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노윤정 기자]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기쁩니다”

이서진과 유이가 멜로 호흡을 맞춘다고 했을 때 크게 기대했던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두 사람이 드라마 ‘결혼계약’에 함께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우선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우려를 낳았고, 지나치게 상투적으로 보이는 스토리도 기대감을 반감시켰다. 하지만 결과는?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에 시청자들도 함께 울었다.

작품이 호평을 받으니 배우로서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있을까.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이서진 역시 밝은 표정이었다. 시작할 때 이렇게 잘 될 줄 알았느냐고 물으니 “아예 처음 시작할 때는 잘 몰랐는데, 촬영하면서는 느낌이 좋았어요. 또 1, 2회 방송 나가고는 주변 관계자 분들을 통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라고 답했다. 열풍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흥행을 이룬 셈이다. 이서진 본인 역시 처음에는 고사하려고 했었던 작품에서 말이다.

“‘결혼계약’은 사실 전형적인 러브스토리거든요. 저도 대본 받았을 때는 너무 전형적이라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대본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캐릭터에 조금 불만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럼 피디랑 작가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알았다고 했죠. 그런데 그것도 조금 걱정되더라고요. 김진민 피디와는 개인적으로 원래 아는 사이지만, 작가님은 전혀 모르는 분이고 오래 하신 분인데 제가 그런 분한테 고쳐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렇게 말해놓고 안 한다고 하기도 껄끄러웠어요. 그런데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한지훈이라는 캐릭터가 처음에는 착했어요. 그런데 그러면 나중에 혜수(유이 분)와의 러브스토리가 너무 뻔하잖아요. 그래서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으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굉장히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캐릭터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3일 만에 대본을 수정해서 보내주셨어요. 제가 거기에 너무 감동을 받아서 바로 ‘하겠다, 앞으로 절대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겠다’고 했죠. 김진민 피디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요”

이서진이 아닌 한지훈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더할 나위 없이 녹아들었다. 그랬기에 극 중 멜로가 더 절절하게 다가왔을 터. 이서진은 한지훈이라는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제가 ‘삼시세끼’를 하면서 사적인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줘서, 갑자기 멋있는 척하면 거부감이 들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 연장선에서 연기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 캐릭터가 되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제 안으로 가져와서 ‘삼시세끼’랑 약간 비슷하게 보이는 모습으로 시작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편하게, 제 실제 모습 비슷하게 했죠”

“툭툭 던지는 말투도 저랑 비슷하고, 김광규 씨 구박하는 건 실제고요.(웃음) 사실 대본으로 봤을 때는 광규형과의 대화가 좀 더 친구 같은 대화인데, 제가 더 구박을 한 거죠. 실제로는 ‘고맙다’, ‘너밖에 없다’ 이런 대사도 있었는데, 다 틀었어요”

‘결혼계약’ 속 그려지는 이야기는 밝고 예쁘고 동화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 기저에 깔린 감정은 ‘슬픔’일 수밖에 없다. 강혜수는 극 초반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고, 한지훈과 애틋하게 사랑을 키워가는 중에도 병세는 점점 더 심해져간다. 때문에 이서진은 “혜수가 시한부라는 걸 안 다음부터는 모든 씬이 슬픈 씬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자신이 이렇게 슬픈 작품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고. 결말 역시 아름답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미소 지을 수 있는 결말을 원했다.

“대본이 나오고 전에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했어요. 결말 전까지 어차피 혜수가 살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다 보여주니까, 결말은 미소도 지을 수 있으면서 눈물도 날 수 있는 결말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죠. 또, 보내는 입장인 제가 내레이션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요. (…) 저는 처음에 작가님한테 기적이 일어나서 살아나고 이러면 안 한다고 했었어요. 저희 드라마는 굉장히 현실적인 드라마예요. 결국 마지막은 혜수를 보내는 거예요”

사진 : MBC
사진 : MBC

극 중 한지훈은 강혜수가 시한부 삶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청혼하고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옆에 있어주기를 택했다. 한지훈이 강혜수의 병을 알고 난 후 외쳤던, “너 내가 살릴게. 너 내가 살린다고. 네가 내 인생 살렸으니까 이제 너도 살아봐”라는 대사는 많은 이들이 가슴을 울린 ‘결혼계약’ 속 최고의 명대사 중 하나로 꼽힌다. 극 중 한지훈이 보여준 사랑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절대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이다.

