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2억원·13회차 촬영에 웰메이드 호평
“투자 멈춰진 한국영화 시장에 새로운 가능성”
연상호 감독 “호불호 줄이기보다 개성 강화해야”
[헤럴드POP=이미지 기자] 연상호 감독이 2억원 초저예산 영화 ‘얼굴’을 통해 작품 제작 환경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단 2주의 프리 프로덕션과 13회차 촬영으로 완성된 영화 ‘얼굴’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연 감독의 첫 그래픽 노블 ‘얼굴’을 원작으로 하는 본 작품은 무조건적으로 “대작이 흥행한다”는 한국 영화업계의 고착화된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연상호 감독, 정형화된 제작의 틀 깨다
연상호 감독은 ‘얼굴’의 영화화를 오래전부터 꿈꿨지만 쉽지 않았다고 전한 바 있다. 대중적이지 않고 다소 마이너한 소재라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얼굴’의 영화화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연상호 감독은 오히려 투자, 배급사로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자신의 회삿돈으로 만드는 과감한 선택을 한 것.
스태프를 오랜 동료 20여 명으로 꾸렸고, 전작들을 통해 연을 맺은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배우 간 친분도 있는 상황이라 짧은 기간 깊은 호흡이 가능했다.
더욱이 배우 박정민은 출연료나 일정 금액의 수익 보장을 받지 않고 ‘노개런티’로 출연, 힘을 실었다. 정형화된 영화 제작 방식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연상호 감독의 취지에 뜻을 모은 것.
이에 영화계 관계자는 헤럴드POP에 “‘얼굴’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제작됐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연상호 감독이 향후 수익을 스태프·배우들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계약한 것으로 안다”라며 “이러한 구조 덕분에 저예산 제작이 가능했다”라고 밝혔다.
저예산·단기 촬영작, 해외영화제 초청과 선판매 잇단 성과
적은 제작비로 짧은 기간에 촬영을 마쳤지만 모두가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집중한 덕에 완성도까지 놓치지 않았다. 기존 영화업계에 만연한, 보다 티켓 셀링에 중점을 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연출자의 ‘호불호’를 줄이는 제작과정에서의 관습이 거의 없다보니 연상호 감독이 하고자 하는 ‘뾰족한’ 그만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기는게 가능했다.
태초의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의 귀환이라는 평이 나올 만큼 연상호 감독만의 문제의식을 담아냈다.
이에 작품성까지 인정받으며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된 것은 물론, 157개국에 선판매되는 쾌거를 거뒀다.
토론토국제영화제의 수석 프로그래머 지오바나 풀비(Giovanna Fulvi)는 “연상호 감독의 첫 그래픽노블 ‘얼굴’을 원작으로 한 이번 작품은 연상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과감한 전환점을 보여주면서도, 그의 작품들을 관통해 온 강렬한 에너지와 도덕적 복잡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라며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영화를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일 수 있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다”라고 극찬했다.
‘부산행’, ‘반도’의 북미 배급을 진행했던 Well Go의 대표 Doris Pfardrescher는 “오랫동안 연상호 감독님의 작품을 지켜본 팬이며, 감독님의 이전작을 북미 관객에게 소개하는 영광을 누렸다”라며 “‘얼굴’은 ‘반도’ 이후 극장에 복귀한 연상호 감독님의 작품으로, 장르를 넘나드는 대담한 비전을 통해 그가 현재 가장 흥미로운 영화감독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다시 한번 연상호 감독님과 손잡고 ‘얼굴’을 미국과 캐나다 전역의 팬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영화계 관계자는 “‘얼굴’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다면 극장용 영화는 크고 화려해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획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투자가 멈춰진 한국영화 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를 바란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작지만 강한 작품 ‘얼굴’, 한국 영화계의 새 변수
연상호 감독은 ‘얼굴’을 통한 새로운 제작 틀이 일회성에 그치기보다는 시스템화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의 영화를 만드는 기준과는 다른 기준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시도가 계속되면 좋겠다는 것. 투자, 배급사와도 꾸준히 논의할 예정이다.
연상호 감독은 “한국에서는 투자 시스템상 뭔가 호불호를 줄이려고 하는 형태로 많이 제작된다. 그게 꼭 영화를 좋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산이 커질수록 작품이 가지고 있는 뾰족함이 깎이는 느낌이다”라며 “호불호를 줄이려고 하는 기획 형태가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소신 발언을 했다.
이어 “돈의 문제가 아니라 뾰족한 개성이 있는 영화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나 싶다”라며 “앞으로 극장 시스템도 더 개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원하는 게 결국 그런게 아닌가 싶다”라고 덧붙였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 16일 오전 7시 기준 ‘얼굴’은 누적 관객수 35만 6732명을 기록,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을 제치고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했다.
실관람객들의 만족도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인 CGV 골든에그지수 94%를 기록하고 있다.
초저예산으로 제작된 만큼 이미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겼지만, 향후 장기 흥행으로 이어져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콘텐츠의 힘이 있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입증함으로써 연상호 감독의 새로운 시도가 침체된 극장가의 또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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