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서 모두 다 같은 아마추어야."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꼭 청춘 만화를 보는 것 같다. 풋풋한 고교생들의 행동은 어설프고 서툴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과 땀방울은 희망의 꽃을 피운다.

연극 '유도소년'(연출 이재준)은 전북체고 유도선수 경찬이 1997년 고교전국체전에 출전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경찬은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경험했던 유도부의 에이스였다. 하지만 슬럼프가 찾아왔고, 훈련을 소홀히 한 경찬은 유도 특기로 대학을 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그런 경찬에게 고교전국체전이라는 소중한 기회가 찾아온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경찬은 같은 나이의 배드민턴 선수 화영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화영은 자신의 오빠 친구인 복싱선수 민욱과 가깝게 지낸다. 오누이처럼 함께 운동도 가르쳐주고 좋아하는 음악도 나누는 사이인 두 사람이지만, 민욱은 화영을 짝사랑하고 있다. 그 가운데 민욱은 경찬과 화영의 만남을 목격하고, 경찬에게 만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운동선수인 두 사람은 결국 화영을 두고 완력 다툼을 벌인다. 그러나 경찬과 민욱은 서로의 속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응원하는 사이가 된다.

경찬은 운명처럼 찾아왔던 자신의 짧은 짝사랑을 끝내며 행운처럼 주어진 마지막 경기를 펼친다. 하지만 준비된 자에게 성과는 돌아가는 법. 그간 훈련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경찬은 뒤늦은 깨달음에도 찬란한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그러나 경찬은 상대 선수에게 목이 졸려 눈의 흰자를 보이면서도 "나가(내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랑께"를 외치며 그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은 아니라는 의지를 드러낸다.

'유도소년'은 굳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연구하며 보지 않아도 좋은 작품이다. 보이는 것에 그대로 반응하고 웃고 공감한다면 행복한 기분으로 공연장을 나올 수 있다. 무대 위 배우들은 실감 나는 운동 장면과 차진 대사로 누가 봐도 즐거울 수 있는 재미 요소를 선사한다. 이와 더불어 90년대를 주름 잡았던 히트곡 '캔디-아이야(H.O.T.)' '폼생폼사(젝스키스)' '뿌요뿌요(UP)' 등은 굳이 1997년을 세트나 소품으로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 당시의 감성을 잘 담아낸다.

사실 음악이 극의 적재적소에 녹아들지 못하고 '왜 이 시점에 이런 음악이 나올까'하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단 한 곡의 음악만으로 자극되는 향수는 어마어마하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별개로 내가 지나온 청춘을, 그 시간을 회상하게 만든다. 반면 90년대를 '응답하라1997' 등의 영상 매체로만 접한 어린 연령층의 관객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했다.

초연과 재연에 이어 세 번째 공연이었던 이번 시즌의 '유도소년'이 더욱 특별했던 것은 새로운 캐스트와 초연 캐스트(경찬 역 박훈, 민욱 역 김호진, 화영 역 정연, 요셉 역 오의식, 태구 역 조현식, 코치 역 우상욱)의 공연이 함께 진행된 점이다. '대학로 흥행 깡패' 신화를 만든 초연 캐스트팀은 본공연이 무대에 서지 않는 월요일에 특별 공연을 펼쳤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과격한 유도 장면에서 힘든 기색을 역력하게 보이는 초연 캐스트들은 "1년 전 이 무대에 섰더라면 우리가 더 날아 다닐 수 있었을텐데"라며 아쉬운 마음도 드러냈지만, 함께 해온 시간 만큼 쌓인 환상의 호흡과 웃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센스만점 애드리브로 여유 있는 웃음을 선사했다.

2017 유도소년 버전 新캐스트의 공연은 젊은 혈기와 뻗쳐나가는 에너지가 가득했다. 익숙한 기색 없이 열심히 땀방울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풋풋함에 저절로 응원하는 마음도 생긴다. 초연 캐스트가 '우리 이랬었지, 기억나?'라는 감각이라면, 新캐스트의 무대는 '이것이 청춘'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무조건 열심히만 하던 시절, 좌절해 세상 끝에 내몰린 것 같던 감정, 설레는 사랑. 그 작은 요소들이 모여 마음속 보석상자에 노크한다. '유도소년'은 단순한 추억팔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뜨거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경찬의 말대로 "내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닌" 우리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와있는지. '유도소년'은 밋밋한 일상에서 추억이라는 달콤한 과자를 한입 깨문 기분을 선사한다.

연극 '유도소년'에는 경찬 역 허정민·박정복, 민욱 역 신성민·이현욱, 화영 역 김보정·안은진, 요셉 역 조훈·한상욱, 태구 역 신창주·박강섭, 코치 역 안세호·오정택이 출연하며, 오는 14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