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 리뷰

김고은과 박지현이 그려내는 우정 그 이상의 이야기

<사랑의 이해> 조영민 감독의 섬세한 연출 더해져

김고은X박지현의 빛나는 ‘호연’에 호평일색

<은중과 상연> 공식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공식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뮤즈=김민지 기자] 참 지독하게도 얽혔다. 은중과 상연 그 누구의 편에 설 수도 없다. 10대부터 40대, 질긴 인연 대서사의 끝자락에 다다르는 순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이들의 여정을 보다 보면 모든 게 끝난 지점에서야 겨우 숨을 내쉬게 된다. 안도의 한숨이 아닌 살아 있어 감사한 귀한 한숨을.

드라마는 마지막에 이를수록 구태여 긴 말을 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은중 역의 김고은 배우의 말처럼, 이내 이어지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야 하는 건 시청자의 몫. 이야기의 완결을 맞이할 때쯤이면 각자의 인생 속 은중과 상연을 떠올리게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독한 ‘인연’이 만들어낸 인생의 ‘필연’…섬세한 연출로 빚어낸 두 사람 ‘은중과 상연’

“너 때문이야”, “너 덕분이야”

은중과 상연은 각자의 인생에 ‘서로’가 있어 채워졌다고 말한다. 긍정적 의미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지고 볶고 얽히고설킨 두 친구의 말에 담긴 ‘너’라는 말에는 지워지지 않는 원망과 이를 만들어낸 서로에 대한 선망이 담겨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은 세 번의 헤어짐 끝에 삶의 마지막 순간에 다시 만나게 된 두 친구 ‘은중’과 ‘상연’의 10대부터 40대까지 오랜 시간 질투와 동경을 오갔던 시간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단순한 우정 이야기가 아니다. 이토록 질긴 인연일 수가 없는 두 사람의 인생, 그 마지막 여정을 향한 이야기. 단단히 꼬인 실타래를 풀고 서로를 온전히 바라볼 때, 두 사람은 그제야 비로소 친해진다. 너무 늦었지만 어쩌면 너무 늦지 않은 그 타이밍에.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10대 시절 ‘은중’의 학교로 전학 온 ‘상연’은 우연한 계기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며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가정 환경도, 성격도 정반대인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묘한 질투로 친해지는 과정은 누군가와 친해지는 과정이 처음이고 낯선 우리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두 사람은 중학생이 되며 누구보다 가까워진다. 이때 은중에겐 첫사랑이 생긴다. 바로 상연의 친오빠 ‘상학’(김재원 분). 그리고 사진을 좋아하는 ‘상학’이라는 인물과 이름은 두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만큼 큰 파장을 일으킨다.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모종의 사건으로 떨어지게 된 둘은 대학교 동아리에서 우연히 재회한다. 그리고 이때 사진 동아리에서 만나게 된 ‘또 다른 상학(김건우 분)’은 은중과 상연의 관계를 뒤흔든다. 그것도 엄청나게. 지켜보다 보면 둘의 인연이 너무 지독해서 애틋하기보다 안쓰럽다.

수많은 사건을 겪은 20대와, 불편함 가득한 두 번째 재회를 하게 된 30대까지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네가 얼마나 빛나는 아이였는지. 조금이라도 알면 너, 너한테 이런 짓 못 해” 시간이 흐를수록 은중은 상연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친구였고, “네가 멀쩡한 게 싫어. 망가졌으면 좋겠어, 나처럼” 상연은 은중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친구였다.

부러움과 열등감이 충돌해 끝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면서 서로의 인생을 헤집어 놓은 두 사람. 그렇게 멀어지나 싶었지만, 40대에 다시 얽히고 만다. ‘상연’이 말기 암에 걸린 자신의 조력사망을 위해 스위스에 함께 가달라는 부탁과 함께 ‘은중’을 찾아가면서.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무려 15부작, 한 이야기당 1시간의 긴 러닝타임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꽉꽉 담아냈다. 짧은 분량의 콘텐츠가 범람하는 요즘 시대에 긴 분량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공개 직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느린 호흡과 길어지는 전개에 다소 루즈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이 너무 길었다는 반응이 다수다.

