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안태현 기자] 날카롭게 다가와 무겁게 짓누른다. 한 소녀가 갑작스럽게 실종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단순 실종인지도 모를 사건 이후 사람들은 모두 ‘왜 소녀가 죽었나’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결과는 없지만 모두의 마음속에는 각자 생각하는 사건의 경과와 원인들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답의 끝에는 다른 한 소녀의 이름이 놓여있다. 바로 영희(전여빈 분)다. 친구가 실종되고 그 죽음의 원인이 된 영희. 이제 그 소녀에게 또 다른 칼날 같은 시선들이 돌아온다. 학생이 죽었으니 “그럴듯한 답이 필요하다”는 교장의 말조차 날카롭게 영희를 향한다. 모두에게는 자신이 소녀의 죽음에 일조하지 않았다는 답이 필요하기에 더욱 더 가차없이 영희에게 손가락을 모은다.

친구 경민(전소니 분)의 죽음으로 시작된 이 모든 사건에서 경민의 어머니(서영화 분)는 영희에게서 이유를 찾으려고 하고, 한솔(고원희 분)은 죽기 전 영희가 경민의 자살을 부추겼다는 증언을 내놓는다.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유재명 분) 또한 “겁을 줘야 뭐가 나온다”고 계속해서 영희를 겁박한다. 자신의 말은 농담이었다고 자신은 경민의 죽음에 있어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영희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경민에게 관심조차 없던 반 친구들이 집으로 우르르 몰려와 ‘경민이의 복수’라며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영희의 모습에 관객들의 마음은 계속해서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사진=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
사진=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

이처럼 ‘죄 많은 소녀’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에는 영희가 존재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경민의 어머니, 형사, 학생들, 학교로 이야기의 반경을 조금씩 넓혀나간다. 그 사이 영희가 하는 모든 말은 ‘변명’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시선들에 의해 가로막히거나 사라진다. 소통을 하는 도구라는 말의 기능이 소멸되어져 가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폭력적으로 그려진다. 끊임없는 의심에서 시작된 실체 없는 분노들. 소녀 ‘영희’로 향하던 분노의 끝에는 결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걸쳐있지만 그렇다고 ‘죄 많은 소녀’가 어떠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죄 많은 소녀’는 인간 사회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말’과 ‘책임’이란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의심을 하는 말을 통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힌다. 하지만 그러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경민의 실종 이후 모든 책임을 영희에게 돌리려하는 이유도 자신이 지지 않을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려는 무책임함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과정들을 카메라는 영희에 초점을 맞추고 그려나가지만 결국 영희 또한 ‘말’의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희 역시 이 모든 원인을 경민에게 돌리려 한다. 하지만 경민은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영희는 이 모든 죄의 책임을 혼자 떠안게 된다.

소녀 영희가 느끼는 죄책감, 압박감, 답답함은 영화 전반에 걸쳐 관객들에게 전이된다. 온갖 시각화된 폭력들이 관객들의 감각을 옥죄어오고 여기서 벗어나려 할수록 오히려 더 관객들은 영화가 던지는 물음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특히나 영화 속 영희를 그려내고 있는 전여빈의 연기는 이 과정을 더욱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삶에 대한 허무함을 담아내고 있는 눈빛과 너무나도 무거운 한 마디의 책임감을 지고 있는 어깨, 죄책감으로 무거운 발걸음까지. 이처럼 영화의 묵직함을 온전히 견뎌내고 있는 전여빈의 모습은 강인하지만 여린 속내를 가진 영희를 사실 그대로 표현해내며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진=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
사진=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

존재 하나만으로도 프레임을 가득 채우는 모습은 배우 전여빈에 단연 눈길이 쏠리게 만든다. 그간 문소리의 감독 데뷔작 ‘여배우는 오늘도-3막 최고의 감독 편’을 비롯해 ‘우리 손자 베스트’, ‘여자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등의 작품들을 통해 어떠한 인물을 그려내도 이질감 없는 도화지 같은 매력을 드러내왔던 전여빈은 ‘죄 많은 소녀’를 통해 관객들에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화 후반부 전여빈은 무거운 극의 분위기에 압도되지 않고 오히려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이며 다시금 괴물 신인의 등장을 눈여겨보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지만, 결국 은막을 경계로 둔 현실의 확장이기도 하다. ‘죄 많은 소녀’는 이러한 의미에서 현실이 가지는 극단적 상황과 성격으로 세상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영화다. 답답한 현실과 너무나 닮아있지만 현실이 던지지 못했던 근본적 물음을 극단적인 이야기를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풀어낸다. 시나리오를 쓸 당시를 떠올리면서도 “과거의 자신을 파먹는 시간이었다”라고 얘기한 김의석 감독. 과연 ‘죄 많은 소녀’가 묵직하고 날카롭게 파고들 물음의 무게를 관객들은 온전하게 짊어질 수 있을까. ‘죄 많은 사회’에 던지는 문제작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오늘(13일) 개봉했다.


popnews@heraldcorp.com