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인터뷰③에 이어)
고상호와의 인터뷰는 약 2시간 정도 진행됐다. 보통은 1시간 이내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데, 그의 철저한 준비성과 거칠 것 없는 답변에 훌쩍 시간이 흘렀다.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인터뷰는 묻고 답하는 소통을 넘어 어느새 편안한 대화로 이어졌다.
2008년 뮤지컬 '마인'으로 데뷔한 고상호는 어느덧 10년 차 배우가 됐다. 그가 차곡차곡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도전'이라는 단어가 비춰진다. 도전적인 역할을 많이 하는 것에는 고상호만의 확고한 이유가 있었다.
"맞다. 도전하는 것을 선호한다. 개인적으로는 초연 작품을 좋아한다. 내가 처음이 되는 것이 좋다. '처음'의 장점은 내가 무엇이든 다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거다. 재연-삼연은 내가 발버둥 쳐도 기초 토대가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변화를 줄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초연에서는 내가 기본 토대가 되기 때문에 제약이 없어진다. 사실 재연인 '보도지침'도 나에게는 제약이 많았던 작품이다."
특히 창작 초연을 좋아한다는 고상호에게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조심스레 답변을 아꼈다. 누구보다 변화를 즐기며 새로운 이미지를 찾는 배우이기에 자신의 입으로 배역을 한정 지을 수는 없었을 터.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던 고상호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깜짝 대답을 내놨다.
"몇 년 전 만해도 하고 싶은 역이 뚜렷하게 몇 가지 있었다. 초연 창작을 좋아하지만 해보고 싶은 역할은 라이선스다. 배우가 되기 전 뮤지컬과 배우에 대해 연구했을 때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 그 배우들이었기에 좋았다고 생각했던 거니까, 내가 같은 역할을 맡았을 때 막상 '다시 그 느낌이 올 수 있을까' 고민하면 어려워지고 심오해지겠지만, 해보고 싶기는 하다. 아, 정말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아빠'가 되고 싶다. 젊은 아빠가 꿈이었는데, 이미 늦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말하자) 차승원 씨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빨리 내 아이를 보고 싶다. 어차피 늦은 거 이제는 순리에 맡기겠다. 라이선스 중 참여하고픈 작품은 '넥스트 투 노멀' '북 오브 몰몬'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다. 지금은 할 수 없을 것 같고, 나이가 들어서 하고 싶은 역할은 '미스사이공'의 엔지니어다."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눈이 점점 깊어지는 고상호에게 10년 차 배우로서 공연이 끝난 뒤 감정을 물었다. 앞서 다른 인터뷰에서 그는 고등학교 연극반에서 활동하며 맡았던 첫 주연작 '택시드리벌'을 마친 뒤 황홀한 기분을 맛봤다고 이야기했다. 그 기분이 있었기에 배우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래서 아마추어 시절을 지나 10년이란 세월을 배우로 살아온 고상호가 느끼는 공연 후 감각이 궁금했다.
"공연이 끝나면 외롭고 공허하다. 20세 때부터 뮤지컬을 좋아했고, 10년 동안 다른 생각 안 하고 이것만 봤다. 뮤지컬에는 춤, 노래, 연기 챙길 것이 정말 많다. 개인적인 트레이닝을 하고, 모든 포커스를 일에 맞춰왔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20대를 왜 즐기지 못하고 살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의 열정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집에서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무대에서 받은 박수가 크면 클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외로워지고 공허해지니까, 가정을 빨리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자취 생활이 10년을 넘어가다 보니 집에 돌아갔을 때 누군가 반겨준다면 이런 감정이 덜하지 않을까. 공연 후 '너무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받고 돌아가서는 가끔 공허함을 못 이기고 나올 때도 있다. 요즘은 내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아직 내가 즐기면서 하고 있나?'하는 개인적인 물음을 갖고 있다. 조금 더 즐기면서 여유롭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치열하게 꿈을 쫓아온 10년은 분명 지금의 고상호를 만들었다. 돌아보니 '뮤지컬' 밖에 없는 그는 33세가 되고 보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막 몰두해서 '잘해야 해, 열심히 해야 해'하고 나를 몰아붙여 살아왔다면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여유를 찾으려 한다. 목표치를 정해놓고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33세가 된 느낌이다. 갑자기 '내가 지금까지 뭐했지' '열심히 살아왔는데' '벌써 10년 차'라는 생각이 떠오르는데, 뮤지컬 말고는 기억이 안 나더라. 부모님도 2년간 못 뵀다. 얼마 전에 공연 끝나고 제주도에 가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서 또 못 가게 됐다. 때마침 들어가려던 작품이 취소돼서 휴식 시간이 생겼는데, 그때 부모님을 뵐까 생각 중이다. 지난 어버이날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평소 그런 성격이 아니신데 '보고 싶다'는 말을 하셨다. 그래서 더 외로운 것 같고, 오히려 지금 불효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내가 배우로서 빨리 좋은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막 달려왔는데, 이제는 주변이 보이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나 혼자만의 꿈이나 목표를 바라보며 살아오면서 하나하나 챙기지 못한 것 같다."
