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틀 안에 안주하지 않는다. 신인다운 패기로 거칠 것 없이 돌진한다.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함으로 무장한 그는, 옆을 지키는 관계자를 긴장하게 할 정도로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놨다.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두둑한 배짱과 포부로 꽉 찬 배우 최우혁이다.
최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는 최우혁과 헤럴드POP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최우혁은 지난 3월 9일부터 학전블루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밑바닥에서’ 주인공 페페르로 무대에 서고 있다. ‘뮤지컬 밑바닥에서’(연출 왕용범)는 러시아의 거장 막심 고리키의 희곡을 각색한 작품으로, 하류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창작뮤지컬이다.
2015년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으로 데뷔해 이제 3년 차 된 배우가 고전을, 그것도 단독으로 주인공을 맡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원캐스트로 ‘뮤지컬 밑바닥에서’를 이끄는 소감을 물으니 “다시는 안한다”는 직설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원캐스트의 장점은 한 캐릭터로 어울리는 옷을 계속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블-트리플 캐스팅인 경우, 그들을 관찰하면 실패하는 노선을 밟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혼자다 보니 그 경험 또한 오롯이 견뎌내야 한다. 작품을 하는 동안 실패와 성공의 무한 반복을 경험한다. 매일 같은 장면을 계속 연기하니 매너리즘도 오는 것 같고, 문득 ‘이게 맞나’ 고민도 하게 되더다. 인물의 호흡을 이어가는 것은 좋은데, 체력적으로 힘든 점도 있다. 그래서 다짐했다. 원캐스트 다시는 안 한다고(웃음).”
자신 스스로를 잘 믿지 못한다는 최우혁. 연습 때는 혼자 자괴감에 빠지고, 원캐스트로 무대에 오르면서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그를 잡아준 사람은 왕용범 연출이다.
“연습하며 끝없이 나를 의심했다. 그때 왕용범 연출이 ‘너를 못 믿겠으면 나를 믿어보라’고 말해주셨다. 또 단독 주인공에 대한 한 배우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어떤 배우는 매번 다른 마음 가짐으로 공연을 하기 위해, 돌을 신발 속에 매일 다른 위치에 넣었다고 하더라. 정말 부끄러웠다. 나는 이제 세 작품 해본 배우일 뿐인데… 지금은 공연하는 매 순간, 똑같은 대사를 해도 다른 마음으로 하려고 나를 다잡고 있다.”
최우혁이 무대에 오르며 내면적 성장을 이룬 만큼, 공연 또한 날이 갈수록 무르익어갔다. 그는 첫 공연 때 호불호가 갈린 것이 아쉽다면서 “그때 와주셨던 관객들을 다시 한번 초대하고 싶다”고 말한다.
“첫 공연보다 변화가 생겼다. 커튼콜의 내용도 바뀌었고, 중간에 처지던 부분의 템포를 쫀쫀하게 당기기도했다. 배우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결말을 알고 있잖나. 프리뷰 기간에는 그 암울한 결말의 분위기를 시작부터 풍겼던 것 같다. 더 웃어도 되는데 ‘하하하’ 할 것을 ‘하하’로 끝내 버렸다. 느낌적으로 절제감이 비춰지면서 관객에게 무거운 결말을 예상하게끔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아쉽다. 지금은 더 많이 웃고, 더 슬플 수도 있다. 마음같이 쉽지는 않겠지만 초반에 공연장을 찾아주신 관객분들이 다시 한번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앞선 두 작품 뮤지컬 ‘프랑켄슈타인’과 ‘올슉업’은 대극장 공연이었다. 데뷔 후 첫 소극장을 경험하는 느낌을 묻자 “정말 다르다”고 말한 최우혁. 그는 연기의 다름과 관객과의 거리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소극장을 지금 경험해서 다행”이라고 털어놨다.
“대극장과 소극장의 연기가 다르다. 대극장의 연기가 과장됐다면 소극장 연기는 섬세하다. ‘뮤지컬 밑바닥에서’에 합류 전 운동할 때 생긴 부상으로 수술을 받게 되어 6개월을 쉬게 됐다. 그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노래, 연기를 아예 못하게 되어 대극장에서 습득한 것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소극장 연기를 하는데 괴리감을 덜 느낀 것 같다. 소극장에 와서 힘든 것은 관객 시선을 이기는 것이다. 대극장에서는 정면을 보고 노래했는데, 소극장 와서 정면을 보는게 힘들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허공이던 배경에 관객이 바로 보이니까 눈이 마주치는데, 관객과 눈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금방 시선을 피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때 미세한 동공 지진이 일어난다.”
페페르의 남성미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상의 탈의 장면. 이에 대해 최우혁은 "일상 생활에 지장이 생겼다"면서 투덜거렸다. 몸매 관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못 먹게 되어 속상한 마음이었던 것. 진지하게 작품 이야기를 하던 그의 소년같은 반전 매력이 드러났다.
"10년 전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나오던 장면이다. 한 번의 탈의로 페페르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줄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씬이다. 여러 시도를 해봤는데, 붕대가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가리면 운동한 보람도 없어서 팔에 붕대를 감았다. 그 후부터 내가 밥을 못 먹게 됐다. 캐릭터를 부각시키자고 한 결정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했다(웃음). 분명 마지막 공연까지 근육을 유지 못 하면 '점점 살찐다, 운동 소홀한가 보다'라는 짓궂은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럴 여지를 남기지 않을 거다."
상의를 벗은 페페르는 나타샤와의 장면에서 목걸이로 신체 일부를 가린다. 그 장난스러운 장면은 놀랍게도 애드리브가 아닌 철저한 연출가의 의도였다. 목걸이의 길이까지 딱 맞춰서 가릴 수 있게 준비했다고 한다. 무거운 주제를 품고 있는 작품이지만, 중간에 웃음 요소가 존재한다. 애드리브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느냐고 묻자, 최우혁은 그때를 재연해 보였다.
"나타샤가 시골에서 올라온 설정이라 옷이 촌스럽다. '이제 가'라고 옷을 챙겨주면서 나도 모르게 '옷이 이게 뭐야~'라는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애드리브라기 보다는 본심을 대사처럼 말했는데, 뒤에서 선배들이 '너 진짜 아저씨 같았다'고 말하더라."
(인터뷰②로 이어짐)
(사진=본사DB / 이지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