하지만 같은 사건을 겪었다고 해도 두 사람의 시선은 너무나도 다르다. 10대부터 40대. 심지어 미워하며 ‘절교’한 두 친구가 한 사람의 ‘조력 사망’ 부탁으로 다시 만나는 과정을 시청자가 이해하기 위해선 첨예한 묘사와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사랑의 이해>를 연출한 조영민 감독은 자신의 주특기인 ‘섬세한 표현’을 살려 최선을 다해 보여줬다.

모든 회차의 기승전결이 뚜렷한 편이다. 호흡은 느려도 한 회차의 마지막은 다음 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끔 갈등의 고조에 다다르고, 다음 회에선 곧장 바통을 이어받아 남은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은중과 상연 외 주변 인물들의 감정도 놓치지 않는다.

전작들에서 남녀의 사랑을 다뤘던 조영민 감독은 “남녀 사이보다 오히려 친구 사이의 감정이 더 복잡하고 미세하다고 느꼈다”며 “그 복잡한 내면을 보여줄 행동이나 장면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고 밝혔다.

인물 간의 관계성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배우들의 앙상블을 담아내는 것 역시 핵심이었다. 그는 “최대한 배우들의 감정이 끊기지 않고 쭉 이어갈 수 있도록 카메라의 위치와 샷 구성에 신경썼다”고 말했는데, 전개상 가장 중요한 소재인 ‘카메라’를 활용한 연출이 특히 돋보였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시간을 채집하는 거야. 아주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 안에 진짜 진실이 담겨 있어. 근데 사진은 또 거짓이기도 해. 짧은 순간이니까. 얼마든지 거짓을 진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거지.”

극 중에서 상연의 친오빠 상학은 카메라가 담는 세상을 이야기하며 진실과 거짓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는 극을 이끄는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 선망과 원망이 씌워진 채 바라보는 서로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 두 사람의 속내는 ‘죽음’이라는 다소 잔인한 마지막 순간에 오롯이 나타나게 된다.

이때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 흐르는 <은중과 상연>만의 OST는 극의 몰입도를 한층 높인다. 조영민 감독은 “두 사람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할 수 있는 톤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상연이가 지현이어서 너무 다행”…김고은X박지현의 ‘호연’ 눈부시게 빛났다

[김고은 인스타그램]
[김고은 인스타그램]

“‘천상연’에서의 ‘연’은 제비 연이야. 나는 날라리가 될 거야.”

극 중에서 천상연은 끊임없이 외롭다. 그래서 더욱 성공을 소망한다. 모든 장면에 은중을 향한 애증과 동경 그리고 열등감이 짙게 배어있다. 여기에 스스로 조력 사망을 원하며 죽음을 선택하는 천상연은 마지막까지 천상연답다.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이렇게 복잡, 미묘하면서도 냉철한 천상연이라는 캐릭터를 배우 박지현은 기가 막히게 잘 표현했다. 초점 없는 눈빛, 씁쓸한 미소,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의 두려움과 초연함까지. 천상연에 동화된 박지현의 연기는 보는 사람이 숨죽이게 만든다.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이에 호흡을 맞추는 김고은의 천상연을 향한 동경과 원망을 담은 눈빛 연기도 살벌하다. 매번 곁을 내어주지 않는 천상연에 대한 실망감과 허무함에 눈이 서서히 벌게지는 연기는 ‘의심하기 싫지만 의심하게 만드는’ 천상연과,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에 대한 미움을 백 마디 대사보다 첨예하게 그려낸다.

그럼에도 천상연의 죽음에 동행하며 마지막을 잘 보내주는 순간, 참았던 설움을 쏟아내는 장면은 시청자의 눈물샘도 터지게 만든다.

두 사람의 호연에 공개된 직후 커뮤니티에서는 이들의 연기를 칭찬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조영민 감독 역시 캐스팅에 큰 만족을 보였다. 지난 5일 열린 <은중과 상연> 제작발표회에서 조 감독은 “김고은 배우가 맡은 은중이라는 캐릭터가 연기하기 굉장히 어려운 캐릭터라 생각한다. ‘평범함’이라는 것을 연기한다는게 되게 어려운데 은중은 15부작을 끌고 가면서 평범함이 특별함과 닿아있는 점과 함께 중심을 잡아주며 어려운 연기를 잘 해줬다”고 말했다.

