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2016년 성수기 극장가를 사로잡은 키워드 중 하나는 팩션(faction)이다. 실제 역사(fact)에 상상력(fiction)을 가미해 만든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 등이 각각 누적관객 수 700만 명과 550만 명을 돌파하며 사랑받았다. 추석 시즌에도 팩션 강세는 이어진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밀정'과 조선말 지도꾼 김정호의 일대기를 담은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7일 함께 개봉했다.
◆ '밀정', 일제시대를 살아가는 스파이를 논하다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제작 영화사 그림)은 1920년대 말, 일제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다.
특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등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의 6년 만의 한국 영화 연출작이다. 여기에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 역 송강호,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 역 공유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이 출연하며 이병헌, 박희순이 특별출연에 나섰다. 역대급 라인업이다.
'밀정'은 개봉 전에는 '암살'과 많이 비교됐다. 비슷한 시기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그린 공통점 덕이다. 의열단과 단장 김원봉은 '암살'에서도 등장한다. 하지만 항일운동에 무게를 둔 '암살'과는 달리, '밀정'은 한 인간의 심리 변화와 고뇌에 더 중점을 둔다. 이는 김지운 감독이 스파이물의 공식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익숙한 영화 문법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낯설 수도 있지만,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연출이라는 평도 많다.
'밀정'의 모티브는 황옥 경부 사건이다. 의열단이 1922년 일제의 주요 통치시설과 총독 등 총독부 요인을 암살하는 공작을 추진하다가 실패했었던 사건이 있다. 이를 추진한 건 의열단원 김시현이지만, 추진 과정에 현직 경부였던 황옥이 가담했었다. 송강호가 맡은 이정출이 바로 황옥에서 따온 캐릭터인 것. 그가 의열단의 동지였는지 아니면 진짜 일본의 밀정이었는지는 지금도 역사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또한 극 중 의열단장으로 등장하는 정채산(이병헌) 역시 김원봉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김지운 감독은 "배우가 만들어내는 테크닉과 재능에 집중해달라"라며 실명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실존 인물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과 부담감을 덜기 위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 '고산자, 대동여지도' 인간 김정호를 그리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감독 강우석/제작 시네마서비스)는 시대와 권력에 맞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동여지도를 탄생시킨 지도꾼 김정호의 감춰진 이야기를 그린다. 차승원이 고산자 김정호 역, 유준상이 흥선대원군 역, 김인권이 조각장이 바우 역, 남지현이 김정호의 딸 순실 역을 연기한다.
역사상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A4용지 한 장 정도 밖에 없다. 그가 남긴 지도와 지리지가 전부나 다름없다. 이는 팩션 사극으로서는 장점이다. 부족한 역사적 자료를 메우기 위해 상상력이 가미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박범신 소설가의 작품 '고산자'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유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두고 안동 김씨 가문과 흥선대원군(유준상) 등 당시 권력자들과 대립각을 세운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바 없는 사실이다.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것. 팩트에 픽션을 가미한 흥미로운 설정이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역사왜곡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특히나 김정호가 지도 제작 과정에서 관의 핍박을 받았다는 부분은 역사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한 사실이다. 또한 김정호에 대한 사료가 적은만큼, 식민사관에 기초한 서술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에 대해 강우석 감독은 "영화가 다 만들어졌을 때 식민사관에 대한 말이 나오면 난 감독으로는 끝난다고 생각했다"라며, 김정호의 일생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 고심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대동여지도 목판 후원을 했던 양반들의 목적도 각자 다르지 않았겠나"라며 김정호가 지도를 대량보급하려 했던 사실과 과정을 중점적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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