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연극 무대에는 사람, 삶, 이야기가 있다. 연극의 역할을 단순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흔히 연극은 사회와 시대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표현한다.

연극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의 표현으로 다른 이에게 어떤 것을 전달하는 행위, 그것은 행동, 언어, 어쩌면 침묵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무대 위 배우들은 여러 방법을 통해 메시지를 표출하지만 그것을 우리는 연기라고 통칭한다. 그렇다면 배우가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는 어느 범위까지 가능할까, 과연 그것은 의도한바 왜곡 없이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을까.

연극을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작품이 내포한 의미를 찾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가 너무 깊게 숨겨져 있거나 머리가 아플 정도로 난해해지면 극의 재미는 반감될 것이다. 특히 인간의 본질을 고민하게 만드는 공연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은 존재하는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스토리가 혹은 메시지가 아무리 희미해도 인간의 느낌적인 느낌이란 감각은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낸다.

지난 16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는 영국의 극작가 브라이오니 래버리(Bryony Lavery)의 대표작 연극 '프로즌(Frozen)'이 공연됐다. 극단 맨씨어터의 10주년을 기념하며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프로즌'이 2015년 초연 이후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진 것이다.

돌아온 '프로즌'은 한층 심도있게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들춰내면서도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뚜렷하게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깊이 생각하고 탐구한다면 더 고민해 볼 여지가 많은 극이지만, 공연을 보는 그 자체만으로 관객에게 다가오는 균열감은 작품이 던진 메시지를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프로즌'이 이토록 완전한 연극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스토리와 더불어 배우들의 역할이 컸다. 이석준, 우현주, 정수영. 이 배우들은 무대 위 찬란한 연기神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사 없이 독백으로 시작되는 극은 아리송함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부족함에서 오는 불친절함은 오히려 작품을 이해하고 싶은 관객의 집중도를 높였고. 밀도 높은 구성으로 어디 하나 빈틈없는 짜임새는 하나씩 퍼즐이 맞춰져 가듯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됐다.

'프로즌'은 1980년대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10살 소녀 로나는 할머니 집에 가던 중 실종된다. 20년간 아이를 찾아 낸시의 가정은 서로 어긋나고 부딪히며 붕괴된다. 시간이 흘러 로나를 찾았지만 이미 실종된 해 살해된 후였다. 로나를 살해한 범인은 랄프다. 스스로 아동학대의 피해자이기도 한 그는 소녀를 한 명씩 살해할 때마다 훈장처럼 몸에 문신을 새긴다. 범죄자의 뇌를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 아그네샤는 학대당한 인간의 범죄는 질병이라 주장하며 그들은 징벌 대상이 아니라고 랄프를 옹호한다.

작품은 연쇄 살인으로 어린 딸을 잃게 된 엄마 낸시, 소아성애를 앓고 있는 살인범 랄프, 사이코패스를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 아그네샤의 삶이 교차되며 인물 간 갈등과 변화를 그린다. 어느 하나 편하지 않은 균열 가득한 세 캐릭터지만 배우들은 차분하게 인물이 지닌 성격을 흐름 속에 녹여 자극을 줄이고 이야기와 메시지를 부각시켰다.

일부 관객은 '멘탈이 갈린다'고 소감을 남길 정도로 이 작품은 불편하다. 그것은 폭력적인 잔인함에서 왔다기보다는, 인간의 모습 그것도 남에게 드러나지 않게 바닥 깊숙이 숨겨뒀던 어두운 부분이 조명됐기 때문이다. 모든 걸 완벽하게 채운 사람은 없듯 결핍의 틈이 비집어진 순간 공감대가 탄생하지만, 그만큼 불편함은 더욱 커진다. 동시에 작품 속 내포된 선(善)과 악(惡), 이성과 감정, 용서와 복수, 트라우마와 상실 극복 등 추상적 메시지는 입체화되고 뚜렷해진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화려하게 포장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연기로 작품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것, 이 사실 하나만으로 배우들은 무대 위 전달자로서 가장 어려운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프로즌'은 경지에 오른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작품이 명확해지고 메시지 또한 뚜렷하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런 요소들을 바탕으로 '프로즌'은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2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왔다. 기약은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이번 캐스트와 함께 했던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작품을 더욱 가치 있는 무대로 만들어준 김광보 연출과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번 '프로즌'을 놓친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사진 제공=맨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