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소담 기자]‘스플릿’ 희진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정말 아쉽게도 ‘스플릿’은 배우 이정현을 허투루 낭비했다.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이정현도 남성 중심의 상업영화에서는 그저 그런 여성 캐릭터로 소모되고야 말았다.
영화 ‘스플릿’(감독 최국희/제작 오퍼스픽쳐스)은 도박 볼링 세계에 뛰어든 밑바닥 인생들의 한판 승부를 그린 작품. 유지태가 한물 간 전직 볼링 선수 철종 역, 이정현이 허당 매력의 생계형 브로커 희진 역, 이다윗이 자폐 기질과 천재적 볼링 실력을 동시에 지닌 영훈 역, 정성화가 철종과 악연으로 이어진 악역 두꺼비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이정현이 맡은 희진은 유명한 코치 출신 아버지 덕에 볼링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인물. 도박 볼링판에선 철종(유지태)에게 게임이 있는 곳을 안내하는 브로커 역할을 한다. 이정현은 허당 브로커 희진을 위해 짝퉁 명품을 두르고 빨간 하이힐을 신는 등의 설정을 가미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만큼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정현이 만들어낸 사랑스러운 허당 브로커 희진 역은 ‘스플릿’의 전체 줄거리에선 기능적으로만 사용된다. 철종과 영훈(이다윗)의 관계가 쌓이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희진은 잠깐씩 등장해 두 사람의 관계 윤활유 역할을 할 뿐이다. 철종과 영훈이 우정으로 가까워지는 반면, 희진은 철종과 뜬금없는 러브라인 그리고 철종을 각성시키는 인물로만 그려진다. 영훈을 도박판에 끌어들이고, 승리의 쾌감과 돈맛에 기뻐하는 희진. 영훈과 철종을 통해 두꺼비(정성화)에게 빼앗긴 아버지의 볼링장을 되찾을 꿈에 부푼다. 그러나 쉽게만 풀린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터. 그런데 이 지점에서 철종이 볼링장을 왜 되찾아주려 하는지 그 전사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채 희진의 분량은 극 중반 실종된다.
‘스플릿’에서 희진은 철종과 영훈 그리고 두꺼비와의 이야기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물론 가지가 많으면 쳐내야 하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이정현이라는 연기 잘하는 미친 존재감의 배우를 캐스팅할 이유가 있었나 싶다. 그리고 그걸 굳이 여성으로 설정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이정현이기에 기대했던 연기. 하지만 ‘스플릿’에 희진의 이야기는 없었다. 분량도 오히려 영훈 역 이다윗이 더 많다.
아마 ‘스플릿’은 희진을 ‘타짜’의 정마담처럼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혜수가 연기한 정마담과 이정현이 부여맡은 희진의 역할은 그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돈에 대한 욕망으로 도박판에 스스로 뛰어들고, 남을 이용하는 정마담과 달리 희진은 철종과 영훈의 도박판을 깔아주는 역할만 할 뿐 스스로 이야기를 이끌진 못한다.
‘스플릿’ 주인공이 철종이기 때문이란 항변에도 씁쓸한 뒷맛이 남는 것은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이러한 남성을 보조하는 여성 캐릭터로만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주연으로 극을 이끌 수 있는 검증된 연기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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