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포스터
사진=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포스터

[헤럴드POP=안태현 기자] 시간을 노래하며 영화는 詩(시)가 된다.

남자와 여자가 군산으로 떠난다. 처음 와보지만 마치 꼭 전에 와봤던 것만 같다는 곳. 남자는 이러한 말을 남기고는 골목 여기저기를 쏘아 다닌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아이 같다’라고 말하며 뒤따라 다닌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첫 장면이다. 아이 같은 남자 ‘윤영’(박해일 분)과 그런 남자와 함께 군산으로 오게 된 여자 ‘송현’(문소리 분), 둘은 군산 곳곳을 돌아다니다 한 칼국수 집 사장님에게 민박집을 소개 받고 그 곳에 묵기로 결심한다. ‘손님을 가려서 받는다’는 일본풍 가옥의 민박집. 하지만 민박집 주인 ‘이사장’(정진영 분)은 윤영과 송현을 아무 거리낌 없이 손님으로 허락한다. 그렇게 여행은 시작된다.

장률 감독의 영화에서 공간은 아주 큰 의미를 차지한다. 본격적으로 지명이 영화의 제목을 차지한 ‘이리’(2008)부터 시작해 ‘두만강’(2009), ‘경주’(2013), 몽골과 중국의 변경 사막지대에서의 이야기를 그린 ‘경계’(2007), 수색과 상암의 사이를 그린 ‘춘몽’(2016)까지. 서로 다른 질감을 가진 공간들을 담아내며 장률 감독은 공간의 결이 어떻게 인물과 이야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그려왔다. 이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역시 마찬가지다. 본래 영화의 배경을 목포로 하려다 군산으로 변경되며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장률 감독의 말처럼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군산이라는 공간의 결을 오롯이 담아낸다.

사진=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사진=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여전히 일제강점기 시절의 일본풍 가옥이 남아있는 과거진행형의 도시, 언제든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버릴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도시.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 담긴 군산은 꽤 복잡다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이는 그간 장률 감독의 영화에서 꾸준하게 다뤄져왔던 ‘경계’가 정확하게 구분되어있지 않고 뒤엉켜있는 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의 결은 윤영과 송현의 관계에도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젊은 여자에게 남편을 뺏긴 송현은 차 사고로 아내를 잃은 재일교포 이사장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하고, 아이 같이 엉뚱한 행동을 하던 윤영은 아이의 마음에서 머물러버린 이사장의 딸 ‘주은’(박소담 분)에게 묘한 궁금증을 느낀다.

그러면서 윤영과 송현의 관계는 뒤틀리기 시작한다. 과연 이 뒤틀려버린 관계는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영화는 현재를 바라보며 계속해 이러한 질문을 과거로 던진다. 그렇다고 질문에 합당한 ‘어떻게’라는 답은 도출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조선족이 되어버린 인물들이나,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교포가 된 인물들처럼 이 모든 뒤틀림은 결국 우연이기 때문이다. 우연적으로 길거리에서 만난 윤영과 송현이 우연적으로 들린 민박집처럼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우연이라는 오묘한 운명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든다. 그러면서 인물 사이,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던 경계는 더없이 옅어진다.

사진=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사진=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이러한 이야기를 그려내며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무겁게 분위기를 끌어가지 않는다. 장률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유쾌하다고 평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춘몽’에서 느껴졌던 웃음 보다 더욱 힘 있고 경쾌하다. 특히 문숙, 이준동, 정은채, 윤제문, 동방우, 백현진, 한예리 등 주변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웃음은 더욱 커진다. 무겁게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웃음으로 관객들을 편하게 즐기게 한 다음, 의미를 곱씹어보게 만드는 내러티브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여기에 박해일과 문소리의 부드러운 연기가 어우러지니 영화 속 웃음과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통해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추게 됐다는 박해일과 문소리. 하지만 둘의 연기는 마치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온 것처럼 매끄럽다. 이음새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여기에 군산이라는 아름다운 배경의 도시까지 어우러지니 금상첨화다. 장률 감독의 전작 ‘경주’가 그러했듯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또한 금방 군산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든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가 뒤엉킨 도시.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처럼 뒤죽박죽 섞인 것이 아닌 세월의 층이 쌓인 공간. 과연 관객들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담아낸 군산에서 어떤 우연의 순간들을 마주치게 될까.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지 않고 연변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조선족이 됐을 것이라는 말하는 영화.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과거를 이야기하며 결국 그럼으로써 미래를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오늘(8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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