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쌓이고 쌓여가는 거짓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황당한 시추에이션. 110분 러닝타임 중 80분은 웃음 파티!"
한국 오픈런 공연의 시초이자 대학로 국민연극 '라이어'가 20주년을 맞이했다. 1998년 초연 이후 총 35,000회 공연, 누적 관객 수 500만 돌파, 대한민국 연극의 역사를 기록해 나가고 있는 스테디셀러 연극으로 우뚝 선 만큼 관객을 만난 긴 시간을 20주년 특별 공연으로 더 의미 있게 기념했다. 지난 5월 23일부터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는 연극 '라이어' 20주년 특별공연 '스페셜 라이어'가 공연 중이다.
'라이어'는 영국의 인기 극작가 겸 연출가 레이 쿠니(Ray Cooney)의 대표작인 ‘Run for Your Wife’ 원작을 번안, 각색하며 선보인 연극이다. 원작의 탄탄한 구성과 국적을 띄어 넘는 탁월한 유머 코드는 한국에서도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은 거짓말로 인해 서로 속고 속이는 상황과 자신의 거짓말에 스스로 걸려드는 폭소유발 캐릭터들로 공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 희극의 수작이다. 스토리 전개는 러닝타임 내내 배꼽 잡는 단순한 웃음 유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발한 아이디어, 군더더기 없는 연출, 유기적인 스토리로 높은 작품성으로도 호평을 받아왔다.
이번 '스페셜 라이어'에는 그동안 '라이어'를 거치며 스타로 성장한 수많은 라이어 출신 배우들과 新캐스트 합류로 풍성한 볼거리와 더 막강해진 웃음을 선사한다. 연극배우 시절 ‘라이어’와 동고동락했던 이종혁, 안내상, 우현, 권혁준, 김원식, 김광식, 오대환, 홍석천이 다시 한번 뭉쳤고, 새 얼굴 원기준, 서현철, 안세하, 슈, 신다은, 나르샤, 손담비, 안홍진, 김호영, 병헌이 새롭게 합류했다.
주인공인 택시 운전사 존 스미스는 두 여인을 사랑한다. 너무나 똑같이 두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에 아무도 모르게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는 존은 윔블던에서는 메리, 스트리트햄에서는 바바라와 함께 살고 있다. 정확한 스케줄을 계획해 움직이는 존의 일정은 가벼운 강도 사건에 휘말리며 엇갈리기 시작한다. 존을 걱정해 경찰서에 전화한 메리와 바바라 덕분에, 두 사람의 집에는 각각 트로우튼 형사와 포터 형사가 찾아온다. 존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친구 스탠리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고, 순간을 피하기 위해 벌여놓은 일들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겉잡을 수 없는 사건이 되어버린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장르의 연극이라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공연장을 찾았다. 한 관객은 자리에 앉으며 "나 이런 거 잘 못 봐. 분명 코를 골며 잘 거야"라고 말했다. 문화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미리 잘 것 같다며 예고까지 했지만 결국 그 관객은 박수까지 치며 연극을 끝까지 관람했다. 그만큼 '스페셜 라이어'가 가진 웃음의 힘은 강했다.
작품 속에는 불륜, 거짓말, 여성스러운 남자, 위협적인 남자 등 민감한 소재와 전형적인 캐릭터가 가득하다. 하지만 쓸데없이 불륜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았고, 거짓말은 단순히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그래서 거짓말을 뱉은 뒤 그것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존과 스탠리는 고군분투한다. 그들의 눈물겹고 쓸데없는 노력이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는데, 이는 속는 사람이 아닌 속이는 사람을 보며 폭소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속는 사람이 바보처럼 비쳐지지 않고, 오히려 속이는 사람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불편함 없는 웃음을 선사해 뒤 끝이 남지 않는다.
인터미션 없이 110분 동안 진행되는 연극이지만, 지루함 없이 흐름에 따라 더 쫀쫀해지고 흥미진진해지는 이 작품은 짜임새 좋은 구성과 함께 배우들의 유쾌하고 코믹한 연기가 매력으로 다가온다. 존 스미스 역의 원기준은 거짓말의 당사자로 일명 '개판 5분 전'인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지만, 가장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행동하는 인물이다. 덤덤한 듯 연기를 펼쳐 개성 강한 다른 인물들 속에 묻힐 것 같았지만, 노련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극의 중심에 섰다. 스탠리 가드너 역의 안세하에게는 우선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고작 윗집에 사는 이웃사촌일 뿐인데, 존의 거짓말에 휩쓸려 농부도 되고, 호모도 되고, 존 스미스도 되고 정말 각종 고난을 겪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안쓰러우면서도 가장 코믹했다.
메리 스미스 역의 슈는 연극 무대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남편 존만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걱정하는 귀여운 아내의 모습을 슈 본연의 성격을 입혀 잘 살려냈다. 연기에서는 살짝 과장된 부분도 있었지만 연극적인 요소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였다. 바바라 스미스 역의 손담비는 첫 무대 연기에서 '인생캐'(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자기 옷을 입은 듯 인물을 120% 표현해낸 손담비는 다소 연기 템포가 느렸지만, 예쁘고 세련된 캐릭터 설정에 잘 부합되며 인물을 잘 소화해냈다. 포터 하우스 역 김원식과 트로우튼 역 안홍진은 이 작품에서 없어서는 안될 감초였다. 형사인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캐릭터로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뽐냈고, 반전 행동과 대사로 즐거움을 선사했다.
'스페셜 라이어'에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병헌은 바비 프랭클린 역을 맡았다. 같은 역에 트리플 캐스팅된 홍석천·김호영이 베테랑 연기자인 데 반해 병헌의 연기는 미지수였던 것이 사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미묘하게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캐릭터 소개를 보면 병헌은 나름대로 자신이 생각한 바비를 충실하게 그려냈다. 그는 바바라의 윗집에 이사 온 활달한 성격의, 하지만 안짱다리로 걷는 요상한 인물로 변신했는데 미묘한 젠더성을 너무 리얼하지 않도록 나타내는 동시에 어린 외견으로 드러낼 수 있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십분 발산했다.
오직 '웃음'만이 미덕인 연극 '스페셜 라이어.' 굳이 메시지를 생각하거나 감동을 받을 준비를 할 필요 없다. 웃음이 나는 장면에서 크게 웃으면 된다.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웃음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20주년 '스페셜 라이어'가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사진 제공=㈜파파프로덕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