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다. 하지만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엄태화 감독(35)에게는 영화가 그 수단이다.
영화 '가려진 시간'(감독 엄태화/제작 바른손이앤에이)이 오는 16일 개봉한다. 화노도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사건 후 단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강동원)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단 한 소녀 수린(신은수)의 이야기다.
많은 관객에게 '가려진 시간'은 충무로 흥행 보증수표 강동원의 신작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시네필들에게는 엄태화 감독의 신작으로 통한다. '숲'(2012)과 '잉투기'(2013) 연출한, 구 독립영화계의 유망주였던 그 감독 맞다.
실제로 만난 엄태화 감독은 차분한 인상이었다. 그렇지만 꽤 재미있는 구석이 있었다. 낯을 가린다기에 걱정했건만 웬걸, 짓궂은 농담도 받아치고 웃어넘긴다. 수줍음을 걷어내면 숨겨진 장난기가 드러난다. 무엇보다 영화에 대해서는 분명한 자신의 생각과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엄태화 감독은 개봉을 앞둔 설렘을 숨기지 않았다. 전작 '잉투기'의 관객 수는 약 1만 7천 명이다. 그런데 '가려진 시간'은 시사회만 해도 1만명이 넘어간다. 규모부터 압도적인 상업영화계로의 진입, 참 기다려지는 순간일 테다. 그런데 그가 지금 이 순간 가장 궁금한 건 예상 누적관객 수나 경쟁작들의 만만치 않은 공세가 아니다. 바로 관객의 반응이다.
"그런 걸 보는 게 내가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다. 물론 지금은 재미있다는 평 위주로 보긴 하지만. (웃음) '가려진 시간'이 개봉하고 나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까. 각자 해석이 다른 게 흥미롭다."
"내가 만든 이야기에 대한 반응을 숨어서 보는 걸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엄태화 감독. 관객의 피드백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알아가는게 즐겁다고. 그가 만든 영화 곳곳에는 1981년생 엄태화란 사람의 기억과 경험이 녹아있다. "영화 제작 자체가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하다. 그 시절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무의식을 통해서 나오지 않나"라는 말처럼 어쩌면 '가려진 시간'은 러닝타임 129분의 그가 꾸는 꿈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의 무의식을 엿보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든다니. '다소 변태적인 성향이 아닌가'라고 장난스레 질문을 던지자 그는 크게 웃으며 "종종 듣는 말이다"라고 응수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도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근데 면대면으로는 좀 부담스럽다. 숨어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재밌다. 아, 이거 좀 위험한 발언인가? (웃음)"
'잉투기' 이후 3년 만의 신작 '가려진 시간'은 시공간을 초월한 소년과 소녀의 우정과 첫사랑을 그렸다. 판타지적 설정과 전개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믿음'이다. 세상을 향해 돌진하는 잉여들의 각개전투를 다룬 전작과는 톤 앤 매너가 완전히 다르다. 엄태화 감독의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상당수의 감독들이 선호하는 장르에 편향돼 작업한다는 걸 감안해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엄태화 감독은 "표현 방법이 다를 뿐 결국은 다 통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두 작품 모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문다는 점에서 맥락이 비슷하다고.
"내가 좋아하는 소재가 그런 쪽이더라. '잉투기'는 현실과 가상현실이 구분되지 않고 뒤섞인 이야기다. '가려진 시간'도 멈춰진 세계와 현실이 부딪힌다. 어떻게 보면 그건 수린의 망상이나 꿈일 수도 있다. 왜 그런 걸 좋아하냐고? 아직 답을 내리지 못 했다. 여전히 고민 중이다. 관객들의 말을 좀 더 들어봐야할 것 같다."
어쨌거나 '가려진 시간'은 이미 그의 손을 떠났다. 전형성을 경계하고, 성공의 공식에 기대기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가는 엄태화 감독. 영화팬들이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가 구축한 판타지적 세계는 관객을 만나 각자 다른 의미로 살아움직일 것이다.
"사실 멈춘 세계를 다룬 영화는 외국에서는 꽤 있었다. 하지만 이게 한국에서 벌어지면 느낌이 다르지 않겠나. 감히 이렇게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그간 국내에서 접하지 못한 영화가 아닐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되길 바랐다.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틀을 비껴가길 원했다. 매 신마다 물음표를 던진 이유다. 한국적인 판타지를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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