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안태현 기자]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간, 꿈과 현실의 경계도 허물어진다.
자욱하게 안개가 낀 도로 위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 앞차의 깜빡이는 비상등을 지표 삼아서 자욱한 안개 속을 달리는 차 안. 하지만 과연 앞차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모든 의심들이 싹 틔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 둘씩 무너져내려갈 때, 그것을 ‘천화’는 삶과 죽음의 모습과도 같다고 이야기한다.
영화 ‘천화’는 치매노인 문수(하용수 분)의 인생을 바라보는 윤정(이일화 분)과 그녀의 곁에 선 종규(양동근 분)의 관계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 제주를 배경으로 안개처럼 한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인물들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꿈과 현실이라는 모호한 경계의 이미지로 그려낸다. 스토리 역시도 모호함 속에서 안개 속 깜빡이는 비상등처럼 관객들을 이끌어간다.
인물들 역시도 어떤 확신을 가질 만한 구석을 만들지 않는다. 어디서, 또 언제 제주로 왔는지도 모를 윤정과 딱 부러지는 자기 소관을 가진 것 같지만 묶일 수 없는 영혼을 가진 종규, 또 치매에 걸렸다 다시 정신이 돌아온 문호, 남편이 죽고 그와 연관된 여인을 찾으러 온 수현까지. 각 인물들은 사연이 있지만 그 모든 사연들도 명확하지 않다. 그저 관객들 스스로 인물들이 하는 행동과 대화를 통해 인물의 전사와 이야기들을 퍼즐 맞춰가듯 유추하게 만든다.
하지만 모두 모래성과 같은 퍼즐 조각들일 뿐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단 한 차례, 비틀리는 순간 모든 유추와 해석들은 무너져 내린다. 다시 처음부터 인물에 대한 유추를 시작해야한다. 허나 영화 속 이야기들의 연결 고리 자체가 헐겁다보니 결국에는 유추를 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어느새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 가고 있고, 인물들은 개별의 감정을 쏟아낸다.
파편 같은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은 쉽게 감정을 섞지 못한다. 등장하는 인물들 자체가 어떠한 감정의 막을 가지고 있는 듯이 쉽게 속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 그렇기에 중심인물인 윤정 조차도 속을 알 수 없다. 이런 이야기들이 반복되며 영화는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오려 하기보다 그저 관망하도록 만든다. 이처럼 ‘천화’는 단 한 차례도 명확한 구성을 띄지 않는다. 실마리가 될 것 같았던 영화 속 대사나 행동, 물건들도 결국에는 어느 순간 퍼즐을 풀어버리다 막히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천화’의 단점이기보다 강점이다. ‘천화’의 스토리텔링 목적은 이야기의 명확한 전달이 아닌 감정의 전달이다. 이야기에서 의미를 찾게 하지 않고 그저 인물들이 가지는 혼란스러운 감정들과 불확실함 속의 불안함 감정들을 관객들에게 은연중에 전달하는 것. 또한 헐거운 스토리는 반복되는 아이러니에 대한 민병국 감독의 고민을 엿볼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영화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 제주의 풍경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하늘 밑이라도 조금만 지역을 달리하면 천차만별의 날씨를 보이는 제주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물들의 상황과, 모호한 구석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여기에 ‘천화’는 배우들의 호연까지 이어지게 만들며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을 오롯이 관객들에게 전달하려 노력한다. 특히 윤정 역을 맡은 이일화는 그간의 작품들에서 보지 못했던 매력을 드러내며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사랑에 상처받은 인물의 내면을 고스란히 그려내며 웃음 속에서도 인물의 외로움을 발견하게끔 하기도.
영화 ‘천화’의 제목에 대해 민병국 감독은 “고승이 죽는다는 불교 용어라고 한다”라며 “또, 영어 제목은 ‘Living Being'이다. 생명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제목부터 죽음과 삶이 상충된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선이 딱 지어져 있지 않다는 의미로 제목을 지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소 어려운 내용 전달과 파편적인 전개 탓에 금방 영화에 매력과 이야기의 흐름을 느끼게 하지 못하지만 이것이 꿈과 현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모호함을 나타내기 위한 효과적 전달 수단이었다면 ‘천화’는 충분히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오는 25일 개봉.
pop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