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안태현 기자] 웃음을 따라가다 보면 먹먹한 감정이 가슴을 채운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나이가 드는 것만으로도 어른이 된다고 할 수 없고, 생각이 깊어진다고 또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누구든 ‘철이 들어라’, ‘어른처럼 행동하라’고 쉽게 말하지만 당장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될 수 있는지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험난한 세상에 홀로 던져진 어린 소녀에게는 이러한 어른에 대한 물음이 더욱 모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자신은 ‘다 컸다’라고 말하지만 법과 사회는 여전히 소녀를 ‘어린 아이’로 밖에 바라보지 않고, 당장 자신보다 더 철없는 삼촌이 어른으로써 인정받으니 말이다.

영화 ‘어른도감’은 아버지를 여윈 중학생 소녀 경언(이재인 분)의 앞에 갑작스럽게 생면부지의 삼촌 재민(엄태구 분)이 나타나면서부터 이야기를 출발한다. 혼자서 ‘참을 인(忍)’을 손바닥에 새기며 슬픔을 참아내는 경언은 누가 봐도 어른스러운 아이다. 하지만 당장 경언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삼촌 재민은 자기 형의 사망보험금을 가로채 사채 빚을 갚고, ‘제비’ 짓을 하는 철없는 어른이다. 그렇게 재민은 경언에게 ‘사망보험금을 갚을 테니 같이 사기극을 펼치자’고 유혹한다. 그렇게 경언은 재민이 약사 점희(서정연 분)에게 벌이는 사기극의 동범이 된다.

사진=영화 '어른도감' 스틸
사진=영화 '어른도감' 스틸

설정만 놓고 본다면 이야기는 뻔한 가족 코미디극의 전형을 따라갈 것만 같다. 하지만 ‘어른도감’은 이러한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전혀 다른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간다. 재민과 경언이 벌이는 사기극의 뒷모습은 자연스럽게 웃음을 자아내고, 점희와 재민 사이에서 가족의 따스함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경언의 모습은 애틋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코믹과 드라마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어느 하나도 과잉이 없다.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니 관객들은 편안하게 이야기 속에 빠져든다. 억지 신파를 끌어내지도 않으니 웃음 속 먹먹함은 더욱 가중된다.

하지만 중반쯤 경언과 재민의 감정이 교감되는 지점에서 영화는 다소 서사가 헐거워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아쉬움을 자아낸다. 경언과 재민의 관계를 단단하게 묶어줄 장치가 필요한 건 분명했으나 이미 전개 속에서 탄탄하게 감정의 변화들이 그려졌기 때문에 자칫 과잉으로 비쳐질까하는 우려를 낳는다. 그럼에도 ‘어른도감’이 가지는 이야기의 담담함과 발랄한 유머의 매력은 이러한 부분까지 감싸는 힘으로 작용한다. 특히나 모든 인물의 전사가 워낙 단단하게 설정되어있다 보니 이야기 속에서 감정의 변화는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사진=영화 '어른도감' 스틸
사진=영화 '어른도감' 스틸

경언과 재민을 연기한 이재인과 엄태구의 연기 호흡 또한 ‘어른도감’의 매력을 상승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독립심이 강하지만 마음속에는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는 경언의 모습을 세심한 표현으로 그려내는 이재인의 연기는 성인배우들의 틈에서 확실한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 엄태구 또한 그간 많은 작품에서 어두운 모습의 역할을 맡은 것과는 달리 ‘어른도감’에서는 유머를 이끌어내는 중심축으로 등장해, 과거 영화 ‘잉투기’에서 보였던 허당기 가득했던 매력을 상기시키게끔 한다.

이처럼 캐릭터들에 자신들만의 색채를 불어넣은 이재인과 엄태구의 연기가 어우러지니 ‘어른도감’ 속 경언과 재민의 대비는 더욱 극명하고 풍성하게 그려진다. 특히 이러한 배우들의 감정에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고 최대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출 또한 ‘어른도감’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 중 하나다. 물론 너무나도 차분한 이야기 탓에 다소 이야기가 밋밋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밋밋함은 순수함이라는 매력으로 변모한다.

영화 속 재민은 경언에게 “누군가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건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삶의 일부를 주는 거야”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김인선 감독이 던지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의 답이 될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정답을 던져주지 않는다. 단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만이 머릿속에, 먹먹한 감정만이 가슴 속에 가득 차게 만든다. 결국 답을 내리는 것은 어른의 삶을 살아가거나 살아가야할 관객의 몫이다. 과연 관객들은 ‘어른도감’이 던지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란 당돌한 질문에 어떤 답을 이어갈 수 있을까. 오는 2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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