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지혜 기자] 김병조, 이용식이 30년 만에 재회했다.
3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는 1980년대 아이들의 '뽀통령'으로 불린, '뽀뽀뽀'의 뽀병이-뽀식이 콤비 개그맨 김병조와 이용식이 30년 만에 재회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김병조는 개그맨에서 교단으로 삶의 무대를 바꿨다. 한학자로서 배움을 전하고 있는 그는 현재의 삶에서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24년째 매주 수요일마다 강의를 하고 있다는 그는 "지역 어르신들이 조금씩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 오히려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런 김병조의 꾸준한 강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들 중 하나는 동반자 아내의 숨은 노력이다. 운전을 해주기 위해 강의하는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이 시간이. 애들 소풍가는 날 설레는 것처럼 화요일에 설레서 잠도 잘 못잔다"며 "저는 그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 24년 한결같이 오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다. 저도 성실함을 많이 배운다"고 남편을 향한 변함없는 애정을 표했다.
지금은 한학자로 변신한 김병조지만 1980년대 전성기 시절에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바. 김병조는 그러나 "전성기라고 다 기쁘고 즐거운 게 아니"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한 그는 한 정당의 전당대회에서 다른 당에 대해 원하지 않던 발언을 했던 것이 문제가 되어 광고와 방송 출연이 중지되는 등 한순간 추락하게 됐다고.
김병조는 "피신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친구가) 우리 집으로 와라, 해서 그날 (친구 집에서) 잤다. 다음날 짠했나보다. 가면서 나를 쳐다보던 눈빛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며 "괜찮은 연기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실망한 분들이 많이 계셨다. 제 잘못이다. 현장에 있었던 내 잘못"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김병조의 나이 서른 여덟이었다.
극단적 생각까지 했지만 가족들 생각에 이겨냈다는 그는 "지금은 많은 분들이 이해하시고 그때 그럴 수밖에 없던 정치 상황을 양해하신다"며 "극단적 생각을 하지 않길 잘했다. 이렇게 편안하게 그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살다보면 어려운 일이 있지만 어려운 일이 어려운 일로 끝나는 게 아니더라. 그런 일이 있었기에 내가 이렇게 원하는 한학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의연하게 말했다.
이날 김병조는 전성기를 함께했던 친구 이용식에 대해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그걸로 즐거워하고, 방송에서도 지금도 한결같다. 어린시절 마음을 잃지 않는 드문 사람이다. 보고싶은 그리운 친구"라고 전했다. 이용식도 김병조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 오른 손에는 항상 볼펜이 들려있다"고 회상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이날 만난 두 사람은 감격스러운 재회의 시간을 가졌다. 이용식은 "우리가 이 정도 세월이 가도 안변했을 줄 알았다"고 반가움을 드러냈고, 김병조도 마찬가지로 "가끔 텔레비전 보기는 해도, 보고싶었다. 오랜만에 보니 마음이 찡하다"고 이야기했다.
남다른 인연인 두 사람은 그래서인지 눈이 아픈 것마저도 서로 닮아있었다. 김병조는 망막혈관폐쇄증으로 시력을 잃었는데, "시신경을 끊거나 아플 때마다 진통제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 전국을 다니면서 강의를 해야하는 상황인데 진통제 맞고 강의한다는 게 쉽지가 않아 시신경을 끊어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용식 역시 "처음엔 피곤한 줄만 알았는데 까만 점이 점점 커지면서 빛만 들어오고 물체는 안보이다가 시력을 잃게된 것"이라면서 "어떻게 눈 아픈 것까지. 아무리 운명이, 서로가 같은 프로를 오래 하고 코미디 프로도 오래 하고, 또 선배들로부터 자리를 인정받는 것도 비슷하게 가고, 그렇지만 어떻게 아픈 것도 똑같냐"고 말했다.
방송 말미, 김병조는 "많은 분들의 사랑을 분에 넘치게 받아 여한도 없다. 많은 분들에게 선현들의 지혜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드림으로 인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 그것이 저의 소망이고 뒷모습이길 바란다"면서 현재의 삶에 대한 깊은 만족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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