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최현호 기자]쉽게 답이 보이지 않는다. 약자, 소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탐구한 영화들이 외면을 받는다. 많은 관객이 보고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들이 있겠지만, 정작 거창하고 화려한 영화에 가려져 현실에서도 외면 받는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다수의 찬성을 얻지 못한 채 폐기된 ‘소수의견’이다.
지난해 ‘카트’와 올해 초 ‘약장수’ 등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일상의 이야기가 흥행에서 참패했다. 일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영화들의 흥행 실패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내일 내일모레도 그래야한다면 한국영화의 미래가 암울하다. 흥행한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예산의 규모지만, 대중적으로 연기 잘한고 평가받는 배우들 열연과 평론 및 언론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관객을 붙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아쉬움은 계속 이어졌다. CJ E&M에서 시네마서비스로 배급사 변경을 거쳐 2년의 기다림 끝에 개봉한 ‘소수의견’, 칸 국제영화제 초청작인 ‘마돈나’, 김기덕 감독이 제작과 각본을 맡은 ‘메이드 인 차이나’ 등이 각각 ‘소수의 목소리’를 내며 극장가의 반란을 꿈꿨지만, 흥행에서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물론 이밖에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하루 10명 안팎의 관객을 모으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하지만 상업적 의도와 유명배우들을 내세운 영화들의 외면 역시 박탈감이 클만하다.
반면, 슈퍼히어로나 무기를 든 마초, 거대한 공룡과 대재난, 현란한 카체이스, 파워풀한 격투, 참혹한 핏빛 살육 등 자극적이고 화끈한 장면들로 무장된 영화들은 관객의 시선을 제대로 붙든다. 단순히 느낌 탓일까.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극장가를 장악중인 작품들에게서 이런 면이 크게 다가온다. 특히 화려하고 멋진 인물, 박수를 받는 사람들이 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결과는 확연히 수치로 나타난다. 예매율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일반 대중의 관심도를 그대로 드러낸다. 스크린 수 역시 마찬가지다. 예상대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나 ‘쥬라기 월드’ ‘연평해전’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최근 ‘연평해전’은 800~900개의 스크린을 확보했고,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도 10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장악중이다.
하지만 300여 스크린 수를 기록하던 ‘소수의견’은 약 200개로 떨어졌고, ‘마돈나’는 약 60개의 스크린을 확보 중이며, 일일 평균 1000여 명의 관객을 모으고 있다. 이는 평일 하루 동안 10만 명 이상을 모으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비하면 약 100배의 차이다. 이런 극명한 차이는 늘 있어왔지만, 한국영화의 위기론이 올 상반기 대두된 상황에서 바라보니 더욱 씁쓸하다.
물론 대중적인 면이 크게 중요한 ‘흥행’에 있어서 무겁고 선입견이 생기는 작품에는 일단 관객들의 발길이 닿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무게감 있는 진지한 작품을 관객들이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대중에 공개되기 전부터 ‘수익’이 가장 큰 목표인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나름 철저한 분석에 따라 관을 연다.
각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스크린 수를 배정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어서 감독, 배우, 제작 규모, 유사 장르의 실적 비교 등 여러 요소를 통해 통계적 수치를 얻는다. 여기에 개봉 전 배급사의 견해, 시사회의 평 등을 반영한 점수와 사전 예매율을 고려해 각 지점에 상영에 대한 지시를 내린다. 물론 각 지점에서는 어느 정도 이에 대해 수정할 권한을 가진다. 하지만 특별한 차이는 없다.
결국 확실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외면받는 영화들을 의도적으로 구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와 판박이처럼 느껴진다. 영화 속 소외된 자를 쉡게 돌아보지 못하는 거대한 사회. 영화 생태계 역시 시스템 자체가 어느새 이런 식이고, 수정될 기미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고스란히 스크린 안팎에서 드러내고 있다.
제작진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 소외된 자들에 관심을 가지며 인식이 바뀌길 바라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소수의견’은 누가 뭐래도 용산참사를 상기시키고, ‘카트’는 비정규직 문제, ‘약장수’는 노인들의 고독사, ‘마돈나’는 억압받는 여성의 삶, ‘메이드 인 차이나’는 중국인에 대한 시선 등이 담겨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허구로 꾸민 이야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관객에게 이들 영화는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사실성’은 화려한 말도 안되는 블록버스터 액션이 놀라운 CG로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부분에서도 다가온다. 사실 같은 판타지인 것이다. 아직 관객들은 판타지 같은 사실보다 사실 같은 판타지가 더 보고 싶은 심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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