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노윤정 기자] 강 프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첫 인상은 핸섬했고, 웃는 모습은 부드러웠다. 목소리 역시 나직하게 듣기 좋은 톤이었다. 하지만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사람을 해하는 그의 모습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박병은은 강 프로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배우 박병은은 MBC ‘캐리어를 끄는 여자’(연출 강대선, 이재진/극본 권음미)에서 ‘해결사’이자 ‘청소부’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강 프로 역할을 맡아 출연했다. 극 중 그는 웃는 얼굴로 사람을 고문하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누군가를 향해 총을 쏠 수 있는 킬러로 분해, 법정극의 긴장감을 높이고 사건이 진행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박병은은 짧게 등장하는 장면일지라도 강한 인상을 남기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1부부터 16부까지, 한 드라마를 끝냈다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제 자신한테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또,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모든 배우분들과 제작진분들이 너무 열정적으로 해주셔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고, 저랑 취미가 같은 선배를 만나서 좋습니다. 주진모 선배님이 낚시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좋은 낚시 동반자를 만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한 편으로는 이 작품을 통해 드라마의 맛을 알게 된 것 같아서, 그것도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이에요”
드라마의 맛을 알게 됐다. 실제 박병은은 꽤 오랜만에 드라마로 대중을 만났다. 한동안 스크린에서 맹활약했던 박병은에게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골든 크로스’ 이후 2년여만의 드라마 복귀작이다. 특히 ‘골든 크로스’의 경우 중간에 쉬는 회 차도 있었지만,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첫 회부터 최종회까지, 전체 회 차에 걸쳐 자신의 캐릭터를 다 보여줄 수 있었다. 그 점이 재미있었다. 드라마의 맛을 알게 됐다는 표현은 거기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걱정도 있었다. 영화 작업에 익숙해져있다 보니 드라마 작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래서 작품에 폐를 끼치면 어쩌나 하는 우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박병은 자신도 “집중해서 하다보니까, 충분히 소화해내는 저를 보는 것도 수확이었어요. 앞으로 좋은 드라마가 있으면 꼭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갖게 됐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드라마 작업 환경에 적응이 더 잘된 것 같아요. 그만큼 집중을 하고 들어갔어요. 시간하고 싸우는 드라마에서 내가 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집중을 하고 했는데, 그 집중을 3개월 정도 유지하다보니까 딱 끝나자마자 힘이 빠진다고 할까요. 끝나고 바로 취미 생활(낚시)로 힘을 보충했죠”
힘이 빠졌을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 프로라는 캐릭터가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다.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고, 사람을 해하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심리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극을 관통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악역 포지션인 만큼 서늘하고 섬뜩한 느낌도 남겨야 했다.
“처음부터 정형화된 캐릭터로 만들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강 프로라는 캐릭터에게 너무 많은 것을 부여하지 말자, 어디서 어떻게 살았고, 왜 이렇게 나빠졌고, 사람을 어떻게 죽이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대본 상황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또, 강 프로라는 사람은 프로페셔널하니까 자기 일은 깔끔하게 처리한다는 느낌을 주자는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너무 정형화되지 않은 해결사, 킬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 누굴 위협하거나 누굴 살해하는 장면에서도 그냥 차분하려고 노력했어요. 늘 하던 일이고, 그걸 프로답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확실하고 깔끔하게 해내는 인물이라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거기에 조금 첨가한 게, 그런 행동들이 자기한테는 즐거운 일이니 놀이 같은 느낌도 주려고 했었어요. 끔찍한 일인데도 강 프로는 자기 일이 재미있는 거죠. 강 프로가 먹는 사탕만 보더라도, 자기한테는 즐거운 일이니까 맛있는 사탕을 먹으면서 갔던 거예요. 사탕은 사실 제가 제안한 거예요. 즐겁게 자기 일 하러 가는 모습을 어떤 걸로 표현할까 하다가 문득 사탕이 떠올라서 그냥 슈퍼에서 사서 입에 물었어요. 그걸 나중에 작가님이 작품에 반영해주셨더라고요. 사탕을 아예 중요한 단서로 놔주셨어요. 저야 감사했죠”
“차가운 이미지나 킬러라는 이미지를 보이려면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가죽 장갑을 끼게 됐어요. 지문 같은 것도 남기지 않아야 하고, 까만 가죽 장갑이 주는 싸늘함이 있잖아요. 또, 극 중반부에 최지우 선배한테 총을 쏘는 장면에서는 제 선글라스를 썼어요. 그 장면을 보면, 강 프로가 장난스럽게 등장해서는 총을 쏘잖아요. 대본을 봤을 때 어울리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촬영 나가려다가 책상에 있는 선글라스를 집어서 나갔어요”
캐릭터와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듭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박병은의 아이디어로 완성된 장면들은 그런 고민의 결과였다. 캐릭터에 몰입하고 계속해서 제작진과 소통하며 작품에 대해 의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극 중 인물과 작품에 어울릴 만한 상황들을 제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높은 몰입도를 유지하다보니, 극 중 강 프로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대사들도 있었다.
“최지우 선배한테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말을 들어 처먹어야지’라고 하는 대사가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나왔어요. 그 전에 감독님한테 촬영하다가 무슨 말이 나오면 할 것 같다고 했는데, 편하게 하라고 하셔서 그런 대사가 정말 나왔고, 그게 방송에도 그대로 나왔어요. 애드리브를 남발하면 안 되겠지만 자기가 정말 느끼는 감정이라면, 가끔 하는 건 극에 활력이 되고 힘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평소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고, 하더라도 꼭 감독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해요. 애드리브가 어떻게 보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코미디나 좀 더 편한 분위기의 작품에서는 애드리브를 좀 더 하는데, 이런 심각한 분위기의 극에서 애드리브를 하는 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상대 배우에 대한 배려가 아니고, 상대가 당황해서 자기 호흡을 잊어버릴 수도 있잖아요”
박병은은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제작진과 출연진의 협업이 좋았던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자유로운 분위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장)현성 형은 원래 알던 형이라서 편했고, 최지우 선배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하셔서 믿음을 갖고 같이 연기했어요. 또, 주진모 선배는 낚시를 좋아해서 좋았어요. 서로 잠깐 쉴 때 낚시 이야기하면서 잡았던 물고기 자랑도 하고. 드라마 끝나고 참돔 잡으러 제주도 가자는 이야기도 했어요.(웃음) 이준은 열정 많고 풋풋한 젊은 변호사, 아직 완벽하지 않고 어설픈 면도 있지만 정의로움을 갖고 있는 그 캐릭터를 너무 잘 표현했어요. 법정 씬은 보다가 뭉클했던 적도 있어요”
특히 KBS 2TV ‘드라마 스페셜-국시집 여자’에 이어 두 번째로 작품을 함께 한 전혜빈과의 호흡은 좀 더 특별했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앞서 방송을 시작했지만, 실제 촬영을 진행한 것은 ‘국시집 여자’가 먼저였다. 한 작품 안에서 사랑을 나눴던 두 사람이 서로 날을 세우는 관계로 재회하게 된 것이다. 때문일까, 박병은은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전혜빈과 함께 만들었던 장면을 꼽았다.
“제가 혜빈씨 집에 찾아가서 위협하는 장면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국시집 여자’ 끝내고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그걸 찍어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국시집 여자’를 연출했던 김민경 감독님한테도 연락이 왔어요. ‘되게 이상하다, 둘이 좋아하다가 왜 갑자기 서로 위협하냐’고요. 그런 장면들이 개인적으로는 기억에 남아요. ‘국시집 여자’를 워낙 열심히 찍었고 그 작품에 대한 감정이 너무 좋아서, 다른 작품에서 혜빈씨를 만난 게 신기했어요. 또, 멜로를 하다가 여기서는 협박을 하니까, 그런 것들도 재미있었어요”
“저는 전혜빈씨한테 배운 게 많았어요. 놀랄 정도로 연기에 대한 욕심도 많고, 너무 좋은 느낌을 받았어요. 저보다 훨씬 더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있고, 더 열심히 하고, 신인도 아닌데 저한테 질문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자기를 다 드러내놓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 자세나 태도를 보고 마음을 열었고, 그렇게 마음을 연 게 캐릭터에 접근하는데 훨씬 도움이 됐죠. 혜빈씨는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 훨씬 좋은 배우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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