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특별할 것 없다. 무대 위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보통의 삶'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연으로 시작된 인연, 자주 보다 보니 좋아지는 감정, 트라우마로 삐뚤어지는 시선, 그 안에서 얽혀지는 관계들. 자극적이지 않은 잔잔한 그 이야기는 찬란하고 화려함이 없는 대신,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아련한 잔상을 남긴다.
연극 '사랑에 스치다'(연출 정형석)는 2013년 초연 이후 매년 꾸준히 호평을 받으며 무대에 올랐던 힐링 연극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배우 성현아의 6년만의 컴백작이자 연극 첫 도전작으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자유로운 독신주의자인 은주는 계약직 선생님 생활을 끝내며 우연한 기회로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인 동욱을 만난다. 술자리에서 시작된 어색한 만남은 인연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 사이에는 격하게 불타오르는 사랑도, 화려하게 꾸며진 이벤트도 없다. 보통의 사람이 그렇듯 이야기를 나누고, 연락하고, 다시 만나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한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은주와 동욱의 인생이지만, 두 사람 마음속에는 사랑에 대한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동욱은 결혼까지 약속했던 애인에게 배신을 당했고, 은주는 유부남인 선배를 보며 가슴앓이를 한다. 서로가 마음을 보듬어가며 '행복한 연인이 되었습니다'로 끝난다면 오히려 드라마틱 했을 것이다. 계약이 끝나 다음 진로를 생각해야 했던 은주는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난다. '사랑'으로 이어질 것 같았던 이 관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썸' 같은 것.
예상치 못하게 은주를 떠나보내야 하면서도, 명확한 연인 관계도 그렇다고 친구도 아닌 동욱은 당황한 기색을 지우지 못한 얼굴로 그저 잘 다녀오라는 인사밖에 건넬 수 없다. 그렇게 은주와의 미적지근한 관계가 더 식어버릴 위기에 처해있을 때쯤, 동욱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 윤희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수학 시간에 수학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 그는 윤희가 궁금해졌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 그리고 자신을 돌봐주던 아버지 친구로부터 밭은 충격적 상처. 그런 윤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동욱을 향해 "선생님도 나 만지고 싶냐"는 직설적인 질문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며 상처를 드러낸다. 노래를 빼앗아 듣거나, "내 꿈은 원래 배우"였다고 밝히며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동욱에게 윤희는 점차 마음을 열고, 함께 연기 연습에 참여하는 등 무기력한 표정을 하고도 동욱의 옆을 지키며 웃음을 찾는다.
사람의 마음속 공허함이나 빈 옆자리의 쓸쓸한 공백을 메꿔주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무대 위 세 사람은 끊임없이 걷고 움직여 보이지 않는 실이 꼬아지고 연결되듯 그 관계성을 표현한다. 은주와 윤희 사이에는 직접적인 접점이 없지만, 동욱이라는 매개체가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만든다. 또한 1인 多역을 수행한 멀티맨은 그 연결고리가 제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감초 역할을 수행한다.
극의 템포가 빨라 평범한 이야기에서 주는 지루함은 덜었지만,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거나 시퀀스 전환할 때마다 암전되는 공연장은 그 횟수가 너무 많아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지게 했다. 더불어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무대 왼편의 술집 세트 천장에는 환풍기가 자리해 배우의 목소리가 울리면서 극의 몰입도를 하락시키는 아쉬움을 남겼다.
'사랑에 스치다'의 '보통 매력'은 극장 입장부터 시작된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작은 안내 테이블, 그리고 직원이 직접 손으로 좌석 번호를 기재해 주는 아날로그적인 티켓. 추억 서린 아련함은 화려한 조명을 뚫고 바쁘게 움직이던 시간에 잠시 숨돌릴 틈을 선사한다. 배우들이 관객과 작별하는 방법도 독특하다. 김광석의 '기다려줘'를 한 구절씩 부르는 것이다. 송년회 장기자랑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배우들의 100% 라이브를 들으며 잔잔한 분위기에서 몽글몽글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면, 왜 이 평범한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 힐링을 주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극 '사랑에 스치다'의 수학 선생님 역에는 김지완·오동욱, 은주 역에는 성현아·최영신, 윤희 역에는 김세진·이정민, '열일'하는 멀티맨은 양권석·허병필이 연기한다. 오는 2월 5일까지 대학로 드림시어터에서 공연.
(사진 제공=벨라뮤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