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 리뷰

관찰과 관음, 그럴싸한 허구가 빚어낸 위험한 단상

‘열등감’ 최민식 쥐고 흔드는 최현욱, 결핍에서 시작된 욕망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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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는 <맨 끝줄 소년>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헤럴드뮤즈=김민지 기자] 우리는 안다고 믿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은 실패한 작가이자 국문학과 교수인 ‘허문오’(최민식 분)가 강의실 맨 끝줄에 앉은 소년 ‘이강’(최현욱 분)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의 글에 집착하며 벌어지는 서스펜스 드라마다.

극 중 허문오를 지배하는 정서는 열등감과 패배감이다. 20년 전 낸 단 한 편의 소설 이후 메말라 버린 그에겐 평생의 라이벌 ‘김수훈’(허준호 분)이 있다. 과거 사랑했던 여인도, 평생을 갈망한 ‘성공한 작가’라는 타이틀도 모두 김수훈의 몫이었다. 김수훈이라는 이름 세 자 앞에서는 언제나 작아지던 허문오. 그런 그의 앞에 기묘한 묘수가 등장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강의 시간, 맨 끝줄 소년 이강이 제출한 과제물에 눈이 뒤집힌 것이다. 어쩌면 이 소년의 천재성이 자신의 영원한 패배를 승리로 바꿔줄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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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년의 과제를 자신만의 이야기로 바꾸려는 기이한 문학 수업이 시작된다. 제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관찰하는 ‘맨 끝줄 소년’의 매혹적인 문장은 교수 허문오는 물론, 화면 밖 시청자마자 ‘다음에 계속…’이라는 늪에 빠뜨린다.

작품은 관찰과 관음의 경계에서 시청자를 쥐고 흔들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욕망 실현의 순간 앞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 채 활자의 늪에 빠져든 인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믿다가 결국 가장 숨기고 싶었던 민낯까지 까발려지는 인간의 기괴한 심리. <맨 끝줄 소년>은 바로 그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예측 불허의 파국으로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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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얘기가 없으면 그냥 안 해도 되잖아.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아. 무엇보다도 문장 공부부터 다시 해야겠다.”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

글을 쓰는 작가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 능력 여하를 떠나 ‘쓰기가 불가능한 인간’이 되어버린 순간, 허문오의 내면은 통째로 비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지배한 이 거대한 결핍이야말로 모든 파국의 시작이다. 허문오를 연기한 배우 최민식은 헤럴드뮤즈와의 인터뷰에서 바로 이 지점을 짚으며 “비극이 싹텄다”고 표현했다.

최민식은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좌우지간 문자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자기의 생각을 보여주는데 이 사람의 패착은 순수하게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고, 즐기고, 만족한다기보다는 글을 통해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굉장히 큰 것”이라며 “인정 욕구가 글에 대한 애정 못지않게 커서 외형적인 성공에 대한 집착이 커지게 됐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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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싸한 외형’, 즉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다 정작 중요한 알맹이를 놓치는 현상은 비단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좋아요’ 하나에 심장이 요동치고, 팔로워와 조회수가 곧 자신의 존재 가치가 되는 오늘날 미디어 시장의 단면이기도 하다. SNS 속 가상 세계가 인생의 전부인 양, 그 프레임에 맞춰 박제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작품은 형체 없는 도파민을 탐닉하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밀려오는 지독한 허무함을 탁월한 대비로 보여준다. 악몽에서 깨어난 허문오, 예상치 못한 전개에 흥분해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강. 그리고 이들이 가상과 활자의 세계에 미쳐있는 동안, 정작 현실의 삶 속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던 아내 조현숙(진경 분)의 부재가 그렇다. 인물들이 각자의 시선에서 마주하는 이 기묘한 현실 자각은 극의 중요한 변곡점이자 반전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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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맨 끝’이라는 공간이 지니는 상징성도 날카롭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처럼, 공간의 맨 끝줄은 모든 상황을 조망하며 마치 세상을 다 아는 듯한 ‘그럴싸한 척’을 하기 가장 좋은 위치다.

이 의뭉스러운 공간에 완벽한 설득력을 부여한 건 이강 역을 맡은 최현욱의 눈빛이다. 최민식은 선배로서 최현욱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극에서 핵은 이강이고, 저는 리시브 역할이다. 이강이 짜놓은 프레임에 제가 말려들어 가서, 그 안에서 얘가 하는 대로 저는 움직이면 됐다”고 말했다. 대선배의 인정처럼, 최현욱은 의심의 여지 없이 영악하고 매혹적인 ‘맨 끝줄 소년’ 그 자체가 되어 극을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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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강이 허문오의 인생에 들어와 잠자고 있던 욕망을 깨울 수 있었던 도화선 역시, 결핍에서 비롯된 ‘인정 욕구’였다. 이때 극 전반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시각적 키워드가 바로 ‘관찰과 관음의 경계’다.

허문오는 이강이 가져오는 은밀한 이야기에 중독되어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더 특별한 이야기”를 재촉한다. 그러다 문득 훔쳐보기의 불쾌함과 도덕적 죄책감이 엄습하면, 미친 사람처럼 눈을 부릅뜨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관찰을 하라”며 이강에게 괜한 목소리를 높인다.

진실과 거짓, 허울과 민낯이 교차하는 이 불편한 경계를 김규태 감독은 거울을 덧댄 듯한 정교한 액자식 구성으로 시각화했다.

2006년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이 영리한 각색이라는 호평을 받는 이유다. 원작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인간을 집어삼키는지를 꼬집으며, 결말의 몫을 관객의 상상력에 맡겨둔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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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 프레임이 만든 허상에 너무도 빠져들기 쉬운 세상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자신만의 안전한 ‘맨 끝줄’에 숨어 앉아, 눈앞의 세상을 제멋대로 관찰하고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맨 끝줄 소년>은 허문오의 모습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서늘한 ‘다음’을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