“실제 저라면 그렇게 사랑하기 힘들죠. ‘나도 옛날에 연애할 때는 이런 감정, 열정을 가지고 사랑할 때가 있었는데’ 그런 생각하면서 연기를 했어요. 옛날 같았으면 모든 걸 다 버리고 이 여자를 위해서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못 할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자꾸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지금 이 나이에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거죠. 이런 사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드는데, ‘못할 것 같다, 옛날엔 했었는데’ 싶어요”

“예전엔 멜로를 찍을 때 ‘나라면 이렇게 할 거야’ 이런 생각을 했다면, 지금은 ‘예전에 이렇게 했잖아’를 생각하게 돼요”

이렇게 동화 같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완성한 데는 배우들의 공도 있었지만, 연출의 힘도 컸다. ‘결혼계약’은 한 장면 한 장면 몰입감을 선사하고, 대본을 십분 살리고, 배우들이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연출이 돋보였다. 이서진도 김진민 피디의 연출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는 게 진짜 연출이라고 생각하는데, 김진민 피디는 정말 계속 푸시해서 뭔가를 만들어내요. 배우들이 준비한 것 이상을 계속 요구해요. 그래서 그렇게 늦게까지 찍지도 않은데 다른 것 찍을 때보다 배는 힘들어요. 이 장면은 이렇게 할 거니까 준비해 달라, 이런 식으로 계속 주문하고, 제가 준비한 방향과 다르게 요구하기도 하고요. 저도 처음에는 준비도 안 했는데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또 하게 되고 하게 해줘요. 연출이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김진민 피디는 배우한테 정말 최고의 연출인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잘하는 사람인지 몰랐어요”(웃음)

“김진민 피디는 한 줄만 있는 걸 한 씬으로 만들어요. 혜수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날(6회 방송분), 그게 원래 ‘집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워서 혜수의 집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딱 이거였어요. 그런데 저한테 ‘이걸 마지막으로 찍을 건데 이 집을 다 이용해서 기쁨을 표현해 달라’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기쁜 일인가 싶었죠. 그리고 그런 연기를 해본 적도 없었어요. 그래서 촬영하면서 계속 그 집 보면서 동선을 짰죠. 마지막 씬 찍을 때가 되니까 ‘봅시다’ 이러는데, 테이블에서 이렇게 하고 여기서 폴짝폴짝 뛰고, 이런 식으로 설명하며 리허설을 하고 찍었죠. 조연출이 보고 ‘오빠 인생연기래’ 이러더라고요”(웃음)

“어떤 연출은 준비해가면 그건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김진민 피디는 다 하라고 해요. ‘삼시세끼 해먹던 사람인데’ 이런 대사도 원래 없던 건데 얘기하니까 하라고 하고. (…) 이렇게 합이 잘 맞을 줄 몰랐는데, 정말 완전히 연출만 믿고 갔어요”

‘꽃보다 할배’ 시리즈, ‘삼시세끼’ 등을 통해 한동안 예능 프로그램으로 대중을 만났던 이서진은 ‘결혼계약’을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더 굳건히 했다. 드라마 속 한지훈에게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이서진 모습은 갈수록 지워져갔다. 때문에 이서진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인생작’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상에 대한 생각도 할 법한데 정작 본인은 크게 욕심내지 않는 눈치였다.

“저는 ‘불새’랑 ‘다모’로 상을 두 번 받았어요. 시상식은 상을 받아서 중요한 게 아니라 일종의 팬서비스 같아요. 연말에 팬들한테 보여주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시상식에 상 안 주면 안 간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어차피 한 2주 지나면 누가 무슨 상 받았는지 다 잊어버리거든요. 제가 2007년에 상 받았는지 누가 알아요. 시상식은 그 해 팬들한테 사랑받았으니까 보답하는 차원에서 보여주는 자리인 거지, 수상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이서진은 2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하며 배우로서의 역량을 증명함과 동시에, 그의 멜로가 아직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찬사 속에 막을 내린 ‘결혼계약’은 이서진에게 어떠한 의미로 남을까.

“마지막 멜로요. 제가 또 할 수 있겠어요? 젊은 애들이 해야죠.(웃음) 멜로는 닭살 돋고 그런 거 많이 해야 하는데 제가 그런 걸 할 나이는 아닌 것 같아서, 로맨틱한 멜로는 못 할 것 같아요. 이번 작품처럼 슬프고 이런 건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멜로는 그만하려고요. 다른 것도 해야죠”

(사진=서보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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