고상호가 털어놓은 진심에 공기가 차분해졌다. 장난기 많은 소년같던 겉모습에 상반되는 내면적 성숙함. 마치 만화의 완벽한 캐릭터 같은 반전 매력은 무거운 공기를 깨며 다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그의 미소와 함께 더욱 부각됐다. 분위기도 환기시킬 겸 SNS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고상호의 트위터에는 힐링이 되는 고양이 사진, 야구 응원 등 일상적인 이야기가 많다.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내용이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140자 말에는 그의 절제력이 담겨있었다.
"나는 SNS에 감정적인 글,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글도 절대 안 쓴다. 그래서 내가 감정이 안 좋을 때는 SNS를 안 하려고 한다. 말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일 때는 가만히 있었다. 내 한마디로 어떤 파장을 불러 일으킬지 모르니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개인적으로 꾹꾹 눌러 담고 외로워하고 있다(웃음). 나는 나 자신을 까면서 웃긴 것을 좋아한다."
고상호는 배우 오만석이 이끄는 연예인 야구단 '인터미션'에 소속되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잠시 야구 소년이었던 그는 작은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두게 됐다. 그 후 야구에 '야'자도 쳐다보지 않았다던 그는 손가락을 다친 지금도 야구를 갈망할 정도로 야구를 좋아한다. 손가락 보호대를 하고 있던 그는 야구가 하고 싶어서 병원에 찾아갔고 '혹시 야구를 할 수 있나요?' 물어봤다가 의사 선생님에게 혼났다. 고상호는 유명한 한화 팬이기도 하다.
"한화를 좋아하게 된 것은 류현진 선수가 시작이다. 초등학교 때 투수였기에 계속 관심이 생겼다. 류현진 선수는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계속 쫓다보니 어느새 한화를 응원하고 있었다. 사실 한화 팬은 가슴이 시키는 거다. 잘하건 못하건, 그냥 가슴이 시킨다. 한화를 좋아하는 것에는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이기면 '와 이겼어!!' 지면 '그럴 수도 있지, 한 두 번도 아니고'다. 요즘 한화가 굉장히 잘하고 있다. 계속 봐 왔으니 지금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류현진 선수를 데뷔 때부터 보면서 LA다저스 팬도 됐다(웃음). 특히 류현진 선수의 정신적인 부분을 존경한다. 마치 정배같다. 어떤 경우에도 다 웃어넘기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닮고 싶고, 내가 무대 위에서 추구하는 멘탈이기도 하다. 무대 위에서 여유롭게 다 놓은 듯 툭툭 해내는 배우가 있다. 정말 부러운데, 내가 함께 일했던 사람 중 할거 다 하는 최고는 양동근 형이다. 무대 위에서 힘을 빼고 여유가 있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배웠다."
'연기 꿈나무.' 고상호가 자신의 SNS에 적어놓은 글이다. 뮤지컬만 10년 했으니, 이제 뮤지컬계에서는 '묘목'쯤 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연극과 매체에서는 꿈나무라며 멘트의 이유를 밝혔다. 오디션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는 그가 매체 출연을 희망하는 바탕에는 배우로서의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
"매체에 도전하는 이유는 디테일한 연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극장이라 하더라도 1,2,3열에서만 볼 수 있는 연기를 할 수는 없잖나. 그런데 영상으로 담기는 연기는 눈동자를 옆으로 돌리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전달되니까, 도전하고 싶다. 특히 영화는 전체적으로 배우가 연기 계획을 짤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감정 디테일을 연구하기 좋다. 그렇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나를 써주셔야 한다는 거다(웃음). 쓰임을 당하기 위해 신인의 자세로 도전 중이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기 꿈나무'라고 적어놨다. 꿈나무가 좋은 것 같다. 욕은 안 먹고 싶지만, 도전하고 실패해도 안주하고 싶지는 않다. 계속 시도해서 정체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사진=본사DB,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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