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안태현 기자] 방송인 서장훈이 아닌 농구인 서장훈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지난 22일 방송된 KBS2 ‘대화의 희열2’에서는 시대를 풍미했던 농구 스타에서 예능인으로 변신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서장훈이 출연해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길었던 농구 인생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국보급 농구인, ‘탑독’, 한국 프로농구 리그 역사상 최다 득점과 최다 리바운드를 기록한 레전드 선수. 수많은 별명으로 불려왔던 서장훈의 삶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처음에는 농구가 아닌 야구로 스포츠를 시작했지만, 친구들이 있는 중학교로 전학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농구를 시작했다는 서장훈. 중학교 1학년 시절 이미 키가 180cm가 넘었다는 서장훈은 그렇게 농구를 만났고, 자신 인생 절반을 차지하는 운명을 만나게 됐다. 하지만 모든 것은 쉽지 않았다. 전학 이전까지는 농구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늘 후보선수로 지명됐고, 경기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하지만 서장훈은 끝없이 노력했다. 중학교 2학년 말, 키가 10cm가 넘게 커 중학교 3학년 초 197cm의 신장을 가지게 된 서장훈. 이후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후보선수 시절 열심히 노력해 얻게 된 슈팅 실력과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었던 신장으로 고교 농구의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가 진짜 날개를 펴기 시작한 것은 연세대학교로 진학하면서부터.
연세대 농구부는 국내 최강이라고 불리던 기아자동차 농구팀을 꺾으면 단숨에 한국 최고의 농구팀으로 성장했고, 서장훈은 연세대 농구부와 함께 한국 농구사에 남을 최고의 기록들을 써내려갔다. 특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아시아의 강호 중국을 꺾고 20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건 일은 서장훈 농구 인생 최고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서장훈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끝없이 자신을 파고들어갔던 아집과 집념이 존재했다. 우승을 위해서 늘 징크스를 피해 다니면서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야 했고, 많은 인기를 받았던 만큼 심했던 견제 탓에 농구 코트에서 시도 때도 없이 화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대중들에게 ‘서장훈=까칠함’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됐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서장훈은 “우리 안에 갇힌 사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외로운 고백을 남기기도. “최선을 다해 싸우고 승부를 내는 게 최고의 팬 서비스라고 생각했다”는 서장훈은 그 외로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렇게 40살의 나이가 됐을 때, 그는 힘겹게 잡고 있던 팽팽한 고무줄을 놓고 코트를 떠났다.
이혼에 은퇴가 가려지는 것이 아쉬워 1년 은퇴를 미뤘다는 서장훈. 그는 “아직도 가장 슬픈 단어가 은퇴”라며 은퇴식 당시 자신의 모든 인생이 끝났다 생각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하지만 코트를 떠나 방송에 출연하며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서장훈은 방송 활동 이후 자신을 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행복하게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앞으로 좋은 방송인이 되기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다”고 끝인사를 남기며 ‘대화의 희열2’ 테이블을 떠난 서장훈. 그의 인생은 단지 ‘국보급 농구인’이었기에 특별했던 것이 아니며, 그저 ‘서장훈’이라는 인간의 삶이었기에 특별했다. 누군가의 삶에 깊게 들어가 그가 가지고 있던 깊은 고민과 노력의 과정들을 되돌아보는 시간. 서장훈은 마지막까지 열정적이었던 농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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