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태구 / 이지숙 기자
배우 엄태구 / 이지숙 기자

[헤럴드POP=성선해 기자] 화려한 비정규직 배우. 매 작품마다 선택을 받는 그들에겐 자신을 뛰어넘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새롭거나 혹은 진화하거나,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그런 의미에게 '밀정'은 배우 엄태구(33)의 도약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제작 영화사 그림)은 1920년대 말, 일제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의 김지운 감독이 6년 만에 한국영화의 메가폰을 잡았다.

화려한 출연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송강호는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 역, 공유는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 역을 맡았다. 여기에 한지민, 신성록이 합류하였으며 이병헌, 박희순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엄태구는 하시모토 역을 맡았다. 조선인의 피가 흐르지만 누구보다도 독립운동가 탄압에 앞장서는 인물이다.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 이름을 올린 엄태구. 사실은 그 역시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로 잔뼈가 굵은 배우다. 영화 '기담'(2007)에서 일본군 1 역으로 데뷔한 그는 단편영화 '숲'(2012)으로 독립영화계의 유망주가 됐고,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와 '잉투기'(2013)를 거쳐 '차이나타운(2015)과 '베테랑'(2015)으로 메인 스트림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밀정'은 특별한 현장이었다. 신작이 곧 또다른 대표작이 되는 김지운 감독과 대배우 송강호와 함께 하는 대형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엄태구는 "캐스팅 확정 소식을 전화로 들었을 때 '으아아'라고 소리쳤다. 근데 5초 있다가 두려워서 도망가고 싶어지더라"라며 "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내가 할 수 있을까란 생각과 함께 '일본어는 어떻게 하지'란 걱정부터 들더라"고 말했다.

배우 엄태구 / 이지숙 기자
배우 엄태구 / 이지숙 기자

오디션을 보러가면서도 긴장한 탓에 딸꾹질이 났다는 엄태구. 숨을 참으며 도착한 곳에서 그는 1대 1로 김지운 감독과 마주했다. 앞서 김지운 감독은 그의 캐스팅을 두고 '긍정적 의미의 모험'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내가 다른 배우들에 비해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날 캐스팅하는 모험을 택한 김지운 감독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게 많은 기회를 주신 거다. 오디션 당시 감독님이 하시모토의 대본을 주면서 말씀하신 게 있다. 다른 부분에서 좋았던 배우들이 있었지만, 동물적으로 연기하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하시더라. 정말 행복했다."

김지운 감독이 포착한 엄태구의 연기에 대한 동물적 감각, 그리고 본능적인 접근.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촬영 내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밀정'에서 엄태구는 대배우 송강호에게도 밀리지 않고 팽팽하게 맞선다. 이정출의 옆을 맴돌며 목을 조여오는 하시모토는 독이 바짝 오른 도베르만이 떠오르기도 한다.

정작 엄태구는 매의 이미지를 연상했었다고. "촬영하면서 내내 매의 사진을 쳐다봤다. 몇개월 동안 봤더니 끝날 때쯤에는 실제로 닮아가는 것 같더라. (웃음) 특히 기차 안의 시퀀스에서 그런 설정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의 디테일은 '밀정'이 '엄태구의 재발견'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송강호는 그를 향해 "광인 같다"라며 극찬(?)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엄태구 본인은 얼떨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이야기 자체가 신기하고 고맙다. 외모마저도 일본인 경찰 역에 어울린다고 하시더라. 칭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웃음) 사실 그 얼굴은 내가 의도한 게 아니다. 부담감과 마음고생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된 거다."

마지막으로 엄태구는 "'밀정'은 이분법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다"라며 "그렇기에 그 시대를 사신 분들의 삶과 고뇌를 잘 느낄 수 있다. 그냥 재밌고 자연스럽게 봐달라. 이정출의 감정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느꼈던 뜨거움을 관객들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당부했다.

배우 엄태구 / 이지숙 기자
배우 엄태구 / 이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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