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소담 기자]박철민이 연극 무대 당시 아찔했던 경험을 공개했다.
배우 박철민은 최근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헤럴드POP과 영화 ‘커튼콜’(감독 류훈/제작 커튼콜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모멘텀엔터테인먼트, 영화사 시네트) 인터뷰를 갖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커튼콜’은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삼류 에로 극단이 마지막 작품으로 정통 연극 ‘햄릿’을 무대에 올리면서 예상치 못한 위기와 돌발 상황 속에 좌충우돌 무대를 완성해가는 라이브 코미디 영화다. 장현성, 박철민, 전무송, 유지수, 이이경, 채서진, 고보결 등이 출연한다.
이날 박철민은 “영화 속 연극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배우들과 한달 가까이 실제 연극처럼 연습을 했다. 한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호흡을 잘 맞춰야만 막말로 저예산 영화를 찍을 수 있잖나. 블록버스터면 몰라도 ‘커튼콜’은 18~20회차에 불과했다. 그 안에 엄청난 소동을 다 담아야만 했다. 우리도 믿을 수 없었다. 장현성도 시나리오를 보면서 과연 이게 영상화 될 수 있을까 싶었다더라. 그것도 제작비 2~3억 원에 말이다. 20억 원도 아니고”라고 운을 뗐다.
이어 박철민은 “반신반의 했는데 캐릭터와 작품이 매력 있고, 전형적인 코미디가 아니니까 믿었다. 대신 연습시간을 달라고 했다. 연습실을 얻어 달라고 해서 강남 한 켠에 모여서 매일같이 리딩을 했다. 연극은 연습 과정에서 작품이 두터워진다. 재밌는 대사와 장면이 생기는데, 그걸 우리가 이번에 발견했고 만들어냈다. 류훈 감독의 장점은 그런 걸 스펀지처럼 받아들인다는 거다. 특히 영화 속 무대 장면은 4~5회차 만에 찍었다. 물론 작은 영화의 아쉬움은 있겠지만, 중간 크기 이상의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충분히 연습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우린 1시간 40분짜리 작품을 한 달 내내 연구했다. 서로 카톡으로 장면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늘 내가 했던 작품은 최고의 작품이고 최고의 하모니, 최고의 분위기라 생각하고 임한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 한 달 내내 만났다. 현장은 가난했지만 이것 저것 나눠먹으면서 배고픔을 덜 느꼈던 작품이었다. 연극이 그렇잖나. 대사 한줄만 나오더라도 늘 같이 해야 하듯이 노력했다. 영화 드라마는 자기 것만 하고 빠지면 되지만, 우리 영화는 모텔에서도 분장실에서도 대기했다. 밥 먹을 때도 식당을 따로 잡는 게 아니라 도시락을 주니까 안 나오면 못 먹는다. 그러니 나와서 함께 먹을 수밖에. 그래서 소통이 더 좋았다.”
현재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박철민. 실시간으로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연극은 다양한 돌발 상황과 에피소드가 많다고 한다. 박철민은 “젊었을 땐 주량이 괜찮았다. 그래서 막걸리 3잔 정도를 먹고 무대에 올라갔다. 그땐 젊었으니까. 하하. 그런데 무대에서는 흥분하잖나. 체온이 상승하니까 심장이 뛰고 대사가 안 나오더라. 그러면서 정말 며칠을 반성했다. 내 인생이 반성이고 후회인데, 음주 공연 때문에 20%의 대사를 생략하고 연기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공연 몇 시간 전부턴 와인 한잔도 안 먹는다”고 밝혔다.
이어 박철민은 “극단 차이무의 연극 ‘거기’에선 실제 술을 먹으면서 연기하는데 도중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경우도 있었다. 최덕문 박원상과 함께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를 할 때는 중간에 설사 때문에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었다. 5분 정도 내가 자리를 비워서 동료들이 땜빵을 했다. 그 와중에 내가 화장지 달라고 그랬으니”라고 아찔했던 당시 경험을 떠올리기도.
