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어떻게든 필연적으로 배우가 됐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타고난 성향이 그를 운명으로 이끄는 타입이다. 배우 허정도 역시 그렇다.
최근 그는 브라운관에서는 MBC 'W'(더블유, 극본 송재정/연출 정대윤)로, 스크린에서는 영화 '범죄의 여왕'(감독 이요섭/제작 광화문시네마)으로 시청자와 관객을 만났다. 이어 '걷기왕'이 10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차기작으로는 연극 택해 연습에 매진 중이다.
◆ "나는 질문하는 사람…연기는 건강한 즐거움"
쉴 틈 없이 일한다는 건 비정규직인 배우로서는 큰 축복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지난 2006년 연극 '성가족'으로 데뷔한 그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미세스캅1' '기억'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시작 역시 늦은 편이었다. 군대 제대 이후 2007년 한예종 대학원 연기과로 입학했을 때가 서른이었다. 대학교 재학 당시 연극제에서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에 출연한 게 인생을 바꿔놓았다. 늘 "내가 왜 살지"라며 답을 구하던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하는 연기에 빠져들었다.
허정도는 "사람의 성격 유형을 나누는 애니어그램이란 게 있다. 나는 거기서 5번 유형이더라. '질문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안 하는 질문이 많았다. '사는데 이유가 있나' 혹은 '그 답은 어디에 있을까' 등이었다"라고 했다.
연기는 끊임없이 인물에 대해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하는 작업이다. 그가 유일하게 싫증 내지 않고 꾸준히 몰입하는 일이기도 하다. "웬만하면 푹 빠져도 질릴 때까지 하고 그만두는 성격이다. 사실 게임이나 당구도 해봤는데 그런 잡기들은 빠지면 밥벌이가 안되지 않나. (웃음)"
허정도는 매체 연기로 알려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학로에서 수십 편의 연극에 출연한 배우다. '연극도 딱히 밥이 되진 않았을 텐데'라고 묻자 그는 "그래도 하다가 폐인이 되진 않는다"라며 연기를 '건강한 즐거움'이라고 표현했다.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과의 직접 대면, 즉 현장성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아무리 롱테이크로 찍어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연극은 갖고 가는 흐름이 길다. 거기서 내가 갖게 되는 존재감이 있다. 또 관객들의 반응이 내게 직접적으로 오면 희열을 느낀다. 무대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거의 종교적인 경험이랄까.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 경지에 이를 때가 있다. 중독성이 강해서, 항상 그 순간을 향해 간다. 그러니까 돈이 안돼도 계속 하는 것 같다."
◆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배우 되고파"
때문에 연기에 대한 허정도의 욕심은 남다르다. 그는 '완벽주의자'라는 말에는 손을 내저었지만, "욕먹기 싫다"라는 말에는 동의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자기 일 앞에서는 예민해지는 'W' 속 박민수는 실제 그와 닮았다.
허정도는 "잘한 연기는 그게 내 것이 아니라도 정말 좋다. 하지만 못한 걸 보면 욕을 하게 된다. 설령 그게 내 연기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질문이 많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게 없으면 퇴보하게 된다"라며 "아이들이라도 연기를 잘하면 그렇게 빛나더라. 후배들도 잘하면 극찬을 하는데, 못하는 것 같으면 표정관리가 안 된다. 다들 '형은 표정에서 드러난다'라고 한다"라고 했다.
그는 "연기를 잘하는 사람 앞에서는 내가 딱히 받아먹을 게 없는데 팬이 된다"라며 '을'을 자처하게 된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천직을 만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일 테다.
"그간 내가 연기한 인물들은 항상 달랐지만, 그건 늘 나였다. 'W' 속 박민수나 '걷기왕' 속 코치, '범죄의 여왕' 속 하준도 마찬가지다. 늘 내게 있는 면을 꺼내고, 비율을 섞어서 완성한다. 기본적으로 배우의 매력은 자신의 고유한 결에서 나온다고 본다. 대안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규제가 없으니 마음껏 피어나더라. 연기도 마찬가지다. 배우는 자기의 말을 할 때가 아름답다.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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