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편견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헬멧을 쓰고 점프를 하던 아이돌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섰다. 그것도 역사적 인물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영웅'에 말이다. 네 명의 안중근 캐스트 중 누구의 공연을 봐야 좋을까 고민하는 것보다 허민진이라는 배우가 괜찮을까 걱정된 것도 사실. 하지만 크레용팝 초아가 아닌 허민진은 실력으로 그 우려를 더 큰 기대로 바꿨다.
허민진은 지난 1월 18일부터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를 동경하고 그의 거사를 돕는 링링 역을 맡았다. 가슴 울리는 거대한 스케일의 무대 위에서 그녀는 단연 돋보인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 위해 거사를 도모하는 안중근 의사 및 다른 인물들이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무게감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허민진이 맡은 링링은 오랜만에 만난 안중근에게 달려가 안기는 귀엽고 통통 튀는 매력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영웅'은 시국과 맞물려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이에 허민진은 "작품에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다. 나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서 후기를 찾아보는데,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서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연기를 하면서 아이돌이라는 걸 알고 계신 분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보시는 분들도 계시더라. 그래서 아이돌이라는 시각적 편견을 줄여보려고 일부러 본명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역시 아이돌이라 별로'라는 댓글을 본 적도 있다. 처음에는 나쁜 반응에 상처를 받았는데, 그것도 아이돌 출신이라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출신이 아이돌인 건 맞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링링 역과 잘 어울린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괜찮다."
허민진의 첫 뮤지컬 데뷔작은 '덕혜옹주'(2015)다. 이어 선택한 작품이 '영웅.' 역사극을 선호하는 것인지를 묻자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굳이 '이걸 해야지'하고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우연히 역사극을 연달아 맡게 됐다. 그런데 '덕혜옹주'를 했던 작년에는 광복 70주년이었고, '영웅'은 지금 시국에 딱 맞는다. 한 국민으로 뭔가 운명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면서 시기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덕혜옹주' 첫 오디션을 볼 당시 연출은 허민진의 실력에 깜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학교 선배님이었던 연출가는 아이돌 크레용팝 멤버가 오디션을 본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실력에는 기대하지 않았었다고. 그녀는 "그때 뮤지컬이 꼭 하고 싶었다. 그래서 '덕혜옹주' 오디션을 정말 꼼꼼히 준비했다. 지정곡, 지정연기는 물론이고 동선까지 다 숙지했다. 연출가가 '몇백 명의 지원자를 봤는데, 동선까지 준비한 건 네가 처음'이라고 하셨다. '생각보다 노래도 잘한다. 덕혜옹주 역과 잘 어울린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서 기분 좋게 오디션을 마무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영웅'에는 네 명의 안중근이 있다. 배우 정성화, 안재욱, 양준모, 이지훈. 연예계 대 선배이기도 한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것은 허민진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녀는 "사실 이렇게 스케일이 거대할 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안중근 역에 네 분이나 참여하실 줄 몰랐다. 그래서 연습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모든 후배가 선배를 지켜보며 자연스레 배웠다. 안중근 역이 정말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도, 선배들은 자신의 역할은 물론 작품을 어떻게 꾸려갈지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후배들까지 챙겨주신다. 특히 정성화, 양준모 선배는 '영웅' 경험자인 만큼 연출적인 부분도 많이 신경 쓰셨다. 대본에 적힌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작년과 다르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꼭 이렇게 해야 해?' 물으며 끝없이 더 좋은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를 연출에게 어필했다. 대단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허민진이 맡은 링링 역할은 안중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링링의 오빠인 왕웨이는 만둣집 사장이자 안중근의 동료로 그들이 모일 장소를 제공하고, 그들의 거사를 돕는다. 그런 환경속에서 자란 링링 또한 안중근을 동경하며 그를 돕는다. 그만큼 허민진에게 네 명의 안중근 배우는 각별한 인연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누가 가장 좋으냐고 물으니 오랫동안 고민하며 결국 "다 좋아요, 정말 다 좋은데.."라며 곤란한 모습을 보였다.
"안중근 역의 선배들과는 연습콜도 항상 같아서 많이 친해졌다. 정성화 선배는 '이렇게 하면 네 캐릭터가 죽을 수 있어'라고 조언해주며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연기 지도를 해주신다. 마음도 넓으셔서 엄청 배려를 해주신다. 안재욱 선배는 정말 재미있다. 더불어 연출적 부분에 특히 신경을 쓰신다. 양준모 선배는 정말 그냥 좋다. 사적으로 친해졌다. '앞으로 뭐 하고 싶은지' 물어봐 주고 나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신다. 이지훈 선배는 처음에 굉장히 시크했다. 나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뒤에서 보시고 친절하게 조언해 주셨다. 또 한 번은 나를 배려하다가 허리에 쥐가 나기도 했다고 하더라. 이지훈 선배에게 안겨서 노래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도 누워서 배에 힘주고 노래하기가 쉽지 않는 장면이다. 그런데 나를 조금 더 편하게 해주려고, 정작 자신의 자세는 쥐가 날 정도로 불편하게 버틴 것이다. 정말 감동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약 2개월간 지속한 '영웅' 연습과 2월까지 이어져 온 공연. 그 가운데 설희 역으로 출연하는 박정화, 리사, 정재은과도 많이 가까워졌다. "세 분과는 연습 때 인연이 없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대기실을 같이 쓰면서 친해졌다. 사적인 얘기도 하고, 모니터링도 함께 했다"고 전했다, 리사와는 더욱 돈독한 사이다. 허민진은 "역류성 식도염에 걸려서 고생한 적이 있다. 연습이나 공연 때 컨디션 안 좋았던 적이 없었는데, 아프니까 심리적으로 불안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고민하고 긴장하고 있으니 리사 언니가 옆에서 노래 들어봐 주거나, 다독여주면서 '차분하게 하면 된다'고 조언해 주셨다. 또 목이 안 좋을 때 하는 방법도 알려주셔서 그날 공연을 잘 마쳤다"면서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사진 제공=에이콤)
[팝인터뷰①]허민진 "4인4색 안중근 오빠들, 모두 좋아해요" [팝인터뷰②]크레용팝 초아 아닌 허민진 "다작 배우가 꿈"
pop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