“배우들이 장난을 많이 친다. 한 번은 이발사 역할이었는데, 마지막에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면서 가방 두 개를 무겁게 들고 무대 올라가서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하는 신이었다. 가방을 원래 가볍게 준비하는데 마지막 공연 때 배우들이 그 가방에 쇳덩어리를 넣어둬서 도저히 가방이 안 들리더라. 힘들어서 도중에 쉬었다가 다시 연기했다. 극 중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이놈들에게 어떻게 복수할까 하면서 분노했었다. 그래서 그 배우가 무대 암막 뒤에서 대사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서있는 표시를 해둔 곳에 본드를 칠해놓기도 했다. 두세 달 공연을 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지치니까 그런 소소한 장난을 주고받는다. ‘커튼콜’은 연극 현장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넣었다. 그걸 다 집대성 해놓은 게 바로 영화 ‘커튼콜’이다.”
이어 박철민은 "'커튼콜'에서 전무송 선생님이 치매에 걸려서 대사를 잘못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가끔씩 찰나지만 무대 위에서 4~5초 동안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경우가 있다. 이게 죽음보다 더 무서울 것이라 생각도 든다. 정말 길게 느껴진다. 배우로서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 때문에 몇날 며칠을 잠도 못자는 경우도 있다. 관객은 모를 수 있지만, 배우는 5초를 느낀다. 그러면서 100배, 1,000배 쪽팔림과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연극 무대에서는 아직도 힘들게 연기생활을 이어가는 배우들이 많다. ‘커튼콜’에서도 생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배우들이 등장한다. 박철민은 “실제로도 정말 많다. 그래서 술이라도 많이 사주려고 노력한다. 주관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후배들도 그렇게 생각하려나?”라며 “정인기와 함께 극단 생활을 했다. ‘뭐 없나 클럽’을 만들었다. 오늘은 뭐 없나, 누가 안 오나 하는 거다. 주머니가 두터운 사람이 와야만 술자리가 생기니까. 그러면 우리가 먼저 메뉴를 정한다. 회를 사주는 사람은 가장 큰 손님이다. 오늘 누군가 선배가 온다는데, 직업이 이거면 이 정도 메뉴를 먹자고 계획하곤 했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당시 내가 맡은 건 술 꼬장을 부리는 놈들을 먼저 집에 보내는 거였다. 후배들 모이고 술을 사는 손님이 있는데 한 놈이 취하면 손님이 많이 안 산다. 그럼 나는 ‘빨리 집에 가! 임마’ 이렇게 정리하는 거지. 그래야 2~3차도 갈수 있으니까.(웃음) 그렇게 대비를 해서 오래도록 편안하게 지갑을 열 수 있도록 했었다. 분위기가 흐트러지거나 하면 어색해서 술 사주는 선배가 가버리잖나. 대신 큰 걸 요구하면 안 되니까 늘 치킨에 맥주, 삼겹살에 소주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먹었던 게 제일 맛있었다. 지금은 그때 선배가 사줬던 삼겹살에 소주 맛을 따라올 수가 없다. 찾을 수도 없고 말이다. 지금은 옛날 통닭을 팔아도 그때 그 맛이 아니다. 배고픈 시절이라 그랬나? 하하.”
“지금은 후배들에게 원 없이 사주고 싶다”는 박철민은 “‘박철민’ 하면 ‘지갑 잘 여는 선배’가 되고 싶다. 예전엔 극단 선배가 찾아와서 많이 사주면 그게 우리에겐 영웅이었다. 먼저 가더라도 먹을 걸 더 시켜주고 계산하고 가는 그런 선배 말이다. 그런 미담을 양산하기 위해서라도 나 또한 후배들에게 베풀고 싶다”고 힘들었던 시절 자신이 받았던 만큼, 후배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박철민은 “그때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가끔씩 묻는 사람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며 “지금 삼겹살이 조금 맛없더라도 그냥 먹을란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그래서 더 그립다. 돌아가고 싶진 않으니까 기억 속 그 음식이 더 맛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박철민이었다.
