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포스터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포스터

[헤럴드POP=안태현 기자] 비극의 역사는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1980년 5월 광주. 이 비극의 고유명사를 둘러싸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사실의 해석들이 넘쳐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38년 전의 역사가 이토록 팽배한 논쟁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논쟁의 대부분은 ‘도대체 진실은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진실’은 이제 가려졌으니 ‘어서 밝혀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그렇기에 그간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뤄온 영화들은 대개 역사적 사실에서의 광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의 폭력과 인간애 등을 비춰왔다. 그렇게 광주는 어느 샌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었다. 비록 그 시간을 확장시켜 현재에서 이야기를 풀었던 ‘26년’과도 같은 작품이 존재했지만, 이 영화의 초점은 광주의 피해자들에 맞춰져있기 보다 가해자에게 좀 더 초점이 맞춰있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런 의미에서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그간의 작품들과 결을 달리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해 피의 역사 속 광주에서 희생당하고 폭력 속에 노출되었던 인물이 현재에서 또 어떤 폭력에 노출되어있는가에 대해 얘기한다. 1980년 5월에 멈춰있을 것만 같았던 광주 민주화 항쟁의 시계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명희(김부선 분)가 있다. 군부독재 타도 시위에 앞장섰던 법대생 철수(전수현 분)를 사랑했던 과거의 명희(김채희 분). 하지만 사랑은 폭력 앞에 짓눌렸다. 계엄군의 손에 철수를 잃었고, 머리에는 총상까지 입게 됐다. 여기서 비극이 끝이 났다면 좋았을 법 했지만 겨우 목숨을 부지한 그녀에게 돌아오는 세상의 시선은 그렇게 곱지 않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아직까지도 사이렌 소리만 들리면 벌벌 떨며 움츠러드는 명희를 세상은 ‘미친 여자’라고 단정 짓는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폭력의 상처들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는 딸 희수(김꽃비 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마음은 상처투성이임에도 남을 웃기는 코미디언이 된 희수지만, 상처는 숨길 수 없다. 5.18 유공자의 딸로서 그가 세상에 목소리를 내기에는 힘이 든다. 막상 자신 역시 명희에게 “그때 죽었으면 열사라는 소리라도 듣지, 왜 살아 남으셨어요?”라고 상처 주는 말을 남길 뿐이다. 피의 역사가 혐오로 유전되고 있는 상황의 씁쓸함이다. 과연 이 비극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 연결고리를 끊는 방법을 공감과 위로, 연대라고 이야기한다. 세상의 인식을 바꿀 수 없다면 나부터 광주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야한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빚쟁이처럼 끈질기게 달라붙는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그렇게 영화 속에선 끊임없이 슬픈 역사의 기억과 현재의 폭력들이 교차된다. 하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물들의 감정에 쉽게 이입하지 말라며 계속 해 상황을 겉 돌려 한다. 의도적으로 감정에 호소하지 않겠다는 뚝심을 엿볼 수 있는 구석이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그렇기에 영화는 어떠한 직접적인 감정을 전달하기보다 내면에서 먹먹한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러기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사실적인 묘사를 오히려 지양한다. 계엄군의 복장과 행동들은 괴기하다. 이는 당시 피해자들이 느꼈던 감정을 직간접적으로 관객들에게 투영하게 만든다. 과거의 일이 반복되고 있는 현재의 고통을 계속해 전달하겠다는 뚝심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성들이 너무나 반복적이고 직접적인 측면이 있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이야기의 전달보다 프로파간다가 선행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또한 현실에 던지는 몇몇 대사들은 극 상황과 떨어져 다소 이질감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복잡한 구성으로 인해 장면의 이음새가 다소 매끄럽지 않다는 아쉬움도 남긴다.

그럼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간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작품들과는 의미를 달리한다는 것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윤상원, 박기순, 이철규, 이한열, 박종철 등 그리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사라져간 모든 이들을 위한 노랫말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과거와 현재, 슬픈 폭력에 희생당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한다. “영원함이 함께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며 “영호남을 뛰어넘느 화합을 그리고 싶었다”는 박기복 감독이 힘 있게 부른 노래는 민주화의 열망 속 스러져간 넋들과 지금도 상처받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오는 5월 1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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