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정보석 바지 자락만 봐도 눈물났어요”
[헤럴드POP=김은주 기자] 배우의 무게를 견뎌내는 한선화
걸 그룹 시크릿 멤버 한선화(25)의 질주가 매섭다. 지난 2013년 KBS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에서 단역 이소란으로 출연해 연기 병행을 선언하더니 이듬해 SBS 드라마 ‘신의 선물-14일’ 조연 제니로 시청자 눈도장을 받았다. 호평에 힘입어 tvN 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 주연 강세아로 캐스팅 됐다. 당차고 발랄한 연기 색깔로 결국 MBC 일일극 ‘장미빛 연인들’ 여주인공 백장미를 거머쥐었다. 6개월간 52회를 물 흐르듯 이끌어오며 ‘한선화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로 그 재능을 한정짓기 어렵다. 그는 이제 당당한 배우다.
‘장미빛 연인들’을 끝내고 헤럴드POP 사옥에서 만난 한선화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백장미에 빠져 살았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한동안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우울했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행복하지 않고, 날씨가 좋은 데도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요. 연기 후유증이었나봐요.”
사실 한선화의 연기 이력을 놓고 볼 때 백장미 역을 소화하기에는 다소 무리였다. 대중의 시선도 불안했다. ‘장미빛 연인들’을 하기 전까지 원톱 배우로서 극을 끌어본 경험이 없었던 데다 52회라는 일일드라마의 긴 호흡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역시 초반에는 다소 어색했다. 하지만 백장미가 성장해 감에 따라 한선화의 연기 내공도 채워졌다. 그렇게 초반의 우려를 딛고 우뚝 일어섰다.
“52회를 찍는 동안 저도 불안했어요. 연기 내공이 상당하신 선생님들 사이에 제가 중요 인물을 맡았다는 부담감도 컸죠. 극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할 텐데 부끄럽고 죄송했어요. 연기가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도 많이 했고요. 책임감을 잃지 않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백장미는 연기 초보자가 소화하기에는 까다로운 캐릭터다. 박차돌(이장우)과 사랑에 빠진 철없는 대학생으로 시작해 세상 물정 모르는 신혼부부로 살다가 성공을 위해 딸과 남편을 버린 비정한 엄마이자 아내가 됐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배우였다가 뒤늦게 사랑을 깨닫는 여자로 변했다. 입체적 캐릭터였다.
특히 스물다섯 어린 한선화가 버린 딸을 다시 만나고 잠들었던 모성애를 깨우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저 마음을 표현했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딸 초롱이(이고은)를 바라보는 눈빛과 말투에서 정말 엄마 같았다. 특히 자신의 엄마인지 모르는 초롱이가 장미에게 과자를 건네는 장면에서 눈빛으로 해묵은 감정들을 쏟아내는 한선화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 그 뒤편에 배우 한선화를 봤다. 한선화는 극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특히 아빠 백만종 역을 맡은 정보석과의 부녀 호흡이 빛났다. 연기 칭찬을 거듭 하자 겸손한 자세로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모성애 연기가 가장 어렵더라고요. 출산·육아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현실적으로 보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본을 보면서 장미의 입장에 서서 상상하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죠. 그런 고민의 흔적이 연기에 살짝 묻어났나봐요(웃음). 칭찬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빠랑 호흡 맞출 시간이 많았는데 연기 합이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정보석 선배님의 에너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었어요.”
연기 호평에 시청률까지 덤으로 받았다. 지난해 10월 13.3%로 출발한 ‘장미빛 연인들’은 백장미의 파란만장한 삶에 시청자도 빠져들더니 지난 5일 방영분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인 28.9%를 기록했다. 첫 출발과 비교해 두 배 이상 급등한 성적이었다.
대중은 왜 한선화의 연기에 집중하고 박수를 보냈을까.
“그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게 아닐까요. 전 제 스스로 불편하면 연기를 잘 못하거든요. 제가 그 인물을 이해하고 사랑하니까 빠져들 수 있었어요. 그런 진정성 있는 연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신 것 같습니다.”
요즘 한선화처럼 ‘연기돌’이 많다. ‘연기돌’은 가수로 데뷔해 연기를 병행하는 아이돌을 일컫는 말이다. 한선화도 인기 걸 그룹 시크릿의 후광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연기파 배우가 되기까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롯이 한선화가 혼자 고민하고 부서지는 과정을 통해 얻어낸 것들이었다. 한선화는 첫 작품인 ‘광고천재 이태백’ 단역 오디션 현장에서도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온갖 감정을 쏟아냈다”고 일화를 공개했다. ‘신의 선물-14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장미빛 연인들’ 배역을 따낼 때에는 대본을 빽빽하게 분석하며 필기한 흔적을 감독에게 보여주며 “제가 이해한 장미는 이런 인물입니다”라고 설명하고 납득시킨 뒤 어렵게 따낸 결과였다.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이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아요. 예쁨을 받으면 질투도 받거든요. ‘운이 좋았다’ ‘기회를 잘 노렸다’ ‘회사 덕분에 캐스팅 됐지’ 이런 소리를 들으면 정말 속상해요. 그런 상처가 아픔이 많은 장미 역할을 소화하기에 도움이 됐지만 제 진심을 몰라주시니 마음 아팠어요.”
개인적으로는 모성애를 연기하면서 부성애도 깨달은 귀한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한선화는 실제로 무뚝뚝한 딸이라고. “아직 아빠에게 사랑 표현을 못해서 엄마를 통해 살짝 마음을 전했다”라는 고백을 들려줬다. 쑥스러움이 많은 딸이다.
“딸을 사랑하는 아빠 만종. 회를 거듭할수록 만종의 바지 자락만 봐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희 아버지 뒷모습이 만종 선생님과 닮았거든요. 전 무뚝뚝해서 아빠랑 안 친해요. 만종이 장미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 우리 아버지도 이랬지’ 생각에 울컥하더라고요. 엄마를 통해서 제가 아버지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속내를 알려드렸어요. 다음에는 직접 말씀드리고 싶네요(웃음).”
한선화는 ‘장미빛 연인들’을 통해 바닥까지 비우고 나니 채우고 싶다고 했다. “생동감이 넘치는 연극 무대에서 연기 에너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영화도 찍고 싶다고 했다. 이제 막 연기 걸음을 시작한 배우다운 욕심이었다. 배우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는 한선화는 “다음 작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 게 지금 가장 큰 고민”이라며 “성장하는 모습을 같이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저는 참 부족한 사람”이라고 겸손한 말을 잊지 않았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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