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블록버스터 재난물의 공식이 현실이 됐다. '판도라'가 그리는 대한민국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제작 CAC엔터테인먼트)가 비수기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9일 오전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하루 동안 16만4925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박스오피스 1위에 해당한다. 누적 관객 수는 33만7951명이다.
'판도라'는 제작비만 155억을 들인 블록버스터로, 지진과 원전 사고가 중심이다. 사전 위험을 감지한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는 정부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소시민들의 영웅적 활약 등 재난물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사실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시국이 '판도라'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대재앙이 대한민국을 덮친다는 시나리오는 2016년을 살아낸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현실이다. 특히나 영화 속에서 다루고 있는 지진과 국정 농단, 재난에 무능하게 대처하는 정부 등은 자연스럽게 경주 일대 지진, 최순실 게이트, 세월호 참사 등이 연상된다. 이쯤 되면 풍자를 노리고 만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원전 재난 역시 불과 얼마 전 옆 나라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하지만 '판도라' 측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지독한 우연의 일치임을 밝혔다. 제작보고회에서 박정우 감독은 "전작 '연가시'를 만들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다. 그런 사고가 터지면 우리나라도 점검을 해야 하는데, 반대로 원전을 더 많이 짓고 정책산업으로 키우더라"라며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 최초로 원전이 소재가 된 이유다.
이를 위해 박정우 감독은 철저한 사전조사를 거쳤다. '판도라'가 탄생하기까지 4년이 걸린 이유다. 유난히 긴 제작기간은 외압 의혹으로도 이어졌다. 박정우 감독은 "실질적으로 그것 때문에 개봉 시기를 못 잡은 건 아니다. 후반작업이 오래 걸렸다"라고 해명했다.
반면 영화에서 묘사된 지진과 국정 농단 사태 등은 '판도라' 측 역시 현실이 될 줄 몰랐다고. 출연배우 문정희는 헤럴드POP과 인터뷰에서 "4년 전 촬영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지진이 이렇게 크게 일어나고, 원자력 발전소가 문제가 되는 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지진이 오더라"라며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유난히 원리원칙주의자로 묘사된 '판도라' 속 대통령 역시 풍자의 의도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 박정우 감독은 "인간적인 대통령을 그리려 했다. 국민을 걱정하고 의욕적이긴 한데, 주변의 시스템이 대통령을 무기력하게 만들면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리려 했다"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어쩌다 보니 현실을 꼬집은 영화가 된 '판도라'. 익숙하게 봐왔던 신파 재난 블록 버스터인 줄 알았건만 어느새 극사실주의가 됐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시국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라 웃어넘기기엔 씁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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