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밀정'이 추석 극장가를 점령했다. 개봉 11일만에 누적 관객 수 500만명을 돌파한 이 영화. 그 숫자와 비례해 '그런데 하시모토는 누구야?'라는 반응 역시 늘어간다. 아마도 배우 엄태구(33)의 필모그래피는 '밀정'을 전후로 나뉠 것 같다.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제작 영화사 그림)은 1920년대 말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 일제시대 배경의 스파이물이다.
엄태구는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하시모토 역을 맡았다. 경무국장의 지시로 이정출과 한 조를 이뤄 의열단의 뒤를 쫓는 인물이다. 하시모토는 콤플렉스로 덩어리다. 그가 일본인보다 더 독하게 독립군을 잡아들이는 것 역시 출세지향적인 그의 성향을 드러낸다. 이정출의 맞수인 그는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스파이물에는 꼭 필요한 요소다. 엄태구는 "그렇게 봐주셨다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만약 하시모토가 이정출과 동등하게 느껴졌다면, 그건 송강호 선배 덕이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 나는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다. 송강호 선배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도 '이러다 기절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늘 나를 존중하고 배려해주셨다."
욕망으로 똘똘 뭉친 하시모토를 연기한 엄태구. 하지만 실제로 대면한 그는 배역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딱히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과장된 언사나 제스처는 없었다. 하지만 큰 눈을 깜박이면서 솔직하고 담백한 화법으로 천천히 충실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건 묘한 신뢰와 호감으로 이어졌다.
"사실 나도 콤플렉스가 있다. 가볍고 날 것의 느낌, 혹은 코믹적인 요소들이 내겐 많이 부족하다. 동년배 배우들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는다. 또 기품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가진 배우도 부럽다. 굳이 예를 들자면 박해일 선배 같은 분위기랄까."
하지만 엄태구 역시 독특한 분위기로 사랑받는 배우다. 언뜻 보면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순박해보이는 큰 눈망울이 인상적이다. 허스키한 목소리는 그의 시그니처 중 하나다. 엄태구는 "내 성대 나이가 50대라고 하더라"라며 웃었다.
"내 눈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거다. '넌 내게 고마워해야한다'라고 하시더라.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웃음) 한 감독님은 내게 '태구의 눈은 슬퍼보인다'라고 말씀하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사실 배우들마다 얼굴의 유형이 있지 않나. 내가 어느쪽에 해당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하시모토의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어 엄태구는 '밀정'의 하시모토는 자신의 배우 인생의 전과 후를 나눌 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겐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다. 김지운 감독, 송강호 선배와 작업한 것 자체만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당장 뭔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날 수록 서서히 직업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 같다."
pop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