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감성 판타지 '가려진 시간'의 진짜 메시지는 믿음이다.
지난 16일 개봉한 영화 '가려진 시간'(감독 엄태화/제작 바른손이앤에이)은 화노도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사건 후 단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강동원)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단 한 소녀 수린(신은수)의 이야기다.
영화는 친구들과 산으로 놀러 갔다가 혼자 돌아온 수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실종됐던 그의 친구 성민은 가려진 시간에 갇혀있다가 다시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불과 며칠 만에 어른이 된 성민을 알아보는 건 수린뿐이다.
'가려진 시간'속에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나 성민이 갇혔던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세계가 그렇다. 뛰어다니던 고양이는 허공에 멈췄고,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은 정지했다. 이 특별한 공간은 멈춰진 시간에 대해 풀어보고 싶다는 엄태화 감독의 생각에서 시작됐다.
그는 "나는 현실과 비현실이 충돌하고,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전작 '잉투기'도 표현 방법이 다를 뿐 현실과 가상현실이 뒤섞여 있었다. '가려진 시간' 역시 소녀의 망상이나 꿈일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설명했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성민은 낯섦과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과 싸우면서 성장한다. 말이 쉽지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익숙하게 보던 풍경들은 정지해있고, 그 사이에 혼자 살아남는다니. 어쩌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가려진 시간 속 세상은 너무할 정도로 아름답다. 파스텔톤으로 물든 세계는 물리적 법칙을 가볍게 무시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특별하다. "내가 그런 충돌을 재미있어한다. 슬프다고 해서 슬픈 음악이 깔리고, 톤도 어두운 것보다는 밝게 묘사하면 더 슬플 때가 있지 않나. 예를 들자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빠가 걸어가는 장면이랄까. 직접적인 것보다는 그런 식으로 비틀어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란 명제는 엄태화 감독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숲 속에 있는 인물들 간의 불신과 열등감을 다룬 전작 '숲'(2012)이 그랬고, 홀로 방 안에서 움츠리고 있던 잉여인간이 주인공인 '잉투기'(2013) 역시 마찬가지다.
'가려진 시간' 역시 홀로 시간을 보내는 수린과 성민이 주인공이다. 그렇지만 늘 혼자는 아니라는 것 역시 엄태화 감독의 생각이기도 하다. 두 소년과 소녀가 시공간을 초월해 우정을 나누게 된 이유다.
"시간이란 소재와 만나서 이야기를 풀다 보니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싶더라. 요즘은 믿을 것 하나 없는 세상이다. 불신이 익숙하고, 뭘 봐도 그게 진짜인지도 모르겠다. '가려진 시간'에는 그 사실에 대한 피로감과 믿고 싶은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가 그리는 믿음은 판타지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사실 수린과 성민의 이야기를 의심하는 어른들은 악인이 아니다. 그들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합리적 판단을 내리고 싶어할 뿐이다.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세계가 거짓말이 되는 이유다.
이는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엄태화 감독의 말처럼 어쩌면 이 모든 모험과 비극은 열세 살 소녀 수린의 공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을 믿을지는 관객의 몫이다.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못 봤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그런 지점에 신경을 많이 썼다. 매신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궁금증을 던지고 싶었다. 아직 나도 시작 단계다. 관객이 '가려진 시간'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그걸 보고 차기작에서 대중의 기호와 나의 생각 사이의 간극을 조절할 것 같다. 소통이 중요하다. 영화란 많은 사람들이 보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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