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소담 기자]‘비밀은 없다’ 손예진과 이경미 감독이 충무로 여성 파워를 보여줬다. 여기에 ‘우리들’ 윤가은 감독과 여자신인상 정하담까지, 씨네 페미니즘의 시대를 연 여성 영화인들이 영평상을 빛냈다.
영화 ‘비밀은 없다’ 손예진과 이경미 감독은 11월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정재형) 주최 제36회 영평상 시상식에서 각각 여자연기상(여우주연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비밀은 없다'는 국회 입성을 노리는 종찬(김주혁)과 그의 아내 연홍(손예진)에게 닥친 선거기간 15일 동안의 사건을 그린다. 손예진이 딸의 실종 후 충격적 진실과 사건에 맞닥뜨리게 되는 정치인의 아내 연홍 역을 맡아 호평 받았다. ‘비밀은 없다’ 속 손예진의 열연은 압권이었다. 이에 손예진은 제25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에 이어 제36회 영평상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2관왕을 차지했다.
손예진은 영평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고 “‘비밀은 없다’ 연홍을 연기하면서 이제껏 내가 했던 연기적인 패턴이나 느낌과 다른 아주 많은 도전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도전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경미 감독이 나를 매몰차게, 치열하게 연홍이 될 수 있게 도와줬다. 내가 상을 받은 것도 기쁘지만, 이경미 감독이 감독상을 받아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관객 평단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런 훌륭한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남겼다.
손예진은 영평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덕혜옹주’ ‘비밀은 없다’가 모두 노미네이트 된 가운데 ‘비밀은 없다’로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과 ‘아가씨’ 김민희 그리고 ‘덕혜옹주’를 누르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여기에 오는 25일 진행되는 제37회 청룡영화상에는 ‘덕혜옹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수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더욱이 손예진은 올해 개봉작을 내놓은 주연배우 중 유일하게 여배우로는 흥행 톱10 안에 들면서 티켓파워와 연기력 모두를 입증했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손예진이다. 여배우 기근이란 말을 지워내며 여름 시장에서도 여배우 원톱 영화인 ‘덕혜옹주’로 흥행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경미 감독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영화감독을 꿈꾸는 지망생들의 절반이 여자이지만, 정작 충무로엔 여성 감독은 몇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와 같은 독특한 여성 영화를 내놓고 있는 이경미 감독의 영평상 감독상 수상은 많은 의미를 남긴다. 영평상에서 여성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이경미 감독이 최초다.
영평상 감독상 수상자 이경미 감독은 “‘비밀은 없다’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여성은 끝까지 울지 않는, 어떤 상황에서도 울지 않는 강한 여성이었다. 배우 입장에선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손예진 씨, 이 영화를 함께 해줘서 감사합니다”고 ‘비밀은 없다’ 연홍과 그런 연홍을 연기한 손예진에게 모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개봉 당시 관객수 25만 명을 동원하는데 그친 ‘비밀은 없다’. 하지만 개봉 초반 혹평 받았던 것과 달리 ‘비밀은 없다’는 그동안 익숙하게 그려졌던 모성애를 전형성에서 탈피해 참신하게 그려냈다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비밀은 없다’ 연홍은 감당하기 힘든 진실 앞에서 주저앉아 울기보다 치밀하게 사건을 파고들고 종국엔 복수까지 해낸다. 딸의 실종 앞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고, 남에게 의지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나서는 엄마가 연홍이고 그 것이 바로 연홍의 모성애다.
남성 감독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성애는 이런 거야’라며 그려낸 여성 캐릭터와는 궤를 달리하는 연홍. ‘비밀은 없다’가 초반 혹평 받은 것도 어쩌면 기존 영화를 통해 습득된 모성애 그리고 여성 캐릭터와 연홍이 달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에 이경미 감독은 “‘비밀은 없다’는 개봉하기 무섭게 조용히 극장에서 내려왔다. 끝장이 났구나 생각할 때쯤, 여러 평론가들이 지지를 해주고 많은 글을 써줬다. 내게 있어서 이 상은 정말 특별한 상이다. 감사 드린다”고 영평상 수상 기쁨을 누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영평상은 남자신인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가운데, 여자신인상은 여성이 주인공인 ‘스틸 플라워’의 정하담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신인감독상도 여성인 ‘우리들’ 윤가은 감독에게 돌아갔다.
'스틸 플라워'는 집도 가족도 친구도 없이 홀로 추운 거리를 떠돌며 탭댄스를 추는 하담의 이야기를 시적이면서도 강렬한 연출로 담아낸 작품. 박석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 받았다. 여기에 제15회 마라케시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제14회 피렌체한국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으며 신예 정하담 또한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이에 정하담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서 너무 좋다”고 울먹이며 “‘스틸 플라워’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자신의 긍지를 잃지 않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그 역할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었고 소중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소중하게 연기를 열심히 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돼서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고 눈물의 수상소감을 밝혔다. 여성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갈등과 고민을 섬세하게 그려낸 ‘우리들’ 윤가은 감독은 “정확히 2년 전 쯤, 촬영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촬영을 중단했었다. 내가 찍으려는 영화가 불가능한 프로젝트처럼 느껴졌다. 적은 예산과의 사투, 첫 장편을 만드는 것에 대한 불안, 자질부족에 대한 괴로움이 있었다. 아이들이 전면에 나오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도 되나 고민을 한참 했다. 어렵게 괴로워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게 돼 천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 또 그런 어려움이 닥치겠지만 주신 상을 기억하며 열심히 잘 달려보겠다. 이런 영화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런 영화를 만들어도 된다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윤가은 감독에게 신인감독상을 안긴 '우리들'은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외톨이 선과 비밀을 가진 전학생 지아의 복잡 미묘한 여름을 그린 작품. 표현에 서툴고 사람에 멍든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사랑과 미움, 질투 등 복잡한 감정들이 뜨겁게 요동치는 소녀들의 갈등과 고민을 밀도 높은 긴장감으로 담아내 호평 받았다. 또 첫 데뷔작이라곤 믿기지 않는 아역 배우들의 눈부신 열연과 신예 윤가은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한편 여성 영화인들의 약진을 엿본 제36회 영평상 시상식에서는 총 15개 부문에서 시상이 이뤄졌다. 최우수 작품상 '밀정', 감독상 이경미 감독(비밀은 없다), 공로영화인상 임권택 감독, 각본상 신연식 감독(동주), 남자연기상 이병헌(내부자들), 여자연기상 손예진(비밀은 없다), 신인여우상 정하담(스틸 플라워), 신인감독상 윤가은(우리들), 촬영상 정정훈(아가씨), 기술상 곽태용 황효균(부산행), 음악상 모그(밀정), 국제비평가연맹한국본부상 이준익 감독(동주), 신인평론상 손시내, 독립영화지원상 김동령 박경태 감독이 수상 영광을 안았다. 남자신인상 수상자는 올해 선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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