물질적인 도움뿐 아니라 박철민은 후배들을 향해 조언과 칭찬 또한 아끼지 않는 배우로 통한다. 그는 “수년 전에 ‘주머니 속의 돌’이란 2인극을 한 적 있다. 엄효섭이 1인을 맡고 내가 1인17역을 맡았다. 연극을 하면서 그 작품으로 처음 연기상을 받았다. 하루는 이정길 선배가 온다고 하더라. 술을 좋아해서 끝까지 사준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취하지만 않으면 4차까지도 갈 수 있겠다면서 설레는 맘으로 술자리에 갔다. 난 그때 그 극단 배우도 아니었는데 이정길 선배가 갑자기 나를 불러서 술을 몇 잔 연속으로 주더라. 그러면서 ‘넌 임마, 무대에서 향기가 나’라고 하더라. 죽어버리고 싶더라. 너무 좋아서”라고 말했다. “이정길 선배는 연극 무대 대선배고 청춘시절에 주연을 도맡아 한 유명배우잖나. 그런 배우가 내게 향기가 난다고 칭찬해주더라. 그 향기를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맡을 거라고 말이다. 그날 밤에 취해서 정말 많이 울었다. 그때까진 그렇게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전과 후, 박철민의 배우 인생은 달라졌다. 죽어도 연기를 관두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전엔 사실 늘 망설이고 갈등했었다. 그런데 이정길 선배가 아무려면 처음 보는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면 내게도 뭔가 매력이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덕분에 훨씬 더 당당해졌다. 모든 것들이 그렇지만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은 자신감이 반 이상이다. 김연아 선수를 봐라. 직접 관중 앞에서 경기하는데 있어서는 자신감이 제1 덕목이다. 관객이 많은데서 잘하면 언젠가 빛난다. 그 자신감을 주신 분이 이정길 선배다.”
“그 이후로 버릇이 생겼다”는 박철민은 “어떤 배우에게 조금이라도 매력이 있다면, 술 한잔 하면서 내가 받았던 칭찬과 비슷하게 ‘너는 무대서 향기가 난다’고 해주고 있다. 물론 향기가 나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그런 말을 해주면 그 배우가 너무 행복해한다. 그걸 확 느낀다. 내가 이정길 선배 말에 행복해했던 그 기분을 그 친구에게서 나도 느낀다. 산해진미는 많이 못 사줘도 언젠가 반짝반짝 빛날 거란 이야기를 꼭 해준다. 예를 들면 ‘암살’ ‘내부자들’ ‘커튼콜’에 나온 배우 김홍파도 그렇고, 40대 혹은 늦게는 50대, 60대에 뜨겁게 사랑 받는 배우도 있잖나. 그런 진주들이 뒤늦게라도 사랑 받는 건 본인의 운이다. 누군가는 빨리 사랑받고 사라지기도 하고. 늦었지만 오래 사랑받기도 한다. 그렇기에 ‘절대 망설이지 말라’고, ‘네게는 향기가 있으니까’라는 말을 해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장현성에겐 그런 향기를 못 느꼈다”고 농을 던진 박철민은 “얼마나 좋은 배우냐. 착하고 부잣집 아들 같은 정숙한 이미지가 있잖나. 무대선 개성적인 게 필요한데 장현성은 연출 전공이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연출을 하겠지’ ‘배우로는 사라지겠지’ ‘안가면 쫓아내야지’ 했는데 지금은 정말 깊은 연기를 하고 있고 영화 드라마 연극을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어서 기쁘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오랜 친분과 힘든 시절을 함께 공유한 두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칭찬이었다.
한편 ‘커튼콜’은 오는 12월8일 개봉한다.
pop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