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 콘텐츠판다 제공
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 콘텐츠판다 제공

[헤럴드POP=성선해 기자]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은 '범죄의 여왕'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있는 거라고는 오지랖과 아들에 대한 사랑뿐. 하지만 누구보다도 예민한 '촉'으로 의문의 사건을 해결하는 아줌마 탐정이 탄생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캐릭터다.

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범죄의 여왕'(감독 이요섭/제작 광화문시네마)은 아들이 사는 고시원에서 수도요금 120만 원이 나오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가 또 다른 사건을 감지한 촉 좋은 아줌마 미경(박지영)의 활약을 그린 스릴러다. 박지영, 조복래, 김대현, 백수장 등이 출연한다.

총 제작비 4억 원의 이 독립영화는 용감하게도 성수기 극장가의 문을 두드렸다. 100억은 거뜬히 넘는 공룡들의 싸움이 한창이다. 그 사이에 선 '범죄의 여왕'이 위태로워 보이겠지만, 그건 충분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요섭 감독 역시 "시나리오가 잘 고쳐지면 투자도 잘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자본은 아니었지만, 좋은 마음으로 봐준 투자자들이 있었다"라며, 다른 영화감독들처럼 투자자의 외압 혹은 입김 등을 경험하진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처음부터 'OK' 사인을 받아서 의아했다고.

이토록 순탄했던 투자 과정의 이유는 물론 시나리오 덕분이다. '범죄의 여왕'에는 현란한 CG가 요구되거나 대규모 엑스트라가 필요한 장면은 없다. 서울 화려한 빌딩 숲의 뒷골목에 있을 법한 고시촌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전부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가진 구력은 상당하다. 아줌마로 불리는 너와 나, 그리고 당신의 엄마가 펼치는 소동을 담은 스릴러다. 익숙한 요소를 조합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범상치 않다.

이요섭 감독 / 서보형 기자
이요섭 감독 / 서보형 기자

이요섭 감독이 '범죄의 여왕' 시나리오를 쓰면서 중점에 둔 건 어머니의 반응이었다. 이 작품은 그가 실제로 고시원에 살던 당시 수도요금 30만 원 고지서를 받아들었던 경험이 모티브다. 엄마가 스릴러의 주인공이라니. 남자들의 이야기를 선호하는 충무로에서는 이례적인 소재다.

"장르물에 남자 주인공이 공식화되긴 했다. 나는 그걸 바꿔서 다른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다. 단지 그랬을 뿐인데 사건 수사 형식이 바뀌고, 만나는 사람들을 풀어나가는 방식도 다르다. 살다 보면 세상의 힘의 논리로만 돌아가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느냐. 센 남자는 폭력으로 진실을 얻어내지만, 아줌마는 먹을 걸 챙겨주는 등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여자들이 나약하다고 하는데, 내가 느낀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가끔 명절에 누워서 엄마와 이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엄청나더라. 빚때문에 아기를 업고 사채업자 사무실에 가서 입금 날짜를 미루기도 한다. 그런 걸 들으면서 장르적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발견한 드라마는 '범죄의 여왕'에도 적용된다. 극 중 주인공 미경은 집밥과 모정으로 개인주의가 팽배한 고시원에 스며든다. "나 404호 엄마야"라며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미경은 따뜻한 관심에 굶주린 고시원생들을 설득해나간다.

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 콘텐츠판다 제공
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 콘텐츠판다 제공

"박지영은 직접 미팅을 한 뒤 확신이 들더라. 영화 '후궁'이나 '하녀'를 보면서 굉장히 에지가 강한 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처음 만나니 털털하고 사람을 좋아하더라. 이야기할수록 미경의 캐릭터가 더 디테일하게 보였다. 현장에서 겪어봐도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범죄의 여왕'을 본 관객들에게 바라는 건 하나다. 첫 번째로는 우리 엄마가 재미있게 봤으면 좋겠고, 관객들이 엄마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보고 나서 '엄마 잘 있나?' 혹은 '우리 엄마도 강했었지'라고 떠올리기만 해도 성공이다. 장르는 스릴러지만, 엄마 그 자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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