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더 데빌'을 마주하기 전이라면 내려놓으라. 생각을 떨치고 마음을 열어라.

'충격적 문제작'으로 평가받던 뮤지컬 '더 데빌'이 새롭게 돌아왔다. 작품의 개성은 유지하되 3인극에서 4인극으로 캐릭터를 재구성하고, 기존 뮤지컬 넘버의 70%이상을 재편곡하는 등 파격적인 변신을 꾀했다.

현실과 초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며 설명적 대사보다는 넘버와 이미지를 통해 작품을 드러낸 '더 데빌'은 다른 뮤지컬과는 다르다. 작품의 강한 개성 때문에 이질적으로 받아들이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더 데빌'은 볼만한 뮤지컬이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떠오르는 넘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 무대와 조명,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답던 배우들의 열연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만든 뮤지컬 '더 데빌'의 이야기를 압축해 설명하자면, '빛과 어둠' '유혹' '인간의 선택'이다. 그 뼈대 위에 올려진 이야기는 복잡한 듯 보이지만, 고통받고 무너지는 인간 존 파우스트(이하 존)가 절망의 끝에서 선택한 길은 결국 그의 양심을 퇴색시키며 파멸로 이어진다. 존에게 달콤한 유혹의 사과를 건넨 자는 X-블랙이며,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자가 X-화이트다.

극을 보기 전 꼭 알고 가면 좋을 정보라면, 존의 아내로 나오는 그레첸은 표면적으로는 아내지만 '존의 양심'이라는 점이다. X-블랙이 존에게 달콤한 제안을 하며 "당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존재를 퇴색시키지 않을 수 있다면 기회를 주겠다"고 말하고, 존은 그레첸에게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너"라고 말한다. 존이 퇴색시켜서는 안 될 것은 그의 양심이었다.

존의 양심이 퇴색된 후 어둠이 빛을 삼킨다. 이때 X-블랙은 "당신과 나의 위치는 바뀌었다"고 X-화이트에게 말한다. 자리가 바뀌었을 뿐, 선의 상징인 화이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 어둠에 묻혀 있을 뿐. 이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선과 악의 양면성을 상징한다.

극에서 단연 시선을 끄는 인물인 X-블랙과 X-화이트. 어둠으로 표현된 X-블랙은 능동적이다. 직접 계약을 권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존의 귓가에 속삭이며 일을 벌인다. 그러나 빛의 상징인 X-화이트는 "내 손을 놓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단지 손을 뻗을 뿐 인간이 힘으로 다가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X-블랙과의 거래도 X-화이트의 손을 잡는 것도, 마지막 그레첸을 돌려받기 위한 선택까지도 '인간'인 존의 의지였다.

'더 데빌'은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작품이지만 '권선징악'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인간을 내려다보며 즐긴 X-블랙과 X-화이트의 내기가 비극적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면 극을 무겁게 만들 수 있지만, '죽음까지도 되살릴 수 있는' 절대자가 늘 했던 방식이 아닌 결말을 기대케 했던 것은 '더 데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사를 통한 스토리텔링보다 넘버와 각 장면의 이미지를 통해 인물의 상태와 심리를 표현에 집중한 '더 데빌'은 해석의 여지가 넘쳐난다. 이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상상력을 자극하며 끊임없이 탐구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또 한가지, 배우들의 열연을 빼놓을 수 없다. X-화이트 역 임병근·고훈정·조형균, X-블랙 역 장승조·박영수·이충주, 존 파우스트 역 송용진·정욱진, 그레첸 역 리사·이하나·이예은은 알 것 같으면서도 손에 닿지 않는 '더 데빌'에 개연성을 심어준다. 모든 배역이 트리플 혹은 더블 캐스팅이기에 여러 배우 조합으로 극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X화이트의 고훈정은 특유의 성악 발성으로 빛을 상징하는 홀리함을 극대화한다. X-블랙의 장승조는 그야말로 공연장 지붕을 뚫을 기세의 시원한 가창력으로 극이 주는 답답함을 탁 트이게 만들어 준다. 또 다른 X-블랙인 박영수는 내기를 즐기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며, X-화이트와의 파워 게임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게 한다.

한편 오는 4월 30일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막을 내리는 창작 뮤지컬 ‘더데빌’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일본 라이선스 판매를 확정, 내년 일본 공연을 앞두고 있다.

(사진 제공=알앤디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