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금준 기자]한곡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4분 남짓한 시간, 아이돌들은 온전히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된다.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팬들의 함성, 그리고 벅차오르는 희열. 아이돌들은 그렇게 빛을 머금는다. '우상'이라는 뜻을 가진 '아이돌', 이들은 어느새 시대를 이끌어가는 '워너비 아이콘'이 됐다.
아이돌은 무대 밖에서도 남다른 대접을 받는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팬들의 눈과 귀가 모인다. 높아진 인기만큼 활동의 폭도 넓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드는 이들에게는 그 어렵다는 '타이틀 롤'을 마치 당연한 듯 꿰찬다.
인기는 실력이 있어야 유지되는 법. 특히 무대에서 쌓아올린 금자탑은 연기라는 벽과 만나 모래성이 되기 십상이다. 생각지도 못한 '로또'를 터뜨리는 아이돌도 있지만, '낙하산'으로 작품에 합류한 아이돌에게는 '연기력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비아냥거림이 쏟아진다.
하지만 '타이틀 롤'이라는 달콤한 열매는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잘만 해낸다면 한번에 인기를 얻고, 이는 곧 시너지 효과로 이어진다. 준비 없는 아이돌들도 기를 쓰고 '타이틀 롤'에 도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아이돌 중에서도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이가 있다. 바로 헬로비너스의 유영이 그 주인공이다. 하정우를 필두로 염정아, 김성균 등 연기파 배우들이 포진한 판타지오 출신인 유영은 연습생 시절부터 차근차근 자신만의 연기력을 갈고 닦아 왔다. 다른 '연기돌'과는 유전자가 다른 셈이다.
2012년 헬로비너스 멤버로 데뷔한 유영은 지난해 SBS 드라마 '원더풀 마마'에 선머슴 장고은 역으로 연기에 첫 발을 들였다. 주저 없이 긴 머리를 싹둑 자르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던 그는 MBC 드라마 '앙큼한 돌싱녀'에서 밉상 여사원 피송희 역으로, MBC '엄마의 정원'에서 나혜린 역으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특히 '엄마의 정원'에 중간 투입된 유영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극중 인물들과 빠르게 융화되며 주요 캐릭터로 성장했다. 당시 만 19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30대 초반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과시했다.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유영은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를 통해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변신, 첫 주연작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단편영화 '사냥꾼'에서는 인간사냥을 하는 사냥꾼에게 쫓기는 여주인공 은희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 '슬로우 비디오'에서는 차태현의 동생이자 반항기 넘치는 여고생 여장미 역으로 관객들과 소통했다.
그랬던 그가 선택한 차기작은 KBS2 드라마 '후아유-학교 2015'였다. 사실 그의 선택에 많은 의문이 뒤따랐다. 주요배역도 아닌 조연 해나 역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연기자로서 꽃망울이 터뜨리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유영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주어진 배역에서 최선을 다했고, 작품에 감칠맛을 제대로 더했다. 유영은 기태 역을 맡은 박두식과 '후아유' 최고의 '케미 커플'로 주인공 못지않은 사랑을 받았다.
'후아유'를 돌아보자면 해나 역은 유영이었기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작품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완성되는 것이고, 해나 역 역시 '후아유'를 만드는 빼놓을 수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작품이 좋다면, 또 작품에 도움이 되는 캐릭터를 맡는다면 전 언제나 행복해요. 더욱이 해나는 선머슴, 얄미운 사원, 똑똑 지적인 여자 등 제가 해왔던 캐릭터와는 또 인물이었잖아요. 그러고 보니 네 가지를 합쳐보면 겹치는 게 없네요. 작품 속 비중을 떠나 해나는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는 제 목표에 맞아떨어지는 배역이었죠."
일부 배우들은 고정화된 이미지의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한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닌 이유다. 특히 유영처럼 다채로운 색깔을 입어야 하는 경우 작품에 임하는 부담감은 더욱 무겁게 닥쳐온다. 그는 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답은 결국 대본 속에 있는 것 같아요. 대본을 최대한 많이 읽고, 감독님, 작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바꾸려고 노력하죠.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작은 것부터 바꾸려고 해요."
'후아유' 해나는 대본을 넘어 유영에게 더욱 많은 배움을 준 배역이었다. 교실이라는 공간의 특성 상 대본에 없는 생생한 생활 연기를 카메라 앵글 밖에서도 해내야 했고, 그 상황 자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함께 이해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매 장면마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게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러한 작업에 익숙해 지다보니 오히려 다른 배우들과 더욱 친해지고 제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더라고요. 나중에는 서로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고, 저희의 분량이 탄생하기도 했어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죠."
특히 아이돌 생활로 교실에 대한 추억이 제대로 없었던 유영에게 '후아유'는 소중한 보물을 만들어줬다.
"가장 감사하고 고마운 것은 반 친구들 모두 합심해 좋은 교실을 만들었다는 것 같아요. 사실 또래들이랑 처음 연기를 해보는데요, 교실 안에서 하루 종일 뭉쳐있으니 정말 친해졌어요. 정말 학창시절을 함께 보내는 친구들이 된 것 같다 랄까요? 그래서 '후아유'는 보내기 가장 아쉬운 작품이에요."
이처럼 유영은 처음부터 비중이 높은 배역에 도전하기보다는 다양한 부문에서 조용히 경험과 실력을 쌓아 올리고 있다. 다른 '연기돌'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남다른 노력과 탄탄한 연기력, 그리고 차별화된 필모그래피. 유영은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하나하나 배운 것들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나만의 작은 노트에 차곡차곡 쌓고 있어요. 매일 매일 촬영장에서 보고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두는 거죠. 남들이 보기에는 낡은 노트일 뿐이지만, 연기자 유영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죠. '후아유'를 통해 그 보물을 많이 모았어요. 이제 '후아유'를 떠나보내지만,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이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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