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소담 기자]박근형의 57년 연기인생은 과연 어땠을까.
배우 박근형은 최근 서울 낙원동 프레이저 스위트 서울 호텔에서 헤럴드POP과 영화 ‘그랜드파더’(감독 이서/제작 한이야기) 홍보 인터뷰를 갖고 배우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57년간 1년 이상 쉬지 않고 수백편의 작품에 출연한 박근형의 인생을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랜드파더’는 베트남 참전용사라는 영광을 뒤로 한 채 슬픔과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던 노장이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과 마주하고 유일한 혈육인 손녀를 위해 아들의 죽음에 얽힌 충격적 진실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57년차 내공의 주연배우 박근형이 액션 느와르에 도전,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에서 젊은 배우에게 얻어맞는 장면까지 실제 연기한 박근형은 “실제로 있는 건 아니고, 허구니까 괜찮다. 그게 오히려 더 재밌을 수도 있다. 오승윤이 노인인 날 때린다면 ‘저런 나쁜 놈’ ‘죽일 놈!’ 하는 감정이 관객에게서 나오지 않겠나. 그러면 난 더 좋다. 그래야 내가 맡은 기광을 동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라고 연기이기에 상관 없었다고 말했다.
대신 박근형은 “내가 어린 오승윤을 린치 하는 장면은 내가 생각해도 가혹할 정도로 심하지 않나 싶었다. 그래도 영화엔 간결하게 잘 나왔더라. 연기를 할 땐 너무 가혹했다. 연기하면서 너무 심하다고 이야기를 했다”며 “아마 거기서 더했다면 아무리 영화라도 안 됐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박근형이 ‘그랜드파더’에서 연기한 기광은 월남전 참전용사이지만 현재는 버스를 몰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이다. 연기를 위해 실제 대형면허를 취득했다는 박근형은 “영화에서 버스를 폐차시킬 때 그걸 보는데 왠지 그 심정을 알겠더라. 얼마나 애지중지했겠나. 심장이 고장 난, 자기와 같은 몸을 부수는 아픔이라는 게 느껴졌다. 뒷짐 지고 자동차 키를 만지작거리는 장면에서 기광의 안타까운 심정이 잘 표현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형은 “기광은 버스 운전기사다. 다 썩은 버스를 겨우 마련해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아침 7시면 외국인 노동자들을 공장에 데려다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연기를 잘못하면 안 됐다. 2종 면허라 안 되겠다 싶어서 이서 감독에게 대형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했다”고 직접 면허를 따겠다고 한 이유를 밝혔다. 그것은 연기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4주에 걸쳐서 운전 교육을 받고 연습을 했는데, 암만 해도 부족하더라.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서 2주일을 더 연장했는데, 5주차까지는 계속 떨어졌다. 마지막 주에 100점을 맞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면 되는구나 싶더라. 체육관에서 몸을 굴리고 대형 1종 면허 따고 나니까 좋았다. 마음대로 버스를 운전하면서 다른 사람도 태우고, 같이 좋은 곳도 다녔더니 요령이 생겼다.”
이어 박근형은 “과거 월남전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에 출연할 때도 몸을 불린 적 있다. 배우에게 몸 불리는 건 문제가 아니다. 대신 나이를 먹은 상태서 근육을 만드는 게 힘들었다. 70이 넘은 사람이 근육이 쉽게 생길 리가 없잖나. 그래서 열심히 운동했다. 체육관에 가서 근육이 필요하다니까 그런 운동을 알려주더라. 열심히 했더니 나중에 화면에서 등 근육이 살아있더라. 됐다 싶었다”며 “그때 만든 근육이 지금도 있다. 살은 많이 빠졌지만, 근육은 남아 있다. 평생 운동을 하면서 살았으니까”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랜드파더’ 같은 작품이 또 다시 들어온다면 다시 할 생각이다. 속편은 아니더라도, 노인들이 직접 사건에 끼어들어서 영화 속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전달하는 의미가 많다면 무조건 해야지. 대신 노인의 이야기로 해프닝이 벌어지는 건 싫다”고 말하는 박근형이었다. 이렇듯 누구보다 연기를 사랑하는 박근형에게도 힘든 순간은 있었다. 박근형은 “왜 나는 잘하고 있는데, 날 뽑아주지 않나 불만도 했다. 어떨 땐 죽고 싶을 때도 있었고, 6개월 씩 포기하고 시골에 내려간 적도 있었다. 그러다 연극상을 받고 다시 연기를 시작한 적도 있었다”며 “지금은 70살이 넘어서 ‘그랜드파더’ 같은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고 털어놨다.
“지금이야 서양문화를 많이 접하니까, 내 과거사진이 잘생겨 보이는 거지. 내가 젊었을 땐 한국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고 해서 쓰임새가 적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땐 오히려 비참했다. 까무잡잡하고 계란형이고 코는 스페인사람처럼 구부러져있어서 보통의 한국사람 얼굴이 아니니까 역할도 한정됐다. 대부분 노름꾼, 난봉쟁이 등이었다. 그래서 연극에 집중했다. 지금은 나를 자주 봐왔고, 세대가 달라지면서 내 얼굴이 보기 편해진 것이지, 난 그때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데.(웃음) 키도 다 적은데 나 혼자 멀대 처럼 컸다.”
이어 박근형은 “지나온 과정을 생각하면 배우 일을 다시 하고 싶진 않다. 너무 괴롭다. 다른 이에게 인정받고 동조를 얻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너무 힘들더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두 다 마찬가지다. 지금의 연극학도들이 대학로나 이런 데서 오염된 곳에서 연극을 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는 걸 보면 안타까워 죽겠다”고 걱정했다.
물론 이렇듯 힘들기도 했지만, 연기를 하면서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다는 박근형은 “내 몸을 빌려서 다른 사람을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좋다. 그것 외에는 없다. 감동이 없으면 극이 아니다. 목표는 우선 그것이다. 실패냐 성공이냐 따졌을 때 그래도 인정을 많이 받은 편이니까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니겠나. 하나만 파고들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연기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추적자’, 그리고 김수현 작가 작품까지 말이다. ‘이상의 날개’라든가 ‘무진기행’ 같은 작품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형은 “여기에 나머지 막장 드라마도 나중에 한 장르가 될 것이다. 재미로 보는 것 아닌가. 돈 내고 볼 거면 안보지. 돈 안내고 보니까 막 이야기하는데, 그것도 발전하면 괜찮을 것이다”고 막장 드라마까지 감싸 안았다. 이와 함께 박근형은 “사람이야기를 하는 작품은 자신 있게 덤벼들고 싶다. 사람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통하는 거잖나. 문화를 이해하고 그런 건 어려운 일이지만,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끝까지 추구해야할 과제 중 하나다”고 강조했다.
휴식을 취하고 싶은 적은 없느냐는 물음에도 “아뇨!”라며 “쉬면 뒤떨어져서 안 된다. 체력이나 그런 걸 극복하면서 부수적인 걸 계속 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평생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다”고 말하는 박근형이었다.
한편 박근형 주연 영화 ‘그랜드파더’는 오는 3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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