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주 기자]지난 2001년 SBS 드라마 ‘허니 허니’로 데뷔한 배우 김재원은 이듬해 대표작 ‘로망스’로 일약 스타 반열에 올랐다. 15년 동안 굴곡의 시기를 거쳐 내놓은 출연작만 18편이 넘는다. 그 사이 결혼해 세 살배기 사내아이도 한 명 뒀다. 그렇게 김재원은 베테랑 배우이자 아빠가 됐다.
드라마 ‘로망스’(2002) ‘내 사랑 팥쥐’ ‘라이벌’ 등 데뷔 초 모습만 떠올리면 김재원의 연기는 달달한 로맨스물에 갇힌 전형적 하이틴 스타라고만 생각할지 모른다. 배우 김하늘과 사제지간의 사랑을 연기한 ‘로망스’의 인기가 대단했던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김재원의 연기 시계는 꾸준히 흘러갔고 시시각각 변화를 덧입었다. 특히 지난 2011년 제대한 이후 김재원의 변신은 제대로 시작됐다.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가진 한 남자의 내면을 그린 ‘내 마음이 들리니’를 시작으로 ‘메이퀸’ ‘스캔들 :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그리고 지난달 종영한 MBC 대하사극 ‘화정’까지 변화무쌍한 5년을 보냈다.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인물을 연기하던 중 안면 마비 증상까지 겪었다.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상대방의 입만 바라보고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그때 너무 집중하니 얼굴 근육이 굳어 버리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눈가 쪽에 안면 마비가 시작됐어요. 그러니 ‘스캔들 :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에서 온갖 구박과 눈치 속에서 자란 하은중이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힘들었어요. 그때 경험 이후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장애가 있는 걸 깨닫게 됐죠. 그 이후 내면의 깊이를 이해하는 연기에 대해 접근하게 된 것 같아요.”
이번에 참여한 드라마 ‘화정’은 김재원의 재발견을 보여준 작품이 됐다. 21회부터 합류한 김재원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의 장남으로 훗날 반정을 일으켜 16대 군왕의 자리에 오르는 인물 인조로 석 달 넘게 살았다. 그동안 스무 편 가까운 작품을 했지만 이번 드라마는 김재원에게 상당히 어려웠다고. 드라마가 끝난 지 보름이 넘었지만 아쉬움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인조가 갖고 있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선입견이 워낙 크게 자리한 인물이잖아요. 어느 순간에 감정을 끝내야 할 지도 어려웠어요. 결국 작품이 끝난 후 김이영 작가님께 ‘죄송합니다’ 말했어요. 제가 작가님이 의도한 여백을 다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았거든요. 그 여백을 다른 시각으로 봤다면 더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김재원이 선인보다 악인에 근접한 인조 역에 캐스팅 됐을 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 미소’ ‘보조개 배우’ 등 선한 이미지로 큰 사랑을 받았던 배우가 아니었는가. 어찌보면 첫 악역 도전이었다. 김재원은 ‘인조’라는 캐릭터가 자신에게 오기까지 여러 변화를 시도해 왔음을 고백했다. 배우에게 캐릭터는 그 사람의 선택과 결과에 따라 온다는 것.
“김상호 감독님이 ‘화정’ 인조 역에 누구를 캐스팅할지 고민할 때 작가님께 ‘재원이만큼 인조를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애가 없다’고 하셨대요. 작가님이 글을 쓰거나 감독님이 연출을 할 때 ‘이 인물을 연기해 줄 사람은 바로 이 배우다’ 생각하기에 그 배우에게 대본이 오는 거거든요. 많은 고통과 인내를 거친 뒤 하나하나 모여서 깨달음으로 다가오듯이 인조는 그런 시간을 보냈던 저에게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김재원은 무명 시절이 길지 않았다. 친누나와 모친의 권유로 연극영화과에 입학했고, 지인의 소개로 매니지먼트사 들어간 이후 지금의 자리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걸어왔다. 단 한 번도 오디션을 보지 않을 정도로 작품이 작품으로 이어지는 행운이 따랐고, 한 번 인연을 맺은 스태프가 또 다른 인연을 소개해줬다. 인성도 한몫했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사람의 진심도 헤아릴 줄 아는 상남자인지라 찾아주는 이들도 많았다. 여러 조건들이 잘 맞아떨어지면서 큰 부침 없이 올라왔다. 그 사이 배우가 천직임을 깨닫게 됐다. 매 작품 소중했고, 매 작품 특별했다고. 그 어느 순간 하나 쉽게 버릴 수 없다고 고백했다.
“배우는 늘 달라져야 한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데뷔 초 ‘로망스’로 얻은 ‘살인 미소’라는 이미지와 별명을 버리고 싶지 않아요. 가장 좋은 순간이었고 가장 행복했던 수식어인데 그걸 왜 버려야 하나요. 그 기억들을 버팀목처럼 삼고 기대면서 지금까지 견뎠어요. 전 그 기둥 위에 또 다른 기둥을 세우고 싶어요.” 김재원은 ‘화정’ 인조 역을 통해 새 기둥을 세웠다. 권력을 향한 표독스러움을 표정에 날카롭게 담으며 죽어가는 인조를 표현했다. “생애 처음 시청자로부터 미움을 받아봤어요. 시청자가 주는 미움이라는 반응이 지금까지 순탄하게 흘러왔던 저에게 꼭 필요했죠. 미움을 받는 게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동시에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 알게 된 값진 작품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한 의견 개진, 쉴 틈을 주지 않고 쏟아내는 언변술, 뻔하지 않은 답으로 상대방을 놀라게 만드는 힘, 동안의 비결은 호기심이라며 귀띔해주는 기발함. 김재원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요즘 최대 관심사는 양자물리학이다. 미래 학자들이 궁금해하는 답은 할리우드의 진보된 영화에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끝까지 실망감을 주지 않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배우의 연기는 앞으로도 반드시 변화무쌍할 것이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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