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임채령 기자]사물놀이 거장으로 불리는 김덕수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1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김덕수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사물놀이 거장 김덕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언급하며 사물놀이를 시작한 계기를 밝혔다.
김덕수는 "1957년이다 추석 다음날이라 잊지 못한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김덕수는 "아버지가 옷을 갈아입히시더니 손목을 잡고 조치원을 갔다"며"어른 세명 위에 올라가는 거다. 그 위에 올라가면 천하가 내 것 같은 느낌"이라며 "그때는 요즘처럼 고층 건물도 없다. 그러니까 사실상 단체의 마스코트였다"고 밝혔다.
또한 김덕수는 아내를 언급했다.재일교포인 아내를 처음 본 김덕수는 "프로그램 미팅겸 연습 과정을 확인하려 도쿄에 갔다"고 입을 뗐다.
김덕수는 "가서 아내를 처음봤다"며 "말도 안해봤는데 내 임자가 앉아있더라"며 "이몽룡이 성춘향에게 하듯 편지를 썼다, 잘 보여야 하니까"라고 말하며 웃었다.
아내 김리혜는 당시 무명이던 김덕수와의 결혼에 대해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라며 "남편은 감자 같은 사람이었다 흙이 묻은 감자 그런 따뜻한 매력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리혜는 “남편으로 좋은 점수를 주진 못하겠다 한국에 와서 한국말도 생활관습도 문화적인 것도 전혀 몰랐다"라며 "이 사람의 생활방식에 무조건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는데 5, 6년이 지나고 이 사람이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많이 다르더라”고 말했다.
김덕수는 사물놀이 패를 이끄는 수장으로 휴식이 어색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이에 김덕수는 “가족들이 인정했다 아빠의 직업이 집을 떠나서 공연을 다니고 밖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그 자체를 인정해줬다”라며 “단 이해한다고 끝날 일이 있고 이해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지 않나 그게 내 불행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덕수는 중학생 때부터 서울로 상경해 거리 생활을 시작했는데 김덕수의 누나는 동생의 어린 시절에 대해 “서울 시내에 집이 그렇게나 많은데 내 동생만 집이 없었다"라며 "그때가 정말 마음이 아팠다”라고 전했다.
김덕수는 “가족이 떠나서 산다는 건 불행한 일 아닌가 집만큼 편하고 어머니께서 해주신 밥보다 맛있는 게 어디 있나 그게 나는 평생 아쉬웠다”라고 고백했다.
또한 김덕수의 아들 김용훈, 즉 래퍼 수퍼사이즈는 몇점 짜리 아빠냐는 질문에 "20~30점"이라며 "아티스트로는 100점"이라고 답했다.
이어 김용훈은 “한국적인 음악을 하는 김덕수 아들이 서양 음악을 하는 걸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라며 "내가 늘 이야기 하는 게 아빠가 치과의사인데 너 왜 치과의사 안 해? 라고 묻는 사람은 없지 않냐”고 말했다.
김용훈은 “사람들마다 날 보기 전에 아빠 일을 먼저 물으니까 20대 초반에는 좀 병적으로 싫어했다"라며 "만약 지금이 그 때였으면 이런 인터뷰는 하지도 않았을 거다 이제는 저도 나이를 많이 먹어서 변하지 않았나”라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pop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