또한 “상연 역의 지현씨 같은 경우는 전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같이 한 적이 있어서 상연의 넓은 감정의 폭을 잘 연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있었다”고 표현했다.

은중과 상연, 두 사람 역시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보였다. 김고은과 박지현 두 배우는 삶의 여정을 함께한 은중과 성연에 대한 깊은 공감을 드러내며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결국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김고은은 “상연이가 지현이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수도 없이 많이 느꼈고 이 든든함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박지현은 “사실 죽음에 동의해 달라고 하는 부탁이 굉장히 이기적이고 뻔뻔한 행동이라고 생각을 한다”면서도 “하지만 상연의 입장에서 돌아봤을 때 어떻게 보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용서받고 싶은 사람이 은중이었고 또 상연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남은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일대기의 마지막은 ‘삶과 죽음’…대서사가 갖는 의미

<은중과 상연> 캐릭터 스틸.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캐릭터 스틸. [넷플릭스 제공]

<폭싹 속았수다>부터 <은중과 상연>까지. 올해 넷플릭스는 인물의 인생을 담은 일대기를 표현한 작품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회차와 러닝타임도 긴 편이다. <폭싹 속았수다>는 16부작으로, 한 회차당 50분 내외며 <은중과 상연>도 마찬가지다.

TV 드라마도 12부작으로 기본 편성이 짧아지는 추세다. 숏폼이 대세를 이룬 데 이어 20~30분 분량의 미드폼 콘텐츠의 예능과 드라마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요즘 시대에 긴 호흡의 드라마는 선뜻 도전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오기 일쑤다.

하지만 한 인물이 아닌 여러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이들의 인생을 그리려면 긴 회차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만큼 완급 조절을 잘해야 하는 터. 이에 <폭싹 속았수다>는 일대기를 사계절로 나눠 한 주에 4회차씩 순차 공개하는 전략을 내세워 성공했다.

같은 관점에서 <은중과 상연> 역시 많은 서사과 깊은 감정을 다뤘기에 순차 공개였으면 또 다른 효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더군다나 <은중과 상연>은 ‘조력사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다. 감상에 충분한 시간이 더 필요한 이유다. 작품이 공개되기 전 일각에서는 중국 드라마 <칠월과 안생>의 제목, 설정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두 여성 인물 중심의 서사와 일대기를 담은 부분이 유사하기 때문.

그러나 조영민 감독은 “제목 때문에 그렇게 (칠월과 안생을) 연상할 수도 있는데 우리 드라마는 은중이라는 사람과 상연이라는 두 인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드라마라서, 이것보다 더 좋은 제목이 있을까 싶어 선택한 것”이라며 다른 내용임을 강조했다.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무엇보다 상연이 은중에게 “나와 스위스에 동행해줄래?”라고 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큰 차이점이라고. 오히려 한때 친했던 친구와의 재회, 그리고 존엄사를 다루는 내용은 틸다 스윈튼과 줄리앤 무어 주연의 영화 <더 룸 넥스트 도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은중과 상연>이 두 주인공의 인생에 담긴 인연과 서사에 더 큰 방점을 뒀다.

그럼에도 두 작품 모두 ‘삶과 죽음’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폭싹 속았수다>도 그랬듯 일대기의 마지막은 ‘죽음’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5일 오전 서울 앰배서더 서울 엠버서더 풀만 호텔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제작발표회. 김민지 기자
5일 오전 서울 앰배서더 서울 엠버서더 풀만 호텔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제작발표회. 김민지 기자

관계로 시작해 관계로 끝나는 인생이다. 김고은은 <은중과 상연>에 대해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해주게 하는 작품”으로 “온전히 상대를 받아들여 주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인가를 알려주기에 한 권의 책처럼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었을 때 깊은 여운이 담긴 작품이 될 것”이라며 “저희 여정을 같이 따라가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