과 차별화된 ‘디테일’을 담았다. 박주영 미쓰잭슨 대표는 “건축 설계부터 관객의 동선, 미술, 조명, 음향, 가구, 소품 등 심지어 먼지 한 톨까지 연출의 의도가 담겨있을 정도로 세세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창작진들 역시 매키탄 호텔의 공간적 특성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영화관이었던 대한극장의 높은 층고와 남아있는 극장 인테리어가 분위기 형성에 한몫한 것. 바렛 감독은 “셰익스피어를 드디어 ‘영화관’에서 할 수 있는 거나 다름없는 완벽한 기회라 생각했다”며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20일 오후에 열린 ‘슬립노모어 서울’ 기자간담회에서 박주영 미쓰잭슨 대표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미쓰잭슨 제공]
지난 20일 오후에 열린 ‘슬립노모어 서울’ 기자간담회에서 박주영 미쓰잭슨 대표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미쓰잭슨 제공]

한편 서울의 매키탄 호텔은 제작사 ‘미쓰잭슨’의 손길로 탄생했다. 미쓰잭슨은 전시, 공연, 영상, 게임 등 멀티 장르와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넘나드는 혁신적인 실감∙몰입형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는 이머시브 콘텐츠 기획∙제작사로, 펀치드렁크의 한국 독점 파트너사다.

2025년 공연계 최고 기대작 <슬립노모어 서울>은 매진 행렬이었던 7월 프리뷰 공연을 마치고 21일부터 본 공연에 나섰다. 관람은 만 19세 이상으로 제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