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안태현 기자] 여행은 일상의 도피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일상이 되는 순간 우리는 한계를 느낀다.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은 다르다’며 스스로를 채근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는 삶. 결국 모두들 자신이 잘 하는 일을 향해 떠난 순간, 혼자서 다시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일상은 지쳐간다. 누군가는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며 지쳐가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잘 해내지 못해 지쳐간다. 지친 일상을 깨우는 방법은 단 하나, 도피다. 하지만 결국 돌아갈 곳이 정해져있는 찰나의 도피는 그저 백일몽일 뿐이다.
지난 12일 첫 방송된 채널A 새 금요드라마 ‘열두밤’(연출 정헌수/ 극본 황숙미)는 이런 도피로서의 여행에 대해 얘기한다. 사진작가를 꿈꾸는 2010년의 한유경(한승연 분)은 뉴욕에 살고 있다. 12박 동안 네팔로 워크숍을 떠나기 전 한 스튜디오에서 면접을 본 한유경. 그런 그녀에게 전해진 것은 여행의 즐거움이 아닌 면접 탈락의 고배였다. 이 와중에 한유경은 전 남자친구 권기태(김범진 분)은 “네 실력이 좋지 않은 거다. 내가 프로 작가들 사진을 한 두 번 보냐”라는 독설을 들어야 했고, 그렇게 그녀는 네팔로 떠나지 않은 채 경유 중 들린 한국에 머무르는 것을 선택했다. ‘여행’을 빙자한 도피였다.
차현오(신현수 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무용가를 꿈꾸던 차현오는 출근을 하려다말고 그대로 발길을 돌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올렸다. 체류 기간은 4일. 직장까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도피를 한 차현오는 결국 한유경과 같은 신세였다. 둘 모두 일상에서의 쓰린 맛을 보고 여행을 떠났다. 그렇다면 그저 이 둘은 현실에서 도망친 도피자들일 뿐일까. 하지만 여행은 도피가 될 수 없다. 백일몽을 꾸고 나서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 사실을 아직은 깨닫지 못한 둘의 모습이었다. 허나 달라진 것은 존재했다. 바로 일상에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을 두 사람의 만남이었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낯선 이를 만나는 설렘을 안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난 잠시만의 도피일 뿐이지만 만남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 그렇게 차현오는 운명처럼 만난 한유경에 빠져들었고, 한유경 또한 자신의 여행에서 뜻하지 않게 차현오와의 만남을 가지게 됐다. 자신은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답하는 한유경.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도 조금씩 그가 차오른다. 찰나의 만남이 운명이 될 수 있다는 건 거짓말 같은 한유경이지만 어쩌면 그녀 역시 “몸이 반응하기까지” 기다리는 사진가의 운명을 타고났으니 거짓말도 참이 될 수 있구나를 느끼는 것이다.
뜬구름 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열두밤’은 달랐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에서 담아낸 둘의 만남은 은은했고 그렇기에 더욱 설렘이 가득했다. 큰 사건 없이 그저 여행을 떠나는 모습 뿐이라도 그 자체가 전하는 어떠한 울림은 지친 일상에서 활력소가 될 만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여행의 첫날이다. 여전히 이 둘에게는 12번의 밤이 남아있다. 2010년에서의 4일과 2015년에서의 4일, 그리고 2018년에서의 4일. 이 긴 시간을 그려내는 동안 과연 이들의 일상은 어떻게 변모하게 될까. 여행은 일상의 도피가 아닌 일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위대한 과정이라는 것. ‘열두밤’이 그려낼 이 여행의 진가가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 채널A ‘열두밤’,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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