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19일 개봉한 영화 '다른 길이 있다' (감독 조창호/배급 영화사 몸, 무브먼트)는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기로 한 두 남녀의 아프지만 아름다운 여정을 그린 영화다. 사는 게 지옥인 경찰 수완(김재욱)과 이벤트 도우미 정원(서예지)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다른 길이 있다' 속에는 배우 김재욱(33)의 낯선 얼굴이 있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느라 타인을 돌아보지 못하는 수완 역을 맡았다.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안고 자란 인물이다. 정신병원에 가짜로 입원한 아버지의 병원비까지 대면서 우울한 일상을 산다.
서늘하고 화려한 이목구비 위로 삶의 고단함이 내려앉는 순간이 있을 줄이야. 김재욱은 이를 "배우가 필연적으로 가져야 하는 호기심"이라 표현했다. 배우란 팔색조가 숙명인 존재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다. 변신을 거듭하는 이도 있지만, 타고난 조건을 활용해 예상 가능한 길을 걷는 이도 분명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김재욱은 그래 보였다. 그의 이름 앞에는 모델과 배우, 그리고 뮤지션이란 타이틀이 붙는다. 중성적인 외모에 묘한 눈빛을 가진, 날카로운 인상의 그에게서 일상성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그건 선입견 섞인 오해라고. 김재욱은 "내게도 마이너한 성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분법으로 말하긴 힘들다. 밝을 수도 있고, 어두울 때도 있다. 하지만 배우로서 소명의식은 분명한 편이다. 내 직업에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나 할까. 언젠가 봤던 이창동 감독의 말을 빌자면, 불편하지만 바라봐야 하는 진실도 있기 마련이니까. 수완이란 인물이 가진 전사와 그가 변해가는 과정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좋은 글을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김재욱에게 '다른 길이 있다' 시나리오는 그런 경험이었다. 그는 "대본보다 영상이 훨씬 잘 그려져서 만족스럽다"라며 안도했다. 이 영화는 배우 김재욱의 영역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봉이 결정되기까지 2년이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와 조창호 감독은 언젠간 만날 관객을 기다리며 영화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김재욱은 "더할 부분은 더하고, 뺄 부분은 덜어내는 단계였다"라고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는 "덕분에 편집은 물론, 대사도 바뀌었다. 여기까지 직접적으로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라고 했다. 연출자의 입장이 된다는 것, 배우에겐 귀중한 경험이다. 수없이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음에도 여전히 볼때마다 새로운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보는 사람을 마냥 힘들게 만드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의 끝에 선 두 남녀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희망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형벌인, 지독하게 외로운 순간은 누구나 있다. 그럼에도 또 다른 길을 갈구하면서 삶은 계속된다. 김재욱은 '다른 길이 있다'가 관객에게 유의미한 작품이 될 것임을 자신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관계의 종류에 따라 할 수 있는 대화가 정해져 있지 않나. 음악과 영화 등 예술은 그런 벽을 허무는 힘이 있다. 함께 본 영화를 매개로 그 관계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았던 서로의 이야기가 물꼬가 틔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의미 있게 봤다는 평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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