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영 감독 / 이지숙 기자
홍지영 감독 / 이지숙 기자

[헤럴드POP=성선해 기자] 결혼과 출산은 곧 죽음이라는 세계에서 서른여덟의 나이로 입봉했다. 곤궁해도 믿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홍지영(45) 감독이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감독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감독 홍지영/제작 수필름)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10개의 알약을 얻게 된 남자 수현(김윤석)이 30년 전의 자신(변요한)과 만나 평생 후회하고 있던 과거의 한 사건을 바꾸려 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 "서른 여덟에 입봉, 곤궁한 시간 버텼다"

홍지영 감독은 지난 2009년 '키친'으로 입봉했다. 상업영화를 연출한 여성 감독은 손에 꼽는다. 게다가 입봉 이후 그는 '가족시네마-별 모양의 얼룩'(2012) '결혼전야'(2013)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이는 홍 감독이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데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버틴 거다, 정확히 말하면." 홍 감독은 담담하게 치열했던 시간을 회상했다. 그는 "'키친'은 내가 서른셋부터 생각한 아이템이다. 난 영화 전공도 아니고, 아이도 있었고, 나이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감독으로서 이런 연출을 할 수 있다'라고 표현했다. 그걸로 승부를 보지 않으면 루저가 된 것 같았으니까. 결국 '키친'을 굉장히 작은 예산으로 가까스로 만들었다."

홍지영 감독 / 이지숙 기자
홍지영 감독 / 이지숙 기자

성공은 모두가 나누지만 실패는 온전히 감독의 몫이다. 흥행 여부에 따라 다시는 영화판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연출자가 부지기수다. 그 어떤 직업보다도 도박에 가깝다. 홍 감독은 "그래도 영화에 점철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키친'으로 입봉 후에도 곤궁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니 버틸만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모든 삶의 기준이 영화가 될 수는 없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으니까. 어차피 우리의 평균 수명은 길어졌고, 밥도 먹고살아야 하고 생활도 해야 하지 않나. 영화감독은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직업이다. 그런 조건을 수긍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정신건강도 유지하면서, 꿈과 일상이 같이 가야 한다."

그 결과 홍 감독은 특유의 섬세함이 살아있는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멜로에만 국한되고 싶지 않다. 그게 제일 위험한 이야기다"라고 강조했다.

"연출은 이야기를 어떻게 밀도 있게 푸느냐의 문제다. 장르와 소재는 불문이다. 감독이 주로 해왔던 걸로 그 사람의 역량을 국한할 수는 없다. 나 역시 멜로로 나를 한정 짓게 될까 두렵다. '멜로만 잘하겠네' 이건 편견이다. 칭찬 같지만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스틸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스틸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여성 영화감독, 女 캐릭터 신경 쓰게 되더라"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홍 감독의 그런 고민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는 단순 멜로가 아닌, 스릴러적 요소가 있는 리드미컬한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또한 인물들의 감정을 강조하면서도, 타이트한 편집으로 관객이 지루할 틈이 없게 했다.

그간 홍 감독의 영화에서 보아왔던 능동적인 여성상은 더욱 강화됐다. 두 수현의 사랑을 받는 연아(채서진)는 최초의 여성 돌고래 조련사다. 또한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먼저 프러포즈를 하는 저돌성까지 갖췄다. 80년대를 살고 있는 여인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나는 여성 감독이다. 한국에서 영화감독의 입지는 어렵다. 특히나 여자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여성 캐릭터를 다룰 때마다 더욱 신경을 쓴다. 전작부터 지금까지 늘 여성은 일관되게 그려왔다. 연아는 상대방을 부드럽게 포용하고, 그러면서도 기다릴 줄 안다. 즉, 관계를 이끌 줄 아는 사람이다."

연아는 두 수현의 마음에 중심부에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그였기에, 현재와 과거의 수현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